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잠 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잘 자. 좋은 꿈 꿔.

by 곶감씨

아차 하는 사이 아이들 잘 시간이 지나버렸다. 막내가 눈을 부비며 “엄마 잠 와”한다. 자연스레 이불을 찾아 뒹구는 아이의 모습은 더 없는 평화다. 네 아이가 저마다 편한 옷을 입고 까르륵 거리며 잘 준비를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2015년. 첫째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여가 되자 아이와 나 단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일생일대 가장 공포스러운 날들로 기억되는 그때. 정말이지 한 인간을 낳아 기르는 일이 어떤 일인 줄 전혀 몰랐던 그때.


육아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 잠이 부족해 반쯤 미쳐있던 나에게는 아이의 모든 것이 어려웠다. 한 밤에는 아이의 눈 뜨는 소리가 들린다 할 정도로 아이가 깨기도 전에 놀라 잠이 깨고, 낮에는 내내 자는 아이의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있다가 아이가 깨어나기 시작하면 덩달아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아이가 깨어나는 게 무서웠다. 내내 자던 신생아 때 밖에 모르던 신생모인지라, 제 속도에 맞게 잠이 줄어가는 아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이 잘 재우는 법이 반 이상인 온갖 육아정보들도 아이의 깨어남을 두렵게 하는데 한몫했던 것 같다. 먹놀잠, 수면분리법 등등 백만 가지의 수면 교육들이 마음을 짓눌렀다. 동시에 아이가 깨어있는 순간들이 너무 공포스러웠다. 알 수 없는 존재를 앞에 두고 바보가 된 것 같은 숨 막힘은 아이가 잘 때 그나마 좀 나았다.


나는 아이를 재우는데 혈안이 되었다. 잘 재우기 위해 잠든 아이를 깨우느라 난리, 또 깬 아이를 재우느라 난리. 매일이 난리였다. 아이가 돌을 지나며 하루 두 번 낮잠 텀마저 벌어지기 시작했을 땐 아이 재우는 일이 전쟁 같았다. 끝내 어느 날엔가는 말도 못 하는 어린 내를 거칠게 잡아끌며 “자지 마! 자지 마!”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아이는 재울 때마다 울었다. 그리고 자는 걸 너무나 싫어했다. 주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안 자고 버텼다. 만 두 돌 즈음엔 낮잠도 안 자고, 밤에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한 번은 울어야 잠에 들곤 했다. 그렇게 어렵게 잠이 들곤, 새벽 2시경에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며 깨어났다. 야경증이었다. 한 밤 중 자다 깨어 아무리 해도 진정이 안 되는 아이를 어찌할지 몰라 이젠 밤이 무서웠다. 오늘 밤은 또 어떤 전쟁을 치르게 될까 겁이 났다. 피곤한 아이는 오후 4-5시경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악을 쓰며 울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둘째를 낳을 때 즈음 첫째의 야경증이 극에 달했다. 이제 두 아이를 동시에 어찌 재우나 오로지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웬 걸. 수시로 동생 젖 먹이랴 자기 곁에서 멀어진 엄마가 첫째에겐 오히려 반가웠던 걸까?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잘 자기 시작했다. 둘째는 또 얼마나 잘 잤는지. 조잘거리는 형아와 엄마 옆에서 뒹굴거리다 가만히 잠든 둘째를 보며 아기가 이렇게 자기도 하는구나 감격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순하고 무던했던 첫째였다. 부족한 엄마에게 더없이 너그럽던 첫째. 그때는 아기가 졸리면 잔다는 걸 몰랐다. 그저 아기가 졸려할 때 잘 재워주는 게 내 몫인 줄을 몰랐다. 아기를 위해 재우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아기를 재웠던 것 같다. 고생한 첫째 덕에 둘째, 셋째, 넷째는 모두 편히 자는 법을 배웠다. 잠만 자려하면 예민해지고 화를 내던 엄마 탓에 맘 편히 “엄마 잠 와” 한 번을 못했던 첫째가, 그래서 여태도 아리고 안쓰럽다.


그 첫째가 이제 10살이다. 여직도 웬만해서는 낮잠 한 번 안 자는 아이지만, 까만 밤의 환한 잠자리를 행복해할 줄 아는 아이를 보며 뒤늦게 마음을 쓸어내린다. 아이들의 편안한 잠자리가 이토록이나 애달프고 귀한 것인 줄을, “엄마 잠 와”하는 막내의 한 마디로 곱씹게 된다.


부디 너희의 잠자리가 내내 편안하고 행복하길. 가만히 잠을 기다리는 밤의 평화가 너희에게 더없이 안락하고 안온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모두 잘 자. 좋은 꿈 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