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갱여사 Jun 27. 2024

갱년기의 서막, 체중 증가

죽어라 운동해도 살이 안빠지는 이유 

늘었다 줄었다 다이내믹한 여성의 체중


  호르몬의 변화가 체중과 식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주제일 것이다. 월경주기의 후반기에 유독 식욕이 증가하고 하복부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호소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실제로 에스트로겐은 식욕을  통제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배란기에는 식욕이 감소하고 배란 이후에는 식욕이 증가한다. 쥐와 같이 발정기가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에스트로겐 분비가 증가하는 발정기 때 음식섭취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1]. 또한 폐경이 늦게 될수록 몸무게 증가가 적다는 연구도 있다 [2].


  임신 출산 과정을 거치는 여성들은 더욱 다이내믹한 체중의 변화를 경험한다. 임신한 여성이 아무리 체중관리를 잘해도 임신 전 보다 최소 9kg~15kg 정도 체중이 증가한다. 이 중 아기가 차지하는 무게는 양수를 포함한다고 해도 5kg를 넘기기 어렵기 때문에 출산 후 5kg ~10kg 정도가 고스란히 남게 된다. 산모와 친구들이 출산 후에도 들어가지 않는 배를  보면서 “아직 배 속에 아기가 한 명 더 있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을 들어본 웃픈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만약 이전 몸무게를 회복하지 못한 채 출산을 2번 정도 하게 되면 미혼시절에 비해 20kg 정도 훌쩍 늘어난 풍만한 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여성들은 아무래도 남성들보다 더 비만해질 위험요소가 더 많고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더 크기 때문에 체중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출산 후는 또 어떤가. 고된 육아의 긴 터널로 인해 체중을 예전으로 돌이키기는 여간 쉽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과 돈과 체력이 필요하지만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는 블랙홀처럼 아이에게 빨려 들어간다. 어영부영 육아에 수년을 보낸 후에 이미 적응이 되어버린 체중을 다시 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무래도 출산 전보다는 체중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중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중감량에 성공하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런 철의 여성들도 체중으로 인해 좌절을 겪는 시기가 있다. 그게 바로 갱년기이다. 갱년기 들어서 예전과 비교하여 먹는 양이나 활동양은 변함이 없는데 계속 체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이 시기에 운동을 하고 식이습관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 한 해 평균 1~2kg씩 서서히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갱년기의 시작을 알리는 체중 증가


 나 역시 본격적인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기 전 체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마른 체형으로 태어났고 20대까지는 많이 먹어도 그다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식탐이 있는 편이라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배가 불러도 계속 먹는 편이다.  임상수련을 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공무원을 그만두고 잠시 쉬던 시절 큰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의과대학 입학 후 10년 만의 휴식이었던 데다 입덧을 핑계로 친정에 머물면서 삼시 세끼 친정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산해진미를 즐기게 되는 바람에 막달에는 임신 전에 비하여 거의 30kg 나 체중이 늘어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출산직후 바로 산부인과 레지던트가 되어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었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될 무렵 나는 원래의 몸무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연이어 둘째 임신을 하는 바람에 다시 몸무게가 10kg 가냥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임신 전 몸무게는 53kg이었고, 첫 출산이 임박했을 때 마지막 몸무게는 79kg이었다. 둘째를 임신하기 직전 몸무게는 다시 53kg이었고 둘째를 출산할 당시는 65kg이었다. 이 때는 독일 유학을 가면서 엄청나게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다시 원래 몸무게가 되어있었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 엄청난 변동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그럭저럭 출산 전의 몸무게를 유지해 왔고 2016년 대구에서 갱년기 클리닉을 개업할 당시에도 나의 체중은 53kg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서서히 체중이 증가하더니 2018년에는 57kg 이 되었다.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서 가뜩이나 예전에 비하여 얼굴에 주름도 많아지고 체력도 약해지고 있는데, 어느덧 거울 속의 나는 뚱뚱한 중년여성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못생겨지고 있다고 느꼈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우울해졌다. 식사를 하루 2끼로 줄였지만 그래도 55kg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나의 클리닉에 찾아오는 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을 하는데 어느덧 서서히 체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  1kg…  또 1kg… 같은 시간에 식사하고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체중이 늘어가는 것이다. 3~4kg 정도 증가하고 원래 입던 옷이 안 맞게 되면 심각성을 인지하고 감량을 시도하는데 여기 또 한 번의 반전이 있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려도 좀처럼 체중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때 당황한 여성분들이 나의 클리닉에 찾아와서 도움을 청한다.


