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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Jul 23. 2023

방송국은 소비자를 전혀 못 따라잡고 있다

방송국 관찰 프로젝트 #1

방송국에서 유튜브, 틱톡 등 디지털 콘텐츠 기획 일을 하고 있다. 2016년 입사했을 때 케이블 TV는 소위 전성기였고, 지상파 3사의 가구 시청률보다 케이블 TV의 수도권 2049 타겟 시청률의 파급력이 온몸으로 체감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는 금방 유튜브 100만 조회수로 갈음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TV 프로그램보다, 모 연예인이 유튜브 개설했다는 소식이 더 화젯거리다. 


게다가 글로벌하게는 틱톡이 유튜브의 MAU를 넘어버렸고, 세로형 숏폼은 유튜브 클립을 도태시키고 있다. 미디어는 급변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케이블 TV의 태동과 함께 성장한 방송가 사람들은 공급자로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심리적인 저항감을 느낀다. 작가, PD 뿐 아니라, 영상 디자이너, 마케터에 이르기까지 다르지 않다. 이 글은 디지털 담당자로서 방송국 사람들과 협업하며 부딪힌 그 심리적 저항감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글이다. 


유퀴즈에 나온 침착맨은 라이브 방송을 매일 5~6시간 하는데, 별다른 준비 없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와서 방송을 켜고, 시청자와 즉흥적으로 소통하며 끌어간다고 한다. TV 30년 경력의 유재석은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또다른 30년 경력의 TV 기획자 나영석PD 역시 침착맨의 라이브 방송에 직접 나온 후, 채널 십오야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나불나불’을 만들었다. 


TV 프로그램은 많게는 100명의 스탭이 투입된다. 구성안을 쓰는 작가, 현장을 연출하는 PD, 영상 퀄리티를 책임지는 촬영, 오디오, 조명감독. 그 외에도 편성과 마케팅, 심의와 광고, 재무와 회계까지 분야별로 세분화 및 전문화 되어 있다. 구성안과 일일촬영표, 대본과 샷리스트 등 문서를 토대로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촬영 전 밑작업하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가진다. 그런 프로세스를 만들고 정착시켜온 유재석과 나영석PD 입장에서, 아침에 일어나 방송을 켜는 침착맨 유튜브가 화제의 콘텐츠가 되는 광경은 낯설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데, 저게 콘텐츠가 맞아?’ - 방송국 사람들은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유퀴즈에 나온 침착맨의 화면 갈무리 (출처 : tvN D ENT 유튜브)


20대 대선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은 KBS도 JTBC도 아닌, 바로 삼프로TV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이재명과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차례로 삼프로TV의 MC들과 함께 각각 한시간 반에 걸쳐 경제 정책 공약과 관련한 대담을 나누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대선 방송의 세트장도, 지미짚 같은 화려한 연출 장비도 없었다. 삼프로TV는 반대로 사무실 같은 곳에서 유튜브용 마이크를 간단히 설치했고, 뒤에는 보통의 사무실에 있음직한 난초와 공기청정기가 놓여져 있었다. MC 중 한 명은 으레 그렇듯 선글라스를 꼈고, 후보자들은 머그컵에 담긴 물을 마시며 시간이나 형식의 제약 없이 본인의 대선 공약을 자유롭게 설파했다. 삼프로TV는 현재 언론이 상실한 의제 설정 기능을 대체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삼프로TV 영상을 방송사가 보도하는 장면에서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낙수되던 미디어의 흐름이 뒤집히는 모습마저 연출되었다. 


사무실에서 찍은 듯한 삼프로TV 대담 방송. MC 정영진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출처 : 삼프로TV 유튜브)

        

TV에서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하드웨어가 바뀐다는 것은, 시청자가 추구하는 미감도 자연스레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현대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그의 저서 [철학의 태도]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멀티플렉스의 넓은 좌석에 앉아 코카콜라를 마시는 신체적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데거와 같은 20세기 후반 현대사상가들은 근대적 주체를 논하는 데 있어 외부의 물질 환경을 후순위로 두었으나, 아즈마 히로키는 신체, 환경과 같은 ‘의식의 외부’가 먼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콘텐츠 소비 환경으로 끌어오면, TV보다 스마트폰이 접근성, 편리성 등에서 물질적 조건의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콘텐츠적 미감도 그 외부에 따라 변화했다는 거다. 방송국 사람들은 TV라는 물질적 외부를 아직도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영상 미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TV와 스마트폰의 상이한 하드웨어는 콘텐츠 소비의 미감을 변화시킨다. (출처 : 삼성 공식 홈페이지)


