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기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균 여행기자 May 20. 2019

기꺼이 '트래블 푸어'가 되겠다

여행기자의 여행

조금의 시간이라도 허락돼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떠나려는 게 요즘의 마음이다. 풍족한 급여는 아니지만 기꺼이 ‘트래블 푸어’를 자청할 수 있을 만큼 여행이라는 행위가 이미 내 삶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니. 그저 감당할 수 있는 비용 안에서 최선을 다할 참이다. 지금 마음껏 가지 않으면 분명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는 사실을 지나간 시간을 토대로 알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밋밋했던 10대 시절로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엔 몰라서 그랬다. 하교 후 스타크래프트로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농구를 하거나 시내에서 버즈와 SG워너비를 목청껏 찾아대기 바빴다. 딱 2005~2006년 평범한 학생들의 일상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 색깔 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저 무탈했다. 좀 더 어렸을 때 해봤으면 좋은 것들 중에 이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게 있는데 반해서, 여행은 학창 시절과 20대 초반의 아쉬움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항목이다. 어릴 때부터 가기 시작했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에 지금부터라도 여행이 질리는 날까지 돌아다니고 싶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여행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어떠한 형태의 여행이라도 저마다 재미와 감동, 가치가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선 내가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해외 출장이 종종 있다. 출장이라면 난색을 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출장 일정에는  평소의 나라면 전혀 하지 않을 것들을 경험하게 되고, 거기서 오는 새로운 즐거움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여태껏 클럽 또는 비슷한 곳도 가보지 않았는데 텔아비브에서 경험한 나이트 투어를 통해 인생 첫 클럽 나들이를 떠났다. 평소 클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깨지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음악과 사람에 흠뻑 취해 다음 날 일정을 다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짜릿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과연 경험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다음으로 가족여행은 보람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여행 형태다. 단적인 예로 조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경주, 도쿄 등을 다녀왔는데 매번 뵐 때마다 여행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말씀하실 때 웃으신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런 경험을 언제 했겠냐며 말씀하시는데 그 기분은 어떠한 칭찬보다 더 값지고 달콤하게 들린다. 또 여행이 쌓일 때마다 집을 채워가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가족 간 유대감이 더욱 강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어른들을 모시고 갈 때 패키지가 당연 편하고 손이 덜 가지만 한 번쯤은 자유여행, 그것도 해외로 떠나길 추천한다. 새로운 종류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니. 친구랑 가는 것도 물론 좋다. 단순히 식사하고 술 마시고 이상의 취향을 알게 되고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애틋하다고 할까. 여행을 같이 다녀올 정도라면 취향면에서 80% 이상 일치하니 말이다.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3주까지도 보낼 수 있는 사이라면 마음이 더 가는 것도 당연한 일. 진짜 소울 프렌드를 구별하는 방법은 여행이 최선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혼여를 통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지만 마주한 현실을 제쳐두기가 쉽지 않더라. 어쨌든 한국을 떠나면 서울의 일은 완전히 까먹게 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내 마음 상태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너는 지금 어떠니, 지금 생활 괜찮니. 앞으로 뭐하고 살까 등 수많은 물음을 던지며 내 상태를 점검한다. 이런 자문자답이 요즘 들어 더 효과적으로 나를 치유하고 있다. 또 혼자 돌아다니면 개취를 10000% 반영할 수 있다. 진짜 좋아하는 것, 공간, 음식, 분위기로 여행을 꽉 채울 수 있어 갈 때마다 혼자 히죽거린다. 최근에 츠타야 오모테산도점을 방문했고, 해당 스토어 2층에 안진이라는 라운지에서 시간을 한껏 보냈다. 미리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더x10000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2시간을 보낸 뒤에는 마치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다 모았을 때 저릿했던 것처럼 폭발적인 행복감을 느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서 가는 여행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이렇게 몇 종류의 여행을 소화하려면 부지런히 다녀야 하고, 통장은 언제나 간당간당하다. 월급은 당연히 스쳐 지나갈 테고.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내 머릿속의 감정과 외장하드에 채워진 여행사진, 그리고 브런치에 쌓일 글들로 충분하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