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지난날의 회고

삶의 일과

by 오늘따라유난히

2022-08-15


내가 살았던 삶은 투쟁이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는 니체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을 만큼. 내가 살아왔던 배경과, 살아내야 했던 상황과 앞으로의 살아냄을 위한 투쟁이 있을 뿐이다. 최근에 적당히 친했던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를 너무 학대하는 경향이 있어." 내가 썩 우리 관계는 맞지 않는 관계라고 정의짓고 난 한참후의 이야기이다.


나는 행복이 어색한 사람이라, 성큼 한발짝 다가올때면 두발짝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는 건 큰 비밀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살았던 삶이란, 어른이 되고싶은 소년의 삶이었다. 소년으로는 할 수 있는게 많이없었으니까. 그리하여, 주위에는 보편한 삶을 누리고자 욕심을 부려 대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출발선이 다른 삶인데, 속도라도 빨라야지 하는 욕심에 다른사람들의 하루의 일과가 끝나갈때쯤엔 나는 보편하지 않는 다른 하루를 시작하였다. 쉽게 풀어내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19살때부터 4명의 가족을 챙기는 가장이었지만, 보편적인 욕심을 포기하지 못해, 대학교를 진학하고 대학교에 등록금을 모두 대출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달에 4개씩했던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도 찬란한 미래가 있었으면,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으면하여 야간대학교 석사와 취업을 동시에 하였으며, 석사 졸업 후 군대 대신 병역특례로 경력을 이어나갔다.


지난날의 회고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꽤 오래되었다. 이유는 내가 선택을 어떤 방정식으로 풀어나가며 책임지는지를 너무 명확히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썻던 글과 유사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사람으로 풀어볼까 하여 글을 시작한다.

나의 성인의 시작은 4명의 책임이었다. 그러다가 집안이 꽤 안정을 이루었을 무렵, 나는 회사에 팀장이 되었다. 그래봐야 나포함 4명뿐인 팀이지만, 남들은 팀장님들이 처음이겠지만, 생계가 아닌 4명의 일의 책임따위는 나에겐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것들을 의도치는 않았지만 덕분에 평판과 인정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 삶속에 행복에 가까워졌을까, 나는 다시한번 도망친다. 어머니의 정년과, 가족의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10년후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것만 같다는 핑계로.

그리하여 잠을 좀더 줄이고 돈을 버는것으로 선택한다.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지만, 전공인 프로그래밍을 살려 4시간을 더 일하고, 주말은 내내 12시간씩 다른일을 더 했다. 어차피 나에겐 스무살이후부터는 주말따위 존재하지 않았고,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평화라는건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퇴근후의 다른 출근의 그 모든 일들이, 반년동안의 벌이가 내 연봉을 추월하고, 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사람들과 계약하여 일과 돈을 주던 일들이 벌어진 무렵은 30대의 초반즈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에겐 4명의 가족들과 2명,4명,8명으로 불어나는 직원들이 주위에 있었다.

나는 과연 몇명의 사람들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말은 곧, 내가 어디까지의 능력이 있으며, 어디까지 열심히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의 대답이었다. 그들의 의도는 중요치 않은채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에겐 더 큰 책임과 해결을 위해 더 공부하고 일했을 뿐이다. 그 격차가 너무 벌어져 이제는 온전하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라고 확신한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없으니. 멀리서 나를 지켜보면 그 모든 일들이 멋져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빨래같은거라고 생각한다. 수북히 쌓인 먼지들을 떼어나는 일같은.


책임이라는 단어는 좋은 선택을 해야함이란 압박감으로, 좋은선택이란 많은 경험이 전제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한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삶에서 살아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살기위해 책을 읽고, 끊임없이 탐구하는건 천성이 아니라 울음같은거였다.

나는 늘 삶의 고통과 고민, 그리고 행복의 총량이 늘 믿는다. 그리하여 내가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라면 응당 지나가야할 관문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너무 빨리오는것도 늦게 오는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옆에서 누군가 관문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건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늘 고통 없이 성장하는 유토피아를, 아프지 않는 당신의 행복을 늘 기도했었다.

그들은 나의 삶은 꽤 단편적인, 그러니까 중간정도의 나를 모두 아는것처럼 표현하지만, 이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없는 일이라고 단정짓는다. 삶에 정답이 있다면, 정답이 알때까지 길을 제시하고 기다려주어야할까, 아니면 알려주어야할까.


삶은 투쟁이었다. 소리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나에게 행운조차도 노력하지 않으면 잡을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노력하지 않는 행운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하는 배려에는 이기심도 포함한다는 말을 내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쓰고, 콤마가 세개씩 움직이는 통장안에서도 나에게 0몇개는 쥐어주고싶지만, 그래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타인에게 절실하게 친절한 사람이있다면, 그 사람은 그친절을 받고싶은 것이라는 건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게 고생하고 눈물짓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는 나도 그와 같은거라고 말할수는 없겠지.



나의 책임이 줄어든 한해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현명하지 않는 판단으로.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하고, 몇명은 퇴사하고, 또 몇명은 퇴사예정이다. 나의 능력은 이쯤 어딘가라고 결론짓는 날이다. 그래서 내 주위엔 온통 소란하다.

늘 그렇듯 차곡차곡 모아 보이지 않는곳에 소란을 쌓아둔다. 언젠간 저것들도 빨래통에 들어가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나에게 늘 삶이란 할수있다가 아니라 해야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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