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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Jul 03. 2023

조선일보가 일타강사의 부를 악마화하고 나선 이유

수능 문제를 공교육에서 다루는 범위 내에서만 출제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후, 2023년 수능은 약 150여일을 앞두고 교육부 고위 관료의 경질, 교육과정평가원의 감사,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및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한 출제 시스템 점검 등의 변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현우진, 이다지 등 현 시대 일타 강사 (1등 스타강사의 준말) 들이 이를 비판하는 글을 개인 SNS 등에 올렸다. 현우진은 수능의 방향성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를 바란다며 혼란을 겪고 있을 애들이 불쌍하다는 요지의 글을 작성했고, 이다지는 공교육 학교, 교사마다 가르치는게 천차만별이라며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수능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미지수라는 글을 남겼다. 현우진의 글에 대해 전여옥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애들이 불쌍하면 무료로 강의하라며 반박했고, 이다지는 비판 세례에 직면해 SNS에 게시한 글을 내리기도 했다. 



현우진과 이다지가 글을 게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는 바로 이 두 명의 연봉이 백 억대에 이르며 억대가 넘는 시계와 차, 집을 자랑하고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공교육 수능 반발 일타강사들의 호화생활” 기사명이 바로 그것. 해당 기사에 따르면 현우진의 연 수입은 200억 원이상으로 추정되며, 올해 국민 여론 조사 결과 자녀의 사교육비가 부담되는 응답을 한 국민은 94.3%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쌓아올린 부를 소셜미디어 등에서 거리낌없이 과시해왔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지적인데, 그는 250억 짜리 청담동 집을 대출 없이 샀으며, 100억짜리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다지 역시 몇십에서 몇백억대를 호가하는 잠실의 고급 레지던스에 살고 있다는 점을 조선일보는 연이어 지적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인 취급하는 조선일보의 논설은, 평소 접해오던 사람들에게는 낯설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대표 보수 언론으로서 한국 보수주의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였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 자체는 진보와 보수 사이를 오가는 이념이었는데, 사유재산제 등 사적 영역에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보수 진영의 논리로서 사용되었는가 하면, 집회 및 결사, 언론의 자유 등 권위적 정권에 대항하던 시절 진보 진영의 기치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을 명시하며 한국 보수층의 이론적 뿌리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바로 세우는 정부가 되겠다며 보수주의자들을 결집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한국 보수주의 담론의 최전선에서 진보주의자, 노동계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親재벌, 친親자본의 성향을 강하게 띄었다. 최근 방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론이 反재벌적이라며 부의 악마화를 경계하는 논평을 내었고, 5년 전 ‘삼성전자가 없다는 한국 경제는…’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 창출하는 부의 규모에 대해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 한편 역설적인 것은, 약 10년 전 자회사 조선에듀케이션에서 스페셜 공부콘서트를 개최하며 일타강사 및 학습 전문가를 섭외하였는데, 콘서트의 목적은 학생들이 새 학년에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학습 노하우를 얻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일타강사들이 1년에 100억씩 버는 것이 부모들 등골을 빼서 이루어진 탐욕의 선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애들이 그렇게 불쌍하면 무료로 강의하지 그러냐고 핀잔을 준 전여옥 전 의원까지 같이 소급하여 논의하지 않더라도, 조선일보의 일타 강사를 향한 논평은 그 동안 조선일보가 선보인 담론의 방향성에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의아한 점이 많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교육부의 지침 자체가 진보계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평준화 교육과 그 결이 더 유사하고 심지어 이재명 전 후보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난처함은 일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을 통해 획득한 부를 악마화하는 기사를 내었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메시지를 공격하려다 보니 메신저에게 그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일보의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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