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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14. 2022

장기 기증 값이 들어 있던 봉투

- 누군가의 그 애절한 마음 덩어리

  나의 카톡 '친구 리스트'는 매우 간단하다. 10명 정도뿐이다. 그러나 '숨친구' 목록에는 300명이 넘는 친구가 있다. 어쩌다가 그 목록으로 들어가서 카친들의 프로필을 스캔하듯 훑어볼 때가 있다. 문득, 한 곳에 눈길이 멎었다. 그분을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채**(목** 어머니의 지인)'라고 그분의 프로필 이름이 저장되어 있다. 그분을 우연히 만난다면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다. 아주 잠깐 뵌 적이 있으니까.


 그분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았다.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꽃자주색 블라우스를 입고 카페에 앉아 있다. 소파에는 검은색 명품 가방이 보인다.  다음 사진은,  길거리에 서 있는 모습이다. 긴 사각 스카프가 바람에 살며시 날리고 있다. 검정 원피스에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쳐 입고 있다. 카키색 퀼트 에코백을 들고 있는데, 수수하게 '꾸안꾸' 패션이지만 미모를 숨길 수 없다. 또 다음 사진은, 따님과 셀카로 찍은 것이다. 모녀 사이가, 설명하지 않아도 무척 친근해 보인다. 진주 귀걸이, 진주알 목걸이, 진주 반지를 끼고 있다. 하얀색 반팔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가방도 하얀색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패션니스타'다. 여배우를 뺨치는 미모다. 다음 사진은, 하얀 블라우스 위에 검정 코트를  입고 건물 옆에서 얼짱 각도로 찍은 것이다. 라이드를 넘겨보니, 딸내미는 침대에 누워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고 어머니는 카메라의 정면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다. 성악가같은 포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데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오페라 가수인가? 마지막 사진은,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색 짧은 치마를 입고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지그시 옆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 사진 속에서 두꺼운 백금 팔찌를 끼고 있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어 보이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슬라이드 쇼처럼 지나간다.

 맨 처음 연락처를 등록했을 때 보았던 프로필 사진 그대로다. 여전히 다른 사진으로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 세월이 정지된 느낌이다. 아마도 제일 처음 보이는 사진이 맨 마지막에 업로드한 사진일 것 같다. 그분은 어머니의 사진을 더 올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가 엄마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되고 나서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분의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어보지 않았거나 들었더라도 잊어버렸나 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단짝 친구, '** 머니'로부터 아드님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오늘 이렇게 뵙게 되었지만 저희는 많은 생각을 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답니다.


그분은 신혼이었다. 남편과 함께 왔다. 프로필 배경 사진에 어머니와 그 젊은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 것으로 보아 결혼을 한 이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것 같다. 아니면 웨딩 사진만 찍고 결혼식에 동참을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생하니 그랬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을 텐데.... 아주 잠깐 얘기를 하는데도 그분은 어머니에 대한 생각 때문이지 약간 떨고 있었다.  힘들어 보였다. 끝내는 훌쩍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멋진 남편이 곁에서 잘 다독거려주고 있어서 맘이 한결 편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어머니가 이렇게 하는 것을 가장 기뻐할 것 같아서요.


그분은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어머니의 장기 기증 값이 든 봉투였다. 어머니가 생전에 장기 기증 하기로 신청했었다고 한다. 

뜻있게 사용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우리를 위로하러 오신 분이긴 하나 적어도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난감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이 욕심쟁이 같았다. 그렇게 보내기 싫었던 엄마를 잃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분 오게 하다니... 손을  바르르 떨면서 내민 그 봉투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그분의 그 애절한 마음 덩어리까지 받았으니 반드시 일어나서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 놈이다. 아들은 사랑의 빚을 짊어진 빚쟁이다.


 우리에게는 긴 하루 았을 뿐이지만, 10년은 무척 긴 시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의식 없는 중환자다. 이제는 정신 좀 차리고 벌떡 일어나서 자기의 가던 인생의 나머지 길을 총총히 걸어가면 좋겠다.


(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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