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 바이러스 받지 마세요.”

오늘도 나는 너희의 응원에 힙입어,

by 곶감씨

살림은 참 어렵다.

20대 중반에 독립하여 자취를 시작했으니 살림이 내 일이 된지도 어언 15년이 넘어가는데 어째 매일 더 어려워진다. 그 중에서도 날로 난이도를 더해가는 살림은 단연 '집정리'이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그 자리에 그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건만 아이가 넷이 되고 그 넷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니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곱의 곱으로 늘어가고, 알 수 없는 물건들로 뒤 덮인 내 집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 그렇다. 그 물건들은 나에게 점령군이나 다름없다. 나의 공간과 체계와 여유를 앗아간 점령군. 뒤돌아서면 언제 무찔렀냐는 듯 다시 약을 올리며 내 집안을 헤집는 고약한 녀석들. 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갈 곳 잃어 방황하는 물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집안을 점령당하고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집을 정리할 때마다 나는 싸움꾼이 된다. 도대체 이 물건을 여기에 둔 녀석은 누구이며, 여기에 둔 체로 수 일이 지났음에도 왜 여전히 여기에 있는가 수없이 질문을 던지며, 난폭하기 그지 없는 미치광이가 된다.


정리를 시작하면 엄마가 이상해지는 걸 아이들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서 늘 정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심호흡을 하고, '오늘은 잘 치워봐야지. 어차피 치울 거 짜증내지 말고 치워야지. 이것도 교육이야. 아이들에게 정리하는 걸 가르치는 계기로 삼자.' 마음도 먹지만 구석구석 잘도 쳐박혀있는 물건들을 마주할 때면 속절없이 내 안의 미치광이가 깨어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왜 집을 정리할 때마다 이렇게 화가 날까?' 어느 날엔가는 진지하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억울함'.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내가 어지른 것도 아니고, 나라면 어지르지 않았을 것들을, '나만' 치우고 있다는 억울함이였다. 한 편 그것은 '내 집'에 대한 주장이기도, 미련이기도, 욕망이기도 했다. 마음 한 켠 고이 모셔둔 어느 화면 속 깔끔한 집의 모습을 도무지 지키지 못하는 답답함과 망연함은 끝내 내 집을 어지르는 것들(?!)에 대한 분노로 승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린다.


왜 내 집을 이토록이나 망쳐 놓는 것인가!

어질렀으면 치우기라도 할 일이지!

근데! 왜! 이건! 나! 혼자! 치우고 ! 있는! 것인가!!!!!!!!


수 백개의 느낌표를 미사일처럼 온 집 안에 쏘아대기 시작하면 내 안의 미치광이가 깨어났다는 신호가 된다. 씩씩거리며 쉴 새 없이 발사되는 느낌표를 피해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한다. 첫째는 '얘들아, 집 좀 치우자!'하며 집정리에 동참한다. 성이 붙여진 이름이라도 불리우면 즉각 '아이구 엄마 미안해. 내가 그걸 거기다 뒀네' 하며 재빠르게 움직인다. 물건을 들고 총총 사라지는 녀석의 등판이 흡사 아저씨같다. 언제 저리 능글맞아진 걸까. 쏠라면 쏘라는 듯 그 널찍한 등판에 대고 차마 느낌표를 쏘아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는 조용히 자기 구역을 치운다. 치운다, 치웠다 말도 없이 가만히 자기 물건을 치우는 녀석은 흡사 작은 새앙쥐 같다. 자기의 집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새앙쥐. 아직 자기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도 모르는데 이건 집이 아니라는 엄마의 포효에 미처 의문을 던지지도 못하고 물건을 챙긴다. 그래. 여긴 네 집이기도 하지. 거기에 또 느낌표를 쏘아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막내는 천하태평이다. 온 내리사랑의 바다 속에서 여유로이 헤엄치며 자라온 그 아이에게는 어떤 느낌표도 소용없다. '싫어!' '내 꺼야!' '흥!' 하며 역으로 느낌표를 쏘아대는 아이에게는 오히려 내가 주눅이 든다. 그 당당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기라도 하면 어찌될 것인가. 피하는 쪽은 내 쪽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셋째에게서 마무리된다. '엄마! 바이러스 받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에요!'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다. 언젠가 '엄마는 집 정리 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엄마를 달랜다는 말이 '스트레스'가 아닌 '바이러스'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바이러스가 아닌 스트레스'라고 정정을 해주며 터진 웃음에 첫째도, 둘째도, 막내도 덩달아 웃는다.


그래 이건 바이러스일까. 나는 여섯의 가족 중 하나인데도 여전히 다 내 맘대로이길 바라고, 엄마로서의 책임에는 여전히 아둔하게 하는 바이러스일까? 그런 바이러스라면 받지 말아야 할 일이 맞다. 그 바이러스를 이기진 못한 어느 날에는 잔뜩 느낌표를 쏘아대느라 망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창고문 앞, 아일랜드 식탁 뒤에 숨어 생라면을 부숴먹는다. 바닥에 잔뜩 쏟아지는 라면 가루와 스프 가루를 여란듯이 바라보며 '나도 어지른다'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 손바닥으로 야무지게 바닥을 쓸어내고, 아이들의 머리와 등과 어깨를 쓸어내린다. 내 집이 아닌 우리집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렇게 매일같이 배우는 것 같다. 배우느라, 이리도 어려운가 보다. 그래도 너희의 널찍한 등과, 분주한 손과, 너그러운 마음과, 작은 입술에 기대어 다시, 미치지 않고 집 정리하는 날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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