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집짓기 - 25

3. 집 짓기의 세 번째 단계 시공

by Amy Lee
좌 시공사에서 처음 받았던 주방 설계 우 설계 도면과 같은 축척으로 그린 나만의 모눈종이 설계

6. 이쁜 것들은 손이 많이 가고 비싸구나

시공사에서 처음에 받았던 주방 설계 도면이다. 가로 4625cm 세로 2600cm의 공간에 주방을 넣기로 했다. 모눈종이에 10cm씩 칸을 그려 나누고 내가 사용하고 있거나 새로 주문할 가전제품의 사이즈를 찾아 종이에 그려서 공간을 채워 넣었다. 욕실의 바닥 타일 문양, 마음에 드는 세면대 디자인, 수건걸이, 매립형 욕실 선반, 주방의 싱크 디자인, 우드 슬랩 식탁, 천장의 시스템에어컨과 레일 조명에 이르기까지 생각날 때마다 맘에 드는 디자인의 그림을 발견할 때마다 건축 가구 관련 잡지나 이케아북에서 취향대로 오려 해당 공간에 붙여 나갔다. 탈착이 쉬운 테이프를 붙여서 가전과 가구의 위치를 바꿔야겠다 싶을 때마다 붙였다 떼기 자유롭게 했다. 가전의 위치가 바뀌면 콘센트의 위치도 바꿔야 하므로 신중하게 배치해야 했다.

콘센트 위치. 이거 정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다. 내 살림살이(특히 가전제품)를 어디에 두고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콘센트의 개수나 위치가 달라지는데 이 단계를 허투루 여겼다가는 멀티탭의 지옥에 빠지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나는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친구를 초대해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곤 했다. 커피는 여기서 내리게 될 거야. 그러면 커피포트나 전기 주전자, 정수기, 그라인더... 전기 제품이 몇 개를 쓰는 건가? 이쯤에는 테이블을 놓고 노트북을 펴 놓게 되겠지? 그러면 스탠드 조명, 노트북을 위한 콘센트... 여름에는 에어컨도 있지만 선풍기도 쓰겠구나. 여기는 선풍기를 위한 콘센트...

11자 주방 디귿자 주방 기역자 주방... 내 주방은 디귿자에 가깝지만 아일랜드 식탁과 테라스로 나가는 공간을 띄워 드나들기 편하게 만들었다. 처음 도면보다 주방 창을 넓혔고 메인개수대와 전기레인지의 위치를 바꿨다.

2층에 있는 나의 메인 주방(그림 1)

주방 창은 크고 넓으면 좋다. 다만 우리 집은 상부장 때문에 세로는 짧고 가로가 긴 창을 넣었다. 수납을 고려한 상부장으로 큰 창을 넣지는 못했지만 가로길이가 충분히 길어서 개방감이 좋은 편이다. 나의 주방 정면은 옆 집의 측면과 맞닿아 있고 그 방향엔 옆 집 주방이 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차면 유리 시공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상부장을 없애고 커다란 창을 넣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눈종이에 그렸던 주방 설계도(그림 2)

메인 주방에 가지고 싶었던 아일랜드 식탁을 넣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역시 로망이었던 와인렉을 달기로 했다. 원래는 아일랜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작은 개수대에는 음식물 처리기를 달아 음식물 처리를 한 다음 식기세척기에 사용한 식기를 넣어 설거지까지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아일랜드 식탁의 작은 개수대에 음식물처리기를 달기 위해서는 기본 전기선 한 개, 식기 세척기용 전기선 한 개, 식탁 위에는 핸드폰 충전도 가능한 무선충전매립형 콘센트를 넣기 위해 총 3개의 콘센트를 미리 두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물처리기는 식기세척기 옆에 설치할 수가 없었다. 작은 개수대의 오수용 트랩의 길이가 모자랐다. 할 수 없이 음식물처리기는 메인개수대에 설치해야만 했다. 설치 예정인 가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의 아쉬운 실수. 식기세척기에도 Y자 트랩을 달아야 했고, 음식물처리기에도 별도의 트랩을 달아야 했는데 한 개의 개수대에는 둘 중 하나의 트랩만 설치 가능했다. 개수대 트랩의 길이를 고려하지 못한 명확한 나의 실수였다. 식기세척기는 정확한 제품 사이즈를 메모해서 주방가구 팀에 미리 전달해둬야 한다. 공간이 너무 크면 사이에 틈이 생길 테고 공간이 부족하면 제품을 아예 넣을 수 없게 된다.

