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난리에 빛났던 책임감
헬렌켈러에게 설리반 선생이 있었다면
내 아들에게는
(간병사)와 활동지원사가 있다.
아들이 13년 간 중증 환자로 지내고 있다 보니 간병사와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 간병사는 6년 간 병원에서 우리 아들을 돌봤다. 혼자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목욕도 시킬 수 있는 분이었다. 주 1회, 휴일을 맞아 그분이 집에 가면, 병실에 있는 보호자 다섯 사람 정도가 힘을 모아야 휠체어에 아들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마치 지푸라기 들듯이(과장하자면) 혼자서 아들을 옮겼다. 그야말로 '일당 백' 하는 분이었다.
입원 생활을 만 6년 동안 했고, 이후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은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들은 24시간 활동 지원 대상자라서 현재 다섯 명이 로테이션으로 아들을 돌보고 있다. 물론 남편과 내가 오전, 오후에 교대로 간병과 재활 운동을 돕고 있다.
박쌤은 7년째 우리 아들을 돌보고 있다. 박쌤은, 월~목요일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들을 돌본다. 아들은 월요일에는 간단한 목욕, 목요일엔 침상 목욕을 한다. 최소 세 사람은 있어야 목욕을 시킬 수 있다. 그래서 박쌤과 배쌤이 공동 근무를 한다. 바우처 포인트에서 공동 2인 결제는 1일 3시간까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배쌤은 월~목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공동 근무하는 분이다.
목욕을 시킬 때, 배쌤은 온수를 떠나 나른다. 박쌤과 나는, 좌우 양쪽에서 아들을 씻긴다. 침상 목욕은 침대 위에 방수포와 면포 시트를 깐 후에 한다. 타월 여러 장을 온수에 빨아 온몸을 닦아내는 목욕이다.
지난 8월 13일, 그날은 배쌤이 근무하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이전에 박쌤과 공동 근무하던 분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배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아들에게 가려고 나섰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매스컴에도 물난리에 대한 뉴스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컨 하우스에서 아들이 있는 본가로 갈 때 항상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2~3분 이내에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폭우 때문에 정체된 듯했다. 그래서 장화를 신은 김에 걸어가기로 했다. 잠깐 걷다 보니 눈앞이 물바다였다. 물이 허벅지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물난리였다. 관계자들이 나와서 이물질을 걷어내며 물이 빠지도록 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내가 기다리던 시내버스가 눈앞에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시내버스를 향하여 손짓했다.
"시내버스가 하도 오지 않아서 제가 걸어가려고 했는데, 여기 물바다라 건너갈 수가 없네요. 제발 저를 좀 태워주세요."
심한 빗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내 말이 버스 기사에게 들릴 턱이 없었다. 내가 있는 쪽은 물바다였지만 버스가 서 있는 곳은 그나마 물 깊이가 좀 얕았다. 버스는 역주행으로 운행 중이었다. 버스 기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버스 문을 열었다. 버스 안에서 내려다보니 유람선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옆에 있는 승용차들이 죄다 물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단톡방에 현장을 찍은 영상을 올렸다.
'배쌤, 오고 계시죠? 직진하면 빼도 박도 못해요. 좌회전 신호를 받아 예일 고등학교 쪽으로 오세요. 박촌역 근처가 물바다예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박쌤은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저는 출발부터 차가 엉켜서 못 가고 있어요.'
'지하철 타러 갔다가 박촌역은 잠수로 그냥 통과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서 다시 택시 타러 가요.'
'택시가 한 대도 안 보여요.'
이어서 박쌤은 '차라리 임학역에서부터 걸어갈게요'라고 했다. 박쌤은 걸어서 오면 괜찮은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얼른 톡을 보냈다.
'걸어올 수도 없어요. 걸어오시려면 청소년 수련관에서 과학관 쪽으로 돌아서 오셔야 해요. 너무 멀어서 어떻게 걸어오시려고?'
한편 배쌤은 '도로가 막혀 계속 돌고 있어요. 도로가 물바다예요. 저 한 시간 이상 근처만 맴돌고 있어요. 빠져나갈 곳도 없어요. 그냥 트랩처럼 갇혔어요'라고 했다.
박쌤이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고 걸어오기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하니 차를 끌고 오던 배쌤이 '어디 계신지? 제가 태우러 갈게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본인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박쌤을 챙겨 태우고 오겠다는 그 마음에 감동했다. 자기의 한계 상황을 넘어 동료의 불편을 헤아리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그런 상황이면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라고 하며 되돌아가도 됐다. 천재지변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두 분은 마치 군인처럼, 끝까지 근무지를 향해 오고 있었다. 이 두 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그 물난리에서 빛이 났다. 이런 분은 활동지원사 본부에서 상을 줘야 마땅할 것 같다. 그 두 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할 분이라는 생각에 맘이 울컥했다.
배쌤은 10분이면 올 거리를 장장 2시간 동안 물바다가 된 도로에 갇혔다가 헤쳐 나왔다. 박쌤은 버스를 탔다가 택시를 타기도 하고, 전철역으로 달려갔다가 되돌아 걸어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걸어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발을 동동 구르며 2시간 정도를 길에서 헤맸다.
이날 인천일보 기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날 정오쯤부터 계양구에 있는 박촌역사는 폭우로 외부 빗물이 역사 안까지 들이치면서 선로와 승강장 등이 침수됐다. 이에 약 2시간 동안 열차가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교통공사는 약 200명의 인력을 투입해 배수 등 조치로 역사 운영을 정상화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역사 계단 앞에 차수판을 설치했지만, 시간당 150mm의 폭우가 내리면서 역사 밖에서 빗물이 들이친 것으로 파악된다"며 "신속한 복구를 위해 본사 인원을 최대한으로 투입했다"라고 말했다. (출처 : 인천일보)
10월 2일 목요일, 배쌤이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카톡이 왔다. 그분이 피치 못하여 약간 늦는다는 말에 그 사정이 그냥 이해가 됐다. 왜냐하면 지난여름에 그분이 보여준 진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아무튼, 13년간 중증 환자 아들을 돌보며 울고만 있지 않았다. 때로는 웃기도 하고 삶을 즐기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넉넉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응원이며 깃발이었다.
역대급 홍수로 난리가 났던 그날,
나는 두 분에게 마음을 듬뿍 담은
모바일 상품권을 보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1289
#물난리
#활동지원사
#중증환자
#책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