갱년기에 체중이 증가하는 이유

 사실 위에 기술한 예는 평소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면서 식사도 관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다. 만약 잦은 회식에 노출되어 있거나, 직업적 이유로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거나, 운동을 할 시간이 거의 없는 분들이라면 1~2년 사이에 10kg 도 증가할 수 있다. 비만을 유발하는 요인은 나이, 유전적 요인, 기저질환,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갱년기에 발생하는 체중 증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갱년기 때의 체중 증가는 기초대사량의 감소에 의한 것이다. 즉, 이전에 비하여 에너지효율이 더 높은 몸이 되는 것이다. 근데 이것이 꼭 나쁜 것일까. 비만한 여성들의 폐경이 정상체중 여성들에 비하여 늦게 온다는 연구들이 있는 것처럼, 폐경 후 지방세포에서 생산되는 에스트로겐이 난소에서 생산되는 에스트로겐을 대체하기 때문에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마치 구석기 시대처럼 음식이 부족한 환경에서 에너지효율이 높은 신체는 생존에 유리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손을 만들지 못하는 후기 가임기나 폐경기 여성들이 자신들의 에너지효율을 낮춰 음식소비량을 줄이고 나머지를 자손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한 것이라는 흥미로운 인류학 가설도 있다. 하지만 음식이 풍족한 현대에서 에너지효율이 높은 신체는 지나친 체중증가를 야기하고 이로 인해 각종 심혈관질환의 발생과 이로 인한 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


갱년기 체중증가는 난소의 에스트로겐 분비 기능이 떨어지기 전부터 시작된다. 즉 안면 홍조, 발한 등의 대표적인 폐경이행기 (menopausal transition) 증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발생할 수 있다. 뇌에는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사령부 역할을 하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가 있다.  가임기 여성의 뇌하수체에서 난포의 성장을 자극하는 난포자극호르몬 (follicle stimulating hormone;FSH)을 분비하면 난소는 이것의 영향을 받아 난포를 성장시키고 성장하는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을 분비한다. 그러나 갱년기가 되어 난소의 기능이 감소하면 이전과 같은 자극으로는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뇌하수체에서는 더 많은 난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하여 난소의 기능을 유지하려고 한다.  마치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같이. 갱년기가 처음 시작될 때는 뇌하수체의 난포자극호르몬이 증가하여 감소된 난소의 기능을 바로잡아주기 때문에 에스트로겐 부족에 의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증가된 난포자극호르몬은 난소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세포도 자극시키기 때문에 이전보다 쉽게 체중이 증가한다 [3].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난포자극호르몬(FSH)은 에스트로겐 분비를 촉진시킨다. 동시에 갱년기때 높아진 FSH는 내장의 지방세포를 자극하여 내장비만을 촉진시킨다.



 갱년기 이전의 여성은 체지방이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하지방으로 분포한다. 피하지방은 신진대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식량부족시 활용할 수 있는 영양창고로서 역할을 한다. 또 여성의 풍만한 곡선을 만들어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어주고 이성에 어필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갱년기 여성의 사정은 다르다. 증가된 난포자극호르몬은 지방세포, 특히 내장지방에 작용하기 때문에 배안쪽 내장 사이사이에 있는 지방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 지방들은 미세염증을 유발하고 고지혈증, 당뇨 등 대사증후군과 연관되어 있어 신진대사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한 노화에 의한 근육량과 골량이 감소하게 되면 전체 체중대비 지방의 비율이 증가하여 몸무게는 이전과 비슷해도 실제 체지방량은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 그림 설명: 여성과 남성은 체지방이 분포되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의 피하층에 축적되어 서양배 모양을 보인다. 남성은 내장지방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사과 모양의 체형을 보인다. 갱년기가 되면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서 지방 재배치가 일어나 여성형 비만(gynecoid obesity)에서 남성형 비만(android obesity)으로 체형이 변화한다.



