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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Oct 01. 2023

방송국은 의외로 소비자에 별로 관심이 없다

방송국 관찰 프로젝트 #2

방송국은 소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콘텐츠는 대중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하지만 콘텐츠 공급자들은 과연 대중을 얼마나 생각할까? 사실 그들에게 소비자란 지극히 평면적인 존재들이어서, 예고편을 보고 때가 되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자들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만 깊게 몰입한다. 하지만 그 사이, 소비자는 수많은 콘텐츠 속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결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지 못한 대다수의 콘텐츠가 관심을 끌지 못한채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소비자의 일상에 깊게 들어가 어떤 컨텍스트에서 소비자들의 이른바 콘텐츠 ‘찍먹’이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관찰할 수 있는 소비자 행동의 파편성, 참여성 등 여러 층위를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대중의 마음을 사기 위한 콘텐츠 마케팅 전략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아즈마 히로키의 [느슨하게 철학하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의 태도] 등에 기술된 현대사회와 대중 문화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을 현재의 콘텐츠 소비 행태와 접목시킨 것이다. 


콘텐츠는 더이상 보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은 콘텐츠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이지만, 본편을 보지 않는 소비자들도 SNS상의 클립이나 요약본은 종종 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아즈마 히로키의 답은 명쾌하다. “콘텐츠 자체는 소홀히 하고 메타 콘텐츠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며, 그 목적은 바로 ‘소통’이다. 콘텐츠에 붙이는 가장 상식적인 동사는 ‘보다’ 이지만,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맥락에서는 ‘말한다’로 대체될 수 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에 대해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작품 및 사건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지향 소비’화, 쉽게 말해 커뮤니케이션 수단화가 급속히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비록 그는 평론의 영역에서 관찰한 바를 기술한 것이지만, 그의 담론은 현대의 콘텐츠 소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집체적 균질함이 도덕적 규범이 되는 사회에서, 내가 속한 집단의 의견을 귀기울여듣고 스스로의 가치로 내재화하는 과정은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전체와 나를 맞춰나가는 매개체 중 대표적인 것이 콘텐츠이고,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필수적인 사회화 과정을 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16부작에 이르는 한 편의 드라마를 60분으로 요약해주는 유튜브 채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SNS 플랫폼이 대두하기 전에는 콘텐츠 감상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수반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전에도 드라마나 예능이 방영된 다음날 학교, 회사 등에서 “어제 그거 봤어?”하며 후일담을 나누곤 했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를 매개로 이제 소비자들은 더욱 많은 타인들과 24시간 동안 소통한다. 기존부터 존재하던 소통의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 총량에 대응하기 위해 콘텐츠를 포함한 많은 소재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행위가, 커뮤니티 게시글에 댓글을 달기 위해 콘텐츠를 보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어졌다.


클립만 보는 사람들, 댓글만 보는 사람들 - 파편적 소비 


타인과 소통을 목적으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소비자들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한의 콘텐츠를 파편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소위 ‘찍먹’은 주로 드라마나 영화, 예능을 1화부터 순차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일부 하이라이트 클립, 요약본, 블로그 요약글 및 커뮤니티 gif 등으로만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2030세대는 특정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클립으로만 본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내용만 보고 있다’고 이야기할만큼 이 현상은 대중화 되었다. 


더욱 특징적인 것은, 파편적 소비 경향이 나타나는 소비자일수록 영상을 댓글과 함께 소비하거나, 심지어는 댓글을 먼저 본 후 영상을 계속 소비할지 결정하는 행태마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통의 맥락이 조금이라도 제거된 콘텐츠에 눈길을 주지 않는 대신, 댓글의 양이 많고 전개 양상이 흥미로운 영상은 그 상황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영상 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식이다. 이러한 행태에 대응해 플랫폼들은 영상과 댓글창을 같이 띄워주거나 (유튜브), 댓글창을 눌러도 오디오가 끊기지 않게 (틱톡) UI를 최적화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소통을 목적으로 한 댓글 문화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여실히 나타난다.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인스타그램에서는, 콘텐츠에 댓글을 달며 자신의 친구 혹은 연인을 태그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을 휩쓸고 있는 MBTI 관련 콘텐츠의 경우, 어김없이 주변인의 계정을 태그하며 영상 내 캐릭터 혹은 상황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소비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너 T야?”라는 밈 마저 등장했을 정도다. 


