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그 친절한 버스 기사님을 만났거든요
오늘 87번 인천 시내버스를 탔다. 그토록, 그 기사가 운행하는 87번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거의 2년 만에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지난해부터 나는, 날마다 시내버스를 탄다. 중증 환자로 누워 지내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본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세컨하우스에서 본가까지는 버스로 두 정류장 거리다. 버스를 자주 타다 보니 버스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떤 버스 기사는 큰소리로 이래라저래라 하며 승객을 다그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버스 속에서 들어야 하는 승객은 내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옳은 소리일지라도 기사의 화난 어투는 듣기에 거북하다.
그와 결이 다른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바로 87번 시내버스였다. 그날은 피곤에 찌든 채로 버스에 올랐다.
"피곤하시죠?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라고 기사가 내게 인사했다. 그 인사 한마디에 피곤이 확 달아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분은 승객의 나이에 따라 맞춤형으로 인사했다.
"어서 와, 엄청 덥지?"라고 학생들에게 인사했고 어린이에게는 "안녕? 반가워!"라고 했다.
게다가 내리는 승객들에게 축복하듯 굿바이 인사를 했다. 그날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 그 기사가 외쳤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었다. 정녕 즐겁고 행복한 주말이 될 것 같았다. 때마침 버스에서 내리던 한 여성 승객이 기사에게 상냥하게 화답했다
"기사님도 행복하고 멋진 주말 보내세요~"
숫기 없는 나는 그렇게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시 그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를 탄다면 정답게 인사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그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분이 버스 기사를 그만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내가 확률적으로 승산이 있는 기다림을 하고 있는지 AI에 물어봤다.
나: 8개의 버스가 내 집 앞 정류소를 지나가는데 그중에서 87번 버스는 배차시간이 10분 정도래요. 매일 낮 12시 30분경에 버스를 탄다면 어느 특정 버스 기사 A를 만날 확률은 얼마 정도 될까요?
AI: 만약 하루 동안 87번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가 총 6명이고, 각 기사가 동일한 시간 간격으로 교대한다고 가정하면, A의 운행 시간에 해당할 확률: 1/6 ≈ 16.7%입니다.
오늘 버스를 타던 중에 낯익은 버스 기사가 눈을 맞추며 조용히 인사를 했다. 헉, 알고 봤더니 그 기사였다. 그런데 큰소리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좌석에 앉아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혹시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질책을 받았을까?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런 친절한 인사하는 일에 지쳤을까?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기사는 예전처럼 밝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내리는 손님들도 기분 좋게 응답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기사의 친절한 인사를 듣고 나니 오후 내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런 선한 영향력이 사회에 잔잔히 스며들 것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께 감사드리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시내버스 뒤태를 찍었다.
그리고 오늘도 안전 운행하시길 축복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8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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