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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분이었어요

- 남편에게 딱 필요했던 기모 청바지를 나눔 받았어요

by Cha향기

아들이 일순간 사고로 중증 환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13년 간 병상에 누워 있다. 의료규정상, 7년 전부터는 집으로 옮겨와야만 했다. 그때부터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들을 돌보는 활동 지원사 중 한 분이 8월 초에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그 자리에 다른 분이 배치되었다.


새로 근무하게 된 H쌤은 20년 간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살게 된 지는 9년 정도 됐다고 한다. H쌤은 교회 주일 학교에서 사역하며 평일에는 활동 지원사로 일한다. 그리고 탈 북민이나 다문화 가정을 돌아보는 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메신저 역할을 많이 하고 있었다. 어느 한 곳에서 좋은 것을 받아 그것이 필요한 곳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난 9월에 우리 사무실을 처분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구매한 지 2년 정도 된 냉· 난방기와 TV를 처분해야만 했다. 그래서 H쌤에게, 나눔할 곳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TV는 H쌤네가 필요하다고 했고 냉· 난방기는 전북 진안에 있는 개척 교회에 소개해주었다.


또한 아들이 지내고 있는 본가에는 우리가 살 때 사용하던 물건이 꽤 많다. 그중에 몇 년 간 사용하지도 않은 것도 있다. 진열장에 있던 커피잔 세트와 싱크대 상부 장에 쟁여 둔 코렐 그릇을 그분께 전달했다. 신문지로 정성스럽게 잘 싸서 필요한 분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독일제 칼 세트를 얼마 전에 선물 받았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내가 쓰던 칼 세트를 나눔하기로 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생선 구이 팬도 필요한 분이 있는지 알아보고 전달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넥타이가 아주 많다. 그래서 H쌤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가시라고 했다.


나는 옷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사돈 댁이 오래 동안 옷 가게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옷을 해마다, 철마다 내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몇십 년 간 받은 옷은 나누어도, 나누어도 나눌 게 있었다. 그래서 여름옷을 정리하여 H쌤에게 나눔을 부탁했다.


날씨가 쌀쌀해져서 겨울 옷을 꺼내려고 장롱 정리를 하다가 보니 잘 입지 않는 바지가 많았다. 그래서 바지 10개 정도를 챙겨 H쌤에게 드리며 맞는 사람에게 나눔하고, 입을 만한 사람이 없는 옷은 의류 수거함에 버려 달라고 했다. 사실 원단이 좋은 옷이라 입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이렇게 옷이 많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아요. 양복 외에 기모 바지가 달랑 하나라 겨우내 그것만 입어요. 그래서 오늘 기모 바지 하나 사야겠어요."
"아, 그래요? 기모 청바지 몇 장 있어요."
"그래요? 어떻게 기모 바지를?"
"아,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 기모 청바지를 70벌 전달받았는데 대부분 다 나눔했고 몇몇 사이즈는 남아 있어요."
"남편은 30이나 32면 돼요."
"아마 그 사이즈가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잘 됐네요. 그렇다면 감사히 잘 입을게요."


다음 날 H쌤이 기모 청바지를 챙겨 왔다. 허리 크기, 기장 등이 남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필요한 걸 챙겨 받을 수 있으니 흐뭇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꼭 필요했던 것을 H쌤을 통하여 나눔받았다.

IE003539554_STD.jpg ▲기모 청바지 / 나눔 받은 남편의 기모 청바지가 안성맞춤으로 잘 맞았다.


남편은 그 기모 바지로 올 겨울을 거뜬히 보낼 것 같다. 누군가 나눔했던 기모 청바지가 우리에게까지 당도했다. 이렇게 서로서로 나누며 살면 세상은 살 만하지 않을까?


세상에 중간 메신저 역할 하는 사람이
든든히 서 있으면
소통하기 좋고
서로 나눔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을 것 같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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