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의 여행
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해외출장이다. 유럽과 미주 같은 장거리 국가를 담당하는 내 경우는 더 그렇다. 한 번 출장을 가면 최소 일주일 이상 새로운 문화 속에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로 3월 체코, 5월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통째로 날아갔다. 첫 동유럽 출장이라 1월 말부터 흥얼거렸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4년 만에 해외여행 없는 3~6월은 한없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반면 국내 상황은 정부, 질병관리본부, 국민이 힙을 합친 결과 많이 호전됐다. 이 덕분에 활동 반경을 조금씩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감소했던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출장과 시장조사를 핑계로 서울을 벗어났다. 4월 여수, 5월 부산, 6월 제주도를 다녀왔다. 6월의 여행은 4월과 사뭇 달랐다. 같은 지역이 아니라 정확한 비교는 아니겠으나 여행을 대하는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건 쉬이 체감할 수 있었다.
6월14~16일,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온 제주도는 상시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고는 예년과 달라진 게 없었다. 8만원으로 구매한 3·3배열의 대한항공 항공편은 왕복 모두 한 자리도 빠짐없이 사람들로 채워졌고, 제주공항 출국장 면세점은 담배와 주류, 화장품을 구매하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호텔은 당일 만실이라 주차장 사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의 눈빛도 크게 달라졌다.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의 여수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면, 제주도에서는 관광객부터 호텔, 식당, 관광지, 지역민까지 방역수칙 준수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대부분의 관광객이 착실히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제주 내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100%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착용하지 않은 시민이 버스에 타려고 하자 버스 기사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청정 제주를 지켜나가고 있다. 물론 해열제 10알을 먹고 제주여행을 강행한 확진자 탓에 57명이 자가격리됐고, 관광지와 식당 영업의 차질을 빚게 했다. 여론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3~5월 고전을 면하지 못했던 제주 관광 시장은 6월 들어 작년 동기의 73% 수준으로 시장을 회복했고, 7~8월 성수기에는 80% 이상 정상화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를 시작으로 지자체, 여행사, 여행플랫폼 등이 국내여행을 위한 특가 이벤트를 풍성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손 세정제 사용 일상화 등을 이어나가고, 풍경 위주의 야외 관광을 주로 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LCC를 중심으로 국내 항공 운임이 크게 떨어졌다. 김포를 기준으로 여수, 양양, 제주, 부산, 광주를 SRT, KTX보다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나 같은 경우 지난 3년간 저렴한 일본행 운임을 찾던 것처럼 최근에는 국내여행을 위해 항공사 웹사이트를 들락날락하고 있다.
자유여행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행업계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그들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설문조사와 현지 업체로부터 전해 듣던 국내여행의 흐름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짧은 기간 동안 여행 패턴을 크게 바꿔놨다. 먼저 여행을 함께하는 구성원의 변화가 뚜렷해 보였다. 제주도는 원체 가족여행객이 많다지만 이번엔 더욱 도드라졌다.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와 조부모를 동반한 여행객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관광버스 단체여행은 한 팀도 보질 못했다. 용머리해안, 송악산 등 주요 관광지 어딜 가나 대형버스를 위한 주차공간은 텅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6~10명으로 구성된 소그룹 여행객은 이따금 마주쳤다. 또 골프 여행객도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골프백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 쉼 없이 쏟아졌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결국 여행사가 여행객의 변화에 맞춰가야 할 것이다. 소그룹을 위한,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맞춤상품을 준비하거나 액티비티나 자연탐방 특화 상품 등 해당 여행사만의 철학이 담긴 일정도 대안 중 하나다. 안전과 방역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만큼 가이드 등 인적 서비스의 깊이를 더할 수도 있겠다. 패키지에 한계를 느꼈다면 FIT를 겨냥한 플랫폼 준비도 가능하겠으나 쉽지 않은 길이다. 결국 여행사의 경우 명확한 노선을 정하지 않는다면 올해는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