이쯤에서 한가지 제기할 의문은, 콘텐츠를 파편적으로 감상하는 소비자들을 진정한 의미의 시청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결론은 없다. 누군가는 OTT 재생 횟수를 기준으로 시청자 수를 정의한다. 다른 이는 클립이나 쇼츠를 통해 획득한 소비자의 인지도를 넓은 의미의 시청과 등치시킨다. 과연  ‘콘텐츠를 본다’는 의미가 양측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있을지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방송국에서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어 본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만이 ‘콘텐츠를 본’ 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점이다. 닐슨에서 조사하는 시청률만이 ‘본다’는 동사를 수치화한다. 


보지 않고 직접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 - UGC와 참여형 소비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바로 YOU였다. 그 직전부터 수많은 YOU들은 간단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자신의 SNS 플랫폼에 게재하기 시작했고, 이때를 사실상 UGC 콘텐츠의 원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촬영과 편집이라는 콘텐츠 공급자의 거대한 문턱은 휴대폰 카메라 기능의 향상, 그리고 다양한 편집 어플의 고도화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소비자들은 주로 일상 속 스스로의 모습을 찍어 올렸지만, 이제는 방송국의 드라마와 예능 (PGC)를 본인의 입맛에 재구성하여 덕질에 활용하거나, 편집 전용 계정을 만들며 같은 콘텐츠를 보는 소비자들끼리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활용하고 있다.


2차 창작은 90년대 <에반게리온>을 향유하던 일본 오타쿠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작의 캐릭터를 빌려와 기존에는 없던 스토리를 창작하는 동인지/팬픽이나, 원작을 기반으로 재창조 및 재가공한 그림/영상/게임 등은 모두 오타쿠 서브 컬쳐에서 파생되었고, <에반게리온>은 그런 문화의 정점에 있던 작품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2차 창작이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사라지고 무의미해지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이라고 짚어냈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이 제공한 것은 시청자가 마음대로 감정이입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의 집합체였다. <에반게리온>의 소비자 대부분은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보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역설했다.


한국 아이돌 팬덤이 오타쿠 문화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래, 한국 대중 문화에서도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0년대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UGC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매개로 더 많은 대중이 즐기는 놀이 문화가 되었다. 2차 창작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례를 든다면 바로 BTS일 것이다. 소속사가 풀어낸 BTS 멤버들의 영상을 촉매제로, 팬들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2차 가공을 통해 스스로 BTS의 전령자 역할을 수행했다. UGC는 내부적으로는 팬들끼리의 결속과 소통의 역할을, 외부적으로는 더 많은 이들에 BTS를 노출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UGC는 팬덤 내의 보다 깊은 소통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에게 있어 콘텐츠를 본다는 것은 바로 만든다는 것이고,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원작의 작품성을 훼손한다는 우려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2차 창작물을 매개로 원작을 접하고 유행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팬심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방송사에서는 작가, PD 등 제작자의 눈치를 보거나, 배우, 가수 등 출연자와의 관계를 이유로 대다수의 UGC를 불법 취급하고 있다. 오늘도 유튜브에서는 방송 소재를 활용한 영상과 채널이 저작권 위반으로 잘려나간다.  


서사는 총량이 있지만, 소통은 총량이 없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유정 교수는 "과거에는 책을 읽어도 하나만 진득하게 읽었다면 지금은 웹툰, 웹소설 등 동시에 10개의 콘텐츠를 보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를 ‘서사 총량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아즈마 히로키 역시 [철학의 태도]에서 “이제까지와 다름없이 마치 대중의 무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세”할 수 없다고 역설하면서, “소셜미디어가 보급되어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인터넷을 떠다니는 시대가 되었다”며 이를 ‘아마추어의 재잘거림’으로 정의했다. 소비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종류의 플랫폼을 수없이 넘나들며 콘텐츠를 신중하게 ‘찍먹’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과 보다 깊게 소통하기 위해 영상과 댓글을 함께 보거나, 심지어 2차 창작물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공급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의 이런 욕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예고편을 보고, 본방송 시간에 맞춰 얌전히 자리에 앉아 시청을 하면 소비자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클립과 요약본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며 최소한의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본방/본편을 보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 되고, 2차 창작은 저작권을 위배한 불법 콘텐츠 취급을 받으며 잘려나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국이 내보내는 TV 콘텐츠는 소비자의, 대중의 마음에 어떻게 들어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소비자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방송국은 필연적으로 버림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리즈] 방송국 관찰 프로젝트 #1

https://brunch.co.kr/@mrtolstol/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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