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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상 Nov 01. 2020

감정의 공간, 나의 감정이 공간을 채우지 않도록.

커피는 당연히 잘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십대를 관통하며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느껴보니 알게된 사실이 있다. 바리스타가 오직 커피 만드는 일만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스타에게 커피는 당연히 '잘' 만들어야 하는 목적성이다. 맛있는 커피를 위해 늘 커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주 당연하게.


커피 뿐 아니라 함께 동반해야 하는 부수적인 요소들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완성된다. 재고 파악부터 물품 관리, 메뉴개발, 카페 청소와 청결유지, 손님 응대와 매장에 흐르는 음악 관리까지 해야할 일은 수 없이 많다. 끊임없이 예민해져야하고, 예민함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향해야 한다.


마음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 한다.


많은 바리스타들이 바리스타를 그만둔다. 그리고 그 대다수의 이유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별 생각없이 내뱉은 손님의 단어와 표정이 종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또 어떤 날에는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나 사장에게 받는 상처가 자꾸만 따갑기도 하다. 생각없이 내뱉었을 옆 카페 사장님의 험담이 누군가를 통해 전해 들릴때나, 인터넷 블로그에 남겨지는 리뷰에도 마음이 롤러코스터 처럼 오르락 내리락한다.


그런데 많은 바리스타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사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 웃게 만드는 사람이 더 많다. 그냥 좀 더 많은 게 아니라 아주 절대적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부 사람들의 상처에 집중하다보면 내내 그들이 내뱉은 그 한마디가 마음에 맴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웃음을 주고 "아, 이 맛에 커피 만들지."하는 생각을 주셨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는 희미해진다.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도 모르게 손님을 짐작해서 평가하고 손님을 응대하면서 짜증이 섞여버리기도 한다. 혹은 잔뜩 주눅들어서 다른 손님이게 받은 상처를 전혀 다른 손님에게 해소하기도 한다.


카페는 감성의 공간이다. 바리스타는 그 감정의 한복판에서 일해야 한다.


사실 카페는 단순하게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만은 아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와서 배를 채우는 공간도 아니다. 카페는 공간 자체가 쉼터가 되고 작업실이 되기도 한다. 동아리 방이나 반상회 공간도 된다. 한 잔의 커피가 깊은 위로가 될 수도, 급속 충전소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이른바 '감성의 공간'이다.  공간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도 어느 새 감성의 영역에 들어와버린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이 좋은 자극일 수도, 상처가 되는 자극일 수도 있다.


우리는 상처주는 1명의 손님이 내뱉는 부정적 메세지보다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10명의 손님이 주는 긍정적인 메세지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게 잘 되질 않는다. 바리스타 스스로가 이미 너무나 감정의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다는게 약점이다. 감정의 공간에서 일하되 나의 감정은 오로지 내 안에 두어야 한다.


우리 카페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한 바리스타께서 한 말이 늘 기억에 남는다. "내 감정이 이 카페의 분위기가 되면 안되잖아요." 그렇다. 내 감정은 묻어두자. 성처보다는 기쁨과 성취를 챙기는게 바리스타가 가져야 할 감정이다.


절대 상처주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말자. 내게 행복은 주는 사람에게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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