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1.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오금동 커피를 개업하고 이제 5년 차, 이십 대 초반부터 카페 파트타이머로 근무한 기간을 더하면 벌써 십 년이 넘는 기간을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며 지금까지도 종종 받는 손님들의 돌발 퀴즈가 하나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애써 신상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카페 계산대에서 굳이 본인의 신상 퀴즈를 내는 고객님들과의 대화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 자리의 바리스타 중 누구도 그분들의 성함이나 친구관계, 나이나 본인 자녀의 회사의 위치에 사실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 무흥미의 정보를 기어이 쭉 나열해 주고서야 이제 막 서론이 끝났다는 사실은 진정한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거창한 자기소개 인트로가 끝나면 정말 곤욕스러운 본론 부분이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바로 본격 요구사항 성토의 시간이다.
나누구무새 고객님 대부분의 요구는 다소 과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금까지 바리스타에게 부모님이나 큰아버지 같은 훈계말씀을 하시던 분들이 이 대목, 그러니까 요구사항 성토의 시간이 되면 미취학 자녀나 일곱 살 조카들이 떼쓰며 할법한 요구를 내어놓으신다.
이미 제조된 커피를 수 일 뒤에 찾으러 올 테니 그때 다시 만들라고 이야기하거나, 바닥의 흰 면이 보일 만큼 마신 후에 커피가 식었으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테이블 여러 개를 붙여 여러 명이 앉을 테니 음료는 2잔씩으로 나누어달라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창의적인 요구를 듣다 보면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된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바리스타들은 본인이 양육자인가 바리스타인가라는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고 성찰해야 하는 내면 탐구의 직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그분들의 그런 행동을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건 정말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느끼고부터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허무함에 무너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그보다는 그분의 바로 뒤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던 ‘일반적인’ 대다수의 손님들께서 눈빛으로 건네는 위로를 가슴에 새기는 게 우리 바리스타들에게는 더 나은 치료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나누구무새 손님들의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분들은 정작 그 바리스타가 누군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시다는 부분이다.
“혹시 저희가 누군지는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