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개의 그림자같은 시간
#2024-12-08
#2025-07-26
서른다섯, 벌써 삼십대의 중반의 중반이라니. 역시나 나의 시간은 현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가 싶다. 타인에게 말하진 않지만, 말하지 않고 혼자 책임에 관하여 정리할때가 있다. 책임이란건 누군가가 응당 져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책임은 우리의 생존이다. 생존에 실패라는건 가볍게 우리의 숫자, 우리의 급여, 회사의 매출 같은 것들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던 솔직와 책임, 생존으로부터 생기는 원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국엔 더 잘해보자 같은 말이겠지만, 나의 초침이 멈추지 않길 바라며, 순간이 묶여 장면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쓰고 수정한다. 초고 이후에 아주 검고 빨간 시간을 버텨낸 나에게, 더 살아보자 얘기하고 싶어서.
#1. 솔직과 책임
나에게 청자로써 솔직하다는 말은, "솔직한 건 잘못이 없어요" 라는 말이다. 솔직은 감정과 마음의 영역이지, 옳다,틀리다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하다. 물론 다르다 정도는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로써 솔직은 책임이다.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에겐 부담될 수 있으며, 그 부담은 말하는쪽에선 알 수 없다. 되려 내가 솔직하다는 건, 개인적이나 사회적인것들 까지 포함하여, 듣는이에겐 어떠한 선택 자체를 강요할 때도 있다. A-Z까지 고민하고 사는 나에겐, 누군가에게 말을 하여 무언가를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보기가 붙어있는 선택지를 들이미는것 같아 가급적 인내하는 쪽으로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마무리하거나, 자주 마음이 가라앉는 나로써는 용기를 핑계삼아 말하는건 일종의 습관이라 하겠다. 그 습관을 누군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하였지만.
#2. 원망
가끔 일이 잘 안풀리거나, 왜 이렇게까지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들면 첫번째로 드는 생각은 원망이다. 원망이란 감정을 해체하여, 객관과 주관, 상대방의 성향 나의 관성같은것들로 해체하고 나면, 원망이라는 단어는 결국 이쁜 말로 치환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해체와재조립 과정에는 정신력이라는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내 삶을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지옥에 스스로 들어가고싶지 않기에, 에너지를 만들어내는것까지 노력한다.
#2-1. 사업 수주에 실패할때 처음 드는 생각은 원망이다. 내가 준비했더라면, 당신이 우리의 조급함과 아쉬움, 부족함을 넘어, 생존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부족했다고, 후회는 아무리빨라도 늦다는 교묘한 복수를 하고 싶지만 해체한다. 그게 당신의 최선이지만, 다음엔 더 나은 최선이 있을것이라고, 후회는 늦지만, 성장은 후회와 비례한다고하는 말 내면에는 "저는 생존을 위해 살아요. 그 생존은 책임이란 같은 말과 같은 말이겠지만, 당신의 위치, 권위 그에 따른 책임은 당신의 것입니다." 라는 말이 숨어있다는 건 아무도 알지못하겠지.
#2-2. "나는 여러분들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그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며, 우리 회사의 현재는 모든 사람의 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의 지분은 저에게 있겠지만, 사실 그 모든 것들은 저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라고 하고싶은 말이 "할땐하고,쉴땐쉬고"와 왜 같은 말이되어야하는지, 그리하여 할때가 언제가 쉴때고 할때인지 설명할때는 자주 버겁다. 누군가에겐 정리하는 시간이고 쉬어가는 시간이겠지만, 나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휴식을 장기간 보류하기로 한다. 익숙하게.
#3. 때의 죽음
어른의 삶이란 그런것이다. 나는 때라는 놈을 광장에 매달았다. 겨울의 한파가 매섭다. 틀림없이 오늘 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공연히 살갗이 아리고 속이 시끄럽다. 겨울바람이 허전한 속을 훑으면서 허기진 소릴 흉내 낸다. 나는 갈증을 느낀다. 당신이 없는 고단한 새벽을 견디면서 때의 죽음을 기다린다.