베란다로 나가는 창과 아일랜드 식탁 사이의 공간으로는 두 대의 대형 냉장고가 들어가야 해서 냉장고 가로 폭 이상의 공간을 반드시 확보해 둬야 했다(그림 1) 아일랜드 식탁은 고정된 가구이다. 식탁을 움직일 수 없는데 냉장고는 그 뒤로 위치해야 하므로 그 공간이 좁으면 냉장고를 넣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사할 때와 주방 가구를 넣을 때 등등 모든 경우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일랜드 식탁 같은 붙박이 가구를 넣을 때의 어려운 점이다. 내가 고른 일반 냉장고는 가로 908mm 김치냉장고는 905mm이어서 옮길 때 손가락이 들어가는 공간까지 고려해서 이 공간은 920mm 정도 띄웠다. 그러다 보니 전기레인지 앞쪽 공간이 좁아졌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아래 배관 위치 조정(그림 3)

미리 깔아 둔 수도 배관의 위치를 30cm 옮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방통작업까지 마친 멀쩡한 콘크리트 바닥을 깨서 그 아래 깔린 보일러선을 피해 수도관 오수관의 위치를 옮겼다. 바닥 콘크리트를 깨는데 내 마음이 깨지는 듯 아팠다. 건설현장에는 많은 팀들이 서로 다른 날짜에 와서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수없이 확인했는데도 결국 바닥을 다시 깨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주방에는 생각보다 많은 전기 전자제품이 들어간다. 대형 냉장고 두 대, 전기레인지, 전자레인지, 토스터기, 커피메이커, 에어프라이어, 제빵기, 정수기,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세어 보니 싱크대 위에 올려 두고 자주 사용하는 주방 가전만 해도 총 11개였는데 만약 아기가 있다면 젖병 소독기도 필요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많은 제품들을 꽂을 콘센트는 어디에 만들 것인가? 에어컨과 전기레인지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제품들은 또 별도의 전기 배선이 필요하다. 만약 전기레인지에 국과 밥이 동시에 조리되고 전자레인지에는 뭔가를 데우고 있고,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굽고 있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아마도 과열로 두꺼비집이 내려가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내용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체크해서 먹줄을 놓을 때부터 시공사에 전달해야 한다. 바닥에 먹줄 그림이 그려지고 나면 모든 배선들과 배관들이 깔리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작업이 진행된다. 주방은 주로 사용할 사용자가 반드시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주방이 큰 어려움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면 사진을 찍고 사이즈 실측해서 설계에 반영하면 된다.

출처 핀터레스트

요즘 들어 디자인을 강조한 예쁜 주방에 대한 로망 때문인지 상부장을 없애고 싱크 상판을 목재로 만드는 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나 역시 상부장 대신 나무 선반에 예쁜 소품들을 얹어 두고 원목 상판에 도기 싱크볼을 넣은 주방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시공사 대표님이 극구 반대하셨다. 실용성이 떨어져서 사용하기 불편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나도 이런 예쁜 주방이 갖고 싶었다. 이런 예쁜 주방이라면 하루종일이라도 요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싱크 상판은 무늬목이고 큰 창으로는 햇살이 아름답게 내리쬐면서 상부장 없는 내추럴한 나무 선반이 있는 주방. 그 내추럴한 선반에는 너무 귀여운 소품들과 쁘띠쁘띠한 화분들이 있다. 이런 분위기의 주방 싱크볼은 거의 예외 없이 도기이다. 벽면 타일은 또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

2층 테라스에 마련한 보조 주방

시공사 대표님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예쁜 주방에 대한 나의 로망은 포기할 수 없어서 2층 베란다 공간에 보조 주방을 만들었다. 주방 가구는 이케아 제품으로 200만 원 정도의 자재를 구입하여 직접 조립했다. 조립에는 시공사 대표님의 장비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건축을 모르는 일반인은 장비가 없어서라도 조립하기 쉽지 않다. 이케아 가구는 대부분 직접 조립해야 하는데 주방 가구만큼은 사이즈에 맞게 자르고 끼우는 과정과 수전과 하수구를 연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쉽지 않았다. 주방 가구를 고른 다음 업체 직원의 설치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정 비용으로 출장 설치는 가능하다. 이케아 가구는 한샘 같은 전문 주방 가구업체에 의뢰하는 것보다는 가격이 저렴한데 출장 설치를 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도기 싱크볼, 아카시아 원목 상판, 웨인스코팅 하부장의 문, 원목 선반들, 빈티지 손잡이, 황동 수전, 빈티지 조명... 하나하나 어울릴만한 자재들을 골라 하나씩 조립하고 자리 잡아 조립해 넣어야 한다.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참 힘들 수 있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짜릿한 희열이 있다.

나의 주방 로망이 실현되고 나니까 어찌나 기쁘던지 나는 지인들과의 모임을 자주 가졌다. 이 공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주 사용하다 보니 그제야 깨닫게 되었던 사실.

①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싱크대의 상판을 습기에 취약한 나무로 만들면 물이 닿은 곳이 부풀어 오르고 얼룩이 생긴다. 물이 닿는 즉시 닦아 줘야 한다.

② 도기로 만든 싱크볼에 유리 제품을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난다. 도기 싱크볼은 물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사용 후에는 도기볼 안의 물기를 완전히 말려줘야 한다.

③ 나무로 된 선반은 지지할 수 있는 무게가 적어서 장식용 소품 몇 가지 외에는 올려 둘 수 없다. 수납의 역할을 할 수 없다.

④ 웨인스코팅 하부장은 굴곡이 있어서 항상 먼지가 끼고 얼룩이 생기면 닦기가 어렵다.

⑤ 이런 스타일은 일반 싱크대 가구 가격의 두 배 이상 비싸다.

이쁜 모든 것들은 비싸고 다루기 어렵다는 국룰은 가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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