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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Jul 03. 2023

인어공주가 그토록 대중의 미움 받은 이유

너무 낯선 변화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더라 

작년에 개봉한 디즈니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2022)는 개봉하기도 전 총 14개 국가에서 상영을 금지 당했다. 주인공 버즈의 상관이 동성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장면에 대해 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국가가 상영 불허 판정을 내렸다. 중국의 경우 해당 장면들을 삭제 후 상영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디즈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상영 금지 국가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한편 한국은 상영이 금지 되지 않았으나, 캐릭터의 각색이 원작을 재해석하는 틀을 넘어버린 점, 동성애 코드 등 일명 ‘PC함’을 굳이 집어 넣은 점 등에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부모들의 반발이 상당했는데, 아이 교육상 혼란을 야기할 것 같아 우려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버즈 라이트이어> 속 동성 커플의 키스를 묘사한 장면 중 일부.

영화 캐롤의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일전에 우리 사회의 지배적 문화를 언급한 바 있다. 영화를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 관습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이 있으면 이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겠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문제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적 문화에 속하지 않는 이야기를 지배적 문화에 가져오려면 일종의 감정적인 번역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스토리 플롯의 정서적 예측 가능성에 대해 말한 것이지만, 메인 캐릭터의 정체성을 만들어 선보이는 과정에도 이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즉 관습적이고 예측 가능한 캐릭터라면 공감하겠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문제점을 느낀다는 말로 위의 문장을 치환해도 무리는 없다. 


<캐롤>의 주연 케이트 블란쳇의 왼쪽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토드 헤인즈 감독이다. [출처 : 인디포스트]

최근 개봉한 범죄도시3의 유명한 관전평은 마치 엄마가 집에서 매일 해주는 카레와 같다는 것이다. 이 평을 내린 이는 시즌제로 나오는 범죄도시가 마치 재탕 삼탕해서 끓여먹지만 여전히 맛있는 카레나 곰국과 같다는 비유를 한 것이었는데, 약간 비틀어서 보면 모두가 예측 가능한 소위 ‘아는 맛’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위의 관전평에 대한 후속 리뷰로 밖에 나가서 다른 요리를 먹다보면, 결국은 다시 돌아와서 찾게 된다는 내용 마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인어공주는 모두가 카레나 곰국을 예측했지만, 그것이 재료이든 요리 방식이듯 비교적 낯선 변용이 이루어지면서 근원적인 거부감과 함께 관람이 시작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범죄도시3>에 대한 한 커뮤니티 유저의 평가. 많은 공감을 얻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인종과 성 정체성이 이러한 낯섦에 대한 반발의 주요 소재지만, 실제 역사에 대한 변용이나 민족 감정 역시 사례가 있다.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경우 태종이 흡혈귀로 등장하여 백성들을 죽이는 설정과 아울러 함경도 변방 지역에 중국풍의 복식과 음식이 등장한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대중은 조선 건국의 기틀을 잡고 민심을 안정시켰던 태종이 백성을 잡아먹는 흡혈귀로 등장하는 설정 자체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며 반발했고, 현대 중국이 김치, 한복 등 한국의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주장하는 시점에서 월병이나 중국 만두 등이 조선 역사물에 나오는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사극에서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한 각색은 일상적이지만, 그 각색의 정도가 너무 낯설 경우 대중은 그것을 왜곡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326060800005


재미있는 점은, 뉴욕타임즈는 영화 인어공주를 논평하며 제작사가 논란을 걱정하여 오히려 사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왕 주인공을 흑인으로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면, 더 많은 흑인 문화와 역사를 짚어내는 방향으로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각색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뉴욕타임즈는 언급하며, 이번 영화는 단지 주인공만 흑인이었던 또다른 디즈니 영화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원작에서 묘사한 그대로의 모습을 일체 변형 없이 보길 원하는 다른 일각의 주장과 같이 놓고 생각해보면, 관객 저마다 영화를 보는 목적과 시선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너무 급진적으로, 또다른 이에게는 너무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https://www.nytimes.com/2023/05/24/movies/little-mermaid-review-halle-bailey.html


제작자의 입장에서 치환해보면, 범죄도시와 같이 아는 맛을 잘 만들어야 하는 영화가 있고, 낯설더라도 새로운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자 하는 의도의 영화도 있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올바르다거나 덜 게으르다고 미루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디즈니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들이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강화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자사의 오래된 영화에 직접 경고 문구를 삽입하며 이를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오랜 원작을 실사화 시켰다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디즈니의 타겟은 어린 여자아이들이고, 이들은 생각보다(!)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에 부정적이거나 원작과 다르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마지 버즈 라이트 이어 속의 동성 커플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처럼.

2020년  론칭한 디즈니플러스는 자사의 옛 영화들이 인종/문화적 편견을 부추긴다며 위와 같은 경고 문구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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