슬기로운 갱년기 체중 관리법


 나 역시 에스트로겐 부족 증상이 발생하기 약 2년 전부터 체중증가가 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갱년기와 연결시키지 못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당시에는 40대 중반이었기에 갱년기의 전조증상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출산 후 몸무게가 증가했을 때마다 큰 어려움 없이 감량에 성공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적당히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으로는 절대 살이 빠지지 않았다. 2019년에 비로소 갱년기임을 자각하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면서 체중감량을 위해 식욕억제제를 복용해 보았다. 처음에 펜터민 서방정 제제를 복용했는데 효과가 너무 강해서 적절히 식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한 번은 이틀 연속으로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어 식음을 전폐한 채 몰두하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게다가 이 종류의 약들은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기 때문에 수면에 방해가 된다. 안 그래도 수면장애로 고생 중이었기 때문에 효과는 좋았지만 건강을 오히려 망칠 수 있다고 판단되어 복용을 중지하였다. 


 식욕억제제를 중지한 후 반대급부로 엄청난 식욕이 몰려와 한동안 고생을 했다. 식욕억제제 덕분에 53kg까지 감량할 수 있었지만 쓰나미같이 몰려오는 엄청난 식욕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식욕억제제를 이용하여 체중을 감량했을 경우 대부분 요요현상을 경험한다. 갑작스러운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기아 상태에 있다고 인지하고 틈만 나면 음식을 먹으라고 식욕을 증가시키는 각종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제2의 뇌라고도 불리는 장에서도 다양한 식욕과 관련된  호르몬들이 분비되는데 이들 뇌-장 연합군의 압력에는 아무리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과도한 다이어트 후에 뇌-장 연합군이 분비하는 식욕 촉진 호르몬들은 다이어트를 중지하고 수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증가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수백만 년을 기아와 싸우면서 진화해서 그런지 우리의 몸은 체중이 감소하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갱년기 클리닉에 방문하여 체중증가를 호소하시는 분들 중에는 잘못된 운동이나 식이습관을 교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의외로 정상체중이신 분들이 꽤 있다. 상담을 해보면 의사의 조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제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증가하여 갱년기 클리닉을 찾는다.  이런 분들의 비교대상은 20대나 30대의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아무리 피부관리를 해도 20대의 팽팽한 피부과 될 수 없듯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갱년기 체중 관리 시 중요한 것은 적절한 목표 설정이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면서 의욕이 앞서 하는 김에 20~30대 때의 젊은 몸매로 돌아가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신체의 신진대사가 예전과 다르기 때문에 젊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게되면 체중은 줄어들지 몰라도 지방이 아닌 근육과 뼈의 손실이 올 수 있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예전에 비하여 혈당의 변화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저혈당 등으로 인해 발한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고 폭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에스트로겐은 난소뿐만 아니라 체지방세포에서도 만들어진다.  난소 기능이 상실되는 갱년기에는 체지방세포가 호르몬 공급원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체중이 증가하는 것은 여성의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로 생각되기도 한다. 


 갱년기 체중 증가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올바를 생활습관을 정립하겠다는 관점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시기의 체중증가는 어쨌든 노화와 맞물려 가는 현상이고 기초대사량이 감소하는 근본적인 취약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일생동안 계속 치뤄야 할 장기전이다. 결국은 이전과는 다른 생활습관을 계속 유지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기초대사량이 감소하는 것은 노화의 한 축인 근육량이 감소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내장비만을 막고 적당한 근육량과 뼈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과연 평생 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령 어떤 음식을 어떤 간격으로 먹기로 하였다면 그렇게 평생 할 자신이 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식단계획을 세우거나 무리하게 운동을 한다면 단기간에 체중감량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칫 건강을 해치고 요요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단지 몸무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식욕억제제 한 달만 먹어도 3~4kg는 쉽게 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근육과 뼈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정립하고 이를 꾸준하게 실천한다면 어느새 적정 몸무게에서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며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The ovarian hormone estradiol plays a crucial role in the control of food intake in females  Physiol Behav. 2011 Sep 26;104(4):517-24. 

2.  Effect of aging, menopause, and age at natural menopause on the trend in body mass index: a 15-year population-based cohort. Fertil Steril  2019 Apr;111(4):780-786. 

3. Obesity and menopause. Best Pract Res Clin Obstet Gynaecol. 2023 Jun;88:102348


작가의 이전글 롤러코스터? 내가 아니라 내 호르몬이 탄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