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공격수
쇼기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흡사 전국시대 전장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왕을 지키는 금장(金将)이 든든한 근위대장이라면, 오늘 이야기할 은장(銀将, 긴쇼, 보통 줄여서 '은'이라고 함)은 적진을 헤집고 다니는 날렵한 무사와 같다.
금(Gold)보다 귀하지 않은 은(Silver)이라서 2인자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쇼기 고수들은 단언한다. "금장은 수비의 요체요, 은장은 공격의 핵심이다." 쇼기 판 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연한 춤을 추는 기물, 은장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은장의 움직임은 독특하다. 체스의 킹이나 비숍처럼 단순한 규칙성을 띠지 않는다.
전진: 앞으로 똑바로, 그리고 대각선 양쪽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3방향)
후퇴: 뒤로는 오직 대각선 양쪽으로만 빠질 수 있다. (2방향)
총 5칸을 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은장은 바로 옆(좌우)이나 바로 뒤로 갈 수 없다. 옆구리와 뒷덜미가 비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불완전함'이 은장을 공격적으로 만든다. 뒤로 물러날 때도 비스듬히 빠지며 적의 공격을 흘려내는 모습은 마치 펜싱 선수의 스텝처럼 경쾌하다. 수비적인 금장이 묵직하게 자리를 지킨다면, 은장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활로를 개척해야만 제 몫을 다할 수 있다.
쇼기 격언 중에 "공격은 은, 수비는 금(攻めは銀、守りは金)"이라는 말이 있다. 이 한 문장에 은장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왜 은장이 공격의 핵심일까?
첫째, '교환의 경제학' 때문이다. 쇼기의 기본 원리는 내 싼 기물을 주고 상대의 비싼 기물을 취하는 것이다. 왕을 지켜야 하는 금장은 수비의 핵심 자산이다. 금장이 공격하러 나가는 순간, 본진의 수비벽(울타리)은 헐거워진다. 반면 은장은 금장보다 수비 기여도는 낮지만 공격성은 높다. 그래서 우리는 은장을 적진에 던진다. 내 은장을 주고 상대의 금장이나 은장을 벗겨낼 수 있다면(기물 교환), 상대의 수비벽을 허물었으니 남는 장사다. 즉, 은장은 '상대 수비진과 맞바꿀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자산'이다.
둘째, 유연한 '후퇴 능력' 때문이다. 금장은 앞으로는 강하지만 대각선 뒤로 빠질 수 없다. 한번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다는 뜻이다. 반면 은장은 대각선 뒤로 빠질 수 있다. 치고 빠지는 '히트 앤 런'이 가능하다.
결국 은장은 "죽어도(교환돼도) 금장보다 덜 아깝고, 살아서 돌아올 확률도 높은" 기물이기에 공격의 최전선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쇼기를 막 시작한 입문자라면 다음의 세 가지 전술적 포인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승률이 달라진다.
첫째, 봉은(棒銀, 보긴) 전술을 익혀라.
'막대기 봉' 자를 써서, 은장을 막대기처럼 쭉 뻗어 올린다는 뜻이다. 비차가 있는 쪽의 보병을 올리고, 그 뒤를 은장이 따라 올라가며 상대의 수비진을 돌파하는 전술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프로 기사들도 애용할 만큼 파괴력이 강력하다. 은장을 어떻게 공격에 가담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봉은'부터 연습하길 권한다.
둘째, '불승격(나라즈)'의 묘미를 깨달아라.
은장이 적진(상대방 진영 3줄)에 들어가면 승급하여 '나리긴(成銀)'이 될 수 있다. 이때는 금장과 똑같은 움직임을 갖게 된다. 보통은 승급하는 게 이득이지만, 은장은 예외인 경우가 많다. 앞서 말했듯 금장은 대각선 뒤로 빠질 수 없다. 따라서 적진 한복판에서 유연하게 후퇴하거나 대각선 뒤쪽의 기물을 잡아야 할 때는, 승급하지 않고 은장의 움직임을 유지하는 '불승격'이 묘수(妙手)가 된다.
셋째, 보병 뒤에 숨지 마라.
은장은 보병의 머리 위(앞칸)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초심자들은 은장을 자꾸 보병 뒤에 숨겨두려 한다. 은장은 보병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보병보다 앞서 나가서 싸워야 하는 기물이다. 과감하게 전진시켜라. 은장이 춤을 춰야 판이 살아난다.
입문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은장이 구석에 몰려 왕의 퇴로를 막아버리는 최악의 형태, 이른바 '벽은(壁銀)'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은장은 금장처럼 자리를 굳게 지키기보다는 중앙으로 진출해 상대 기물과 적극적으로 부딪치며 국면을 흔들어야 한다. 기물을 아끼기보다는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의 은장이나 금장과 과감히 맞바꾸어 적진의 수비벽을 허무는 감각, 즉 '사바키(捌き, 기물 교환을 통한 정리)'를 익히는 것이야말로 초보 단계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