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상 Mar 13. 2019

저녁 시간 카페 풍경.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성숙한 자세.


저녁 시간의 카페는 낮 시간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차분한 음악이 카페를 채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묵직한 재즈 가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공간에 쌀쌀한 저녁 공기를 안고 할머니 네 분이 들어오셨다. 밝은 표정의 할머니들은 무슨 좋은 모임이라도 다녀오셨는지, 한껏 멋을 낸 세련된 차림을 하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

"자,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마지막까지 낼 거야. 다들 주문들 하라고."

내가 살아온 삶의 족히 곱절 이상은 더 사셨을 오늘 모임의 주인공이라는 할머니는 나에게 공손하게 존댓말로 주문하며 카드를 내미셨다. 주문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시는 할머니께 여쭤봤다.

"음악이 너무 크면 소리 좀 줄여 드리는 게 좋겠죠?"

"젊은 사장님이 할머니들 마음을 딱 아네? 부탁해요."

두런두런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묘하게 카페에 흐르는 음악과 잘 어울렸다. 큰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워낙 작은 카페라서 커피를 만들면서도 할머니들의 대화 소리가 어렵지 않게 귀에 들어왔다. 먼저 나온 카페라떼 두 잔을 테이블로 가져가자 할머니들은 예쁜 잔에 담긴 커피가 좋다며 소녀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이어서 자몽차와 유자차도 테이블로 가져다 드리자 할머니 한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 건배할까?"

잔은 들고 건배를 제안한 할머니의 말에 다른 할머니들도 까르르 웃으며 잔을 들어주셨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의 내용은 남편과 사별하시고 혼자 지내시던 할머니가 이제 곧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모임은 당신의 여생을 요양원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시고 이제 친구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한 자리였다. 조금 먼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결정한 친구를 위해 기꺼이 모여주신 할머니들의 대화는 축복과 격려의 말이 가득했다.

"더 늙기 전에 들어가는 게 나한테나 우리 자식들한테도 좋겠더라고. 몇 군데 다녀봤는데 거기가 제일 좋은 것 같더라고."

"자식들은 뭐래?"

"뭐를 뭐래. 내가 결정한 건데. 내 인생인데 자기들이 무슨 참견하겠어. 아무튼 나는 너무 좋아."

"그래 축하해. 멋지다. 내 친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할머니와 그 결정을 축복하는 친구들 모두 나누는 대화 속에 성숙함과 따뜻함이 묻어났다. 더 앉아계셔도 된다는 말에도 할머니들이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금세 일어나 자리를 떠나셨다. 할머니들이 떠나신 자리는 치워지고, 곧 다른 손님들로 채워져 시끄러워졌지만, 그 할머니들에 대한 생각은 얼마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분들의 성숙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커핑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