TV에서 교양프로그램을 만들다가, 3년 전 유튜브로 진출한 모 CP님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20년 동안 방송 제작을 해온 그에 따르면, 유튜브 콘텐츠는 공간 구성이 보다 평면적이며 시청자와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와 달리 방송 프로그램은 넓은 스튜디오 공간에서 촬영하고, 무대 미술 역시 공간감과 깊이를 주는 식으로 구성한다. 1박2일을 연출한 나영석PD가 비좁은 공간에서 찍는 ‘나불나불’이나, KBS 백분토론과 비교되는 삼프로TV의 소박한 공간 구성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송 프로그램 로고와 오프닝, 자막 등을 만드는 디자이너 선배와도 사담을 나눈 적 있다. 방송 일을 10년 넘게 하다가 디지털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된 그 선배는, 디지털에서는 로고 외에 별다른 디자인 요소가 없고, 그나마도 단순하다고 했다. 방송 프로그램은 15초 짜리 오프닝을 다채로운 디자인과 모션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하지만 삼프로TV의 수많은 영상을 봐도, 간단한 로고조차 머릿속에 기억이 남지 않는다. 침착맨은 영상에 콘텐츠 로고도, 채널 로고도 넣지 않는다. 그나마 나불나불애 습작 같은 2초짜리 오프닝이 있다.


나불나불과 지구오락실. 올해 방영 중인 프로그램들이지만 미감에 차이가 있다. (출처 : (왼) 채널 십오야, (오른) tvN))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좀 더 빌려와보자. 그는 “하이데거가 근대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기분’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인간의 기분은 ‘건강하다/아프다’와 같은 신체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의식의 외부’를 즉물적으로 재구성하자는 그의 이론을 수용하면, 우리가 콘텐츠에 대해 갖는 감정, 이를테면 ‘재밌다, 공감 간다, 멋지다…..‘ 역시 TV와 스마트폰의 물질적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TV가 대상을 선망하는 공간이라면, 스마트폰으로 보는 디지털 콘텐츠는 친밀감에 그 본질이 있다. 


화면이 커질 수록 더 깊은 공간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화관의 존재 이유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 스타워즈, 아바타와 같이 광활한 우주와 바다를 담은 영상을 스마트폰에서 보았을 때 과연 멀티 플렉스 만큼의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나불나불이나 침착맨 유튜브 영상을 TV에 틀면, 생각보다 피사체가 과하게 크고 전체적으로 날 것의 느낌에 당황할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대상이 TV로 옮겨지는 순간 초라해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틱톡이 제공하는 세로형 영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개개인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돌릴 필요도 없이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스타그램처럼 스토리로 휘발성 있게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는, 일상성과 즉시성에 기반해 친밀감을 극대화한다.


영화관 스크린보다는 작지만 스마트폰 보다는 큰, 거실을 점유하는 TV라는 하드웨어가 제공할 수 있는 ‘적당한 선망성’의 미감에 맞추어 방송국은 콘텐츠를 제작해왔던 것이다. 전참시, 라디오스타처럼 세트를 제작해 패널들을 앉히고, 1박2일처럼 야외물은 드론 촬영을 해서 공간의 전경을 보여줬다. 전문 MC를 부르고 연예인이나 정치인 게스트를 섭외하고 방송 메이크업과 헤어를 붙여 피사체에 대한 선망성을 투사했다. 삼시세끼에서 요리하는 차승원의 캐릭터가 아무리 정감 간다고 해도, 나불나불에서 메이크업 없이 검은 뿔테 안경 하나 끼고 불쑥 앉아서 나영석 PD와 토크하는 차승원만큼 친밀할 수는 없다. 대중을 상대로 선망성을 공급해오던 방송국 사람들에게, 한순간에 친밀감의 위계로 건너 뛰어 오라는 것, 바로 그 ‘의식의 외부’가 심리적 저항감을 촉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리즈] 방송국 관찰 프로젝트 #2

https://brunch.co.kr/@mrtolstol/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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