- 여태현 ,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나는 지금의 현재를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때의 죽음을 기다린다. 힘들때, 다들 지칠때, 나도 조금 쉬어가고싶을때. 그 죽음을 기다리며 버텨낸다. 언젠가 너도 지치겠지. 그리하여 그 때가 사라지고 새벽의 그림자 같은 너가 사라지면, 때는 죽고 봄이 오겠지. 스스로 자주 의심하지만 믿지 않으면 갈 수 없으니까, 조금만 더 확신에 찬 것처럼 행동해야겠지. 일상처럼.
#4. 가면
페르소나(Persona)는 Person의 +A 가 붙어서 생긴 것이라고 공부했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면은 필수불가결한거라고 늘 생각해왔다.그렇기에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가면의 정의보다는 무거워서, 단어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면을 열가지가 넘는다고 느낀다. 여러가지 가면은 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만들기에, 나를 알기 시작하는 사람에겐 일종의 호기심, 많이 아는 사람들에겐 피곤함으로 다가감을 안다. 서로 상반되는 가면속에 일반적으로는 친절하고자 한다. 다만, 친절이 연속적일 수 없다면, 애초에 그리하지 않아야겠다 싶기도 한다. 친절이 연속적일 수 없다는 말은 나에겐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당신들의 급여나 나의 대한 미움, 원망들도 포함이겠지. 조만간 언제까지 친절할 수 있는가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책임지세요 라는 말을 죽도록 싫어했기에, 당분간은 조금더 외롭겠다.
#5. 이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라는 오만을 이전의 글에서 써놓은적이 있다. 내가 아는 나는 친할수록 힘든 얘기는 하지않고, 그럼에도 해야한다면, 적당히,애둘러,가볍게 라는 부사가 늘 붙는것처럼. 나의 당신들에겐 친절하며, 나의 힘든얘기는 한켠에에 쌓아두고, 처음엔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을 보여주고, 힘들이 생기면 해결하며, 해결이 두번째고 마음 불편한일이 생기지 않는것이 첫번째라는 말을 하는 내가 있다. 내가 힘들땐 의지하지 않으며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나의 불행을 전염시키지않고, 나의 어두움을 논리의 근거로 쓰지않는 역설이 뭉쳐있기에 이해 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남는 말은 이해는 받는것이 아니라 하는것이라고. 이 말은 "혼자고있고싶은걸까.눈에 띄게 혼자있고 싶은걸까" 라는 가사와 같은말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섬에 가둔다는 느낌보단, 나는 나의 책임을 안다. 나의 솔직은 누군가에 선택 자체를 강요하기에, 우리의 합이 최선이 되길 바랄 그 뿐이다. 언젠간, 당신도 나에게 애둘러 말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나의 침묵과 책임이 언젠간 닿길 기도하는 마음과 함께.
#6. 선언
이글에도 다시금 선언한다. 나는 당신의 모자름을 나무라지 않고, 지침을 탓하지 않으며, 당신의 건강과 안녕과 안위를 바라겠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때까지 나의 당신들에게 원망이나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겠다. 그 과정에 나는 오해와 비난, 채찍같은 말들에 오랫동안 서있겠지만, 어떠한 일로 원래 당신 혹은 우리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설명치 않겠다. 다시금 그 오랜 글에 표현한 나를 오해할 권리는 당신에게 있고, 나는 그걸 해명할 의무는 없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무언가들이 정리되고 해결되면 당신에게 말하겠다. 해결은 마음도, 말도 아니며, 행동이고 책임이다. 말뿐인 것과, 말로하였을때 공감이나 이해함의 정도는 당신의 몫이니, 그정도는 당신의 몫으로 두겠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가끔은 지금이 우리의 이야기의 마지막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생존을 위해 챕터를 이어나가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안녕하길 바란다. 다음챕터는 겨울인지 여름인지를 모르는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