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탑재
6월에 탈 서울 하여 경남 진주에서 살게 된 딸내미가 남해 리조트 패밀리 룸을 예약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못 이기는 척하며 일상을 훌훌 털고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은 시큰둥했다.
"진주는 천리 길이라 너무 멀어."
딸은 다녀가라 하고 남편은 멀어서 가기 싫은 내색이니 곤란했다.
"비행기를 타면 되죠. 그러면 지겹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 9월 초순, 비행기로 진주에 가서 딸내미 집에서 1박 했다. 이튿날 남해 리조트로 향했다.
진주에서 삼천포대교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남해 쪽으로 향하니 풍경이 달랐다.
"사람들은 굳이 해외여행 갈 필요 없네요. 여긴 웬만한 해외 여행지보다 좋은데."
우리는 여행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 그런데 이정표에 '미조'라는 지명이 보였다. 내 온몸의 솜털이 잔잔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딸은 전혀 계획 한 바 없었지만 내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길이었다.
추억 가득한 그곳
정확하게 42년 전, 나는 출구 없는 인생길 터널 속에 갇혔다. 국립대학 사범대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미발령 교사라는 프레임을 쓰고 말았다. 막막했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학자금을 대주시며 앞날을 바라보셨던 부모님의 얼굴을 뵐 면목 없었다. 그보다도 딸을 대학까지 공부시킨다고 손가락질하던 고향 사람들 앞에 설 자신도 없었다. 당장 취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머리도 식힐 겸, 여기 와서 좀 지내."
남해 미조로 첫 발령을 받은 절친 H의 제안이었다. 친구는 교대를 졸업하여 2년이나 현직 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친구 자취방에 머물기로 했다. 친구와 밤새워 이야기하며 새벽을 맞이하면 통통배가 일출을 등에 업고 미조항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침 바다는 남해 미조에서 처음 봤다.
마음은 우울하고 앞날은 암담했지만, 미조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아린 마음을 달랬다. 미조는 아침이 아름다워서 미조(美朝 : 아름다운 아침)라고 하나 보다라고 지레짐작했다. 또한 내가 길 잃고 헤매던 시절에 갔던 곳이라 미조(迷鳥 : 길 잃은 철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조라는 이정표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가는 길은 생소했다. 새록새록 돋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이 미조였구나. 아, 추억 돋는다."
40여 년 전에는 남해대교를 이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삼천포대교를 이용할 수 있으니 금방 남해에 당도했다. 익숙한 이정표가 차창 밖으로 하나, 둘 지나갔다. 진주에서 삼천포 대교를 건너니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남해라는 섬으로 가는 중이니 해외에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조, 이런 뜻이었구나
말로만 들었던 독일 마을에 잠시 들렀다. 현직에 있을 때 영어 교과서 지문에도 나왔던 곳이라 남다른 감회가 있는 장소다. 수업 시간에 남해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긴 하나 독일 마을은 가본 적이 없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해외에 나가고 싶었던 지인이 꿩 대신 닭 격으로 독일 마을에 다녀오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럴 때 학생들은 귀를 쫑긋하고 내 얘기를 잘 듣곤 했다.
미조라는 지명은 어떤 의미일까? 미조는 당연히 아름다운 아침이란 뜻이겠지 생각하며 검색했다. 그런데 상상 밖이었다. 미조는 미조(美朝)도, 미조(迷鳥)도 아닌 미조(彌勒)였다. 즉, '미륵이 도왔다'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해의 최남단에 자리 잡은 미조는 인심 좋고 아름다운 곳이다. 웬만한 해외 여행지를 방불케 하는 곳이다.
탈 서울 한 딸 덕분에 남해 미조 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을 갈음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경관을 마음껏 즐겼다.
또한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추억을 소환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나들이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4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