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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Feb 12. 2024

숏폼으로 홍보하려는 정치인에 고함

마케터가 본 정치인의 숏폼 챌린지 콘텐츠

정치인들의 릴스 챌린지 영상이 알고리즘에 자꾸 걸리는 걸 보니,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는게 실감이 난다. 민주당, 국민의힘 할 것 없이 챌린지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걸리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채널에 들어가보니 다른 릴스 영상보다 훨씬 조회수나 댓글 등 반응이 좋다. 나경원의 ‘샤대 판사 인스타 공개’와 ‘서울대 법대녀 위글위글’ 영상은 조회수도 2~300만대지만, 모든 언론에서 일제히 기사화되며 정치인 숏폼 시대의 막을 활짝 열였다.

작년 12월에 업로드된 나경원의 위글위글 챌린지. 조회수 300만을 기록 중이다.


대통령 선거와 달리 총선은 지역구 중심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판이고, 그렇기 때문에 광고 비용 없이 간단하게 찍는데 조회수는 한 번 터지면 최소 2~30만, 많게는 2~300만씩 나오는 숏폼 챌린지 영상이 여러 모로 매력적인 홍보 수단일 수밖에 없다. 이번 글은 지금까지 나의 알고리즘에 떴던 영상들을 중심으로 숏폼 유형과 그 효과성을 간단히 리뷰해보고, 이 글을 검색할 수도 있는 보좌관과 홍보 담당자에게 숏폼과 챌린지로 먹고 사는 마케터로서 필수 체크리스트를 던지려 한다.    


정치인 숏폼 시대의 개막 - 윤석열 캠프의 #59초공약짤, 나경원의 #위글위글


한국에서 숏폼은 2021년 여름부터 흥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튜브 쇼츠에서 본격적으로 정치 홍보의 포문을 연 콘텐츠는 2022년 윤석열의 59초 공약 시리즈로, #59초공약짤 해시태그로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면 검은 배경에 이준석과 원희룡, 가끔은 윤석열이 나와서 다양한 공약을 세로형으로 촬영하여 올린 영상을 다수 볼 수 있다. 영상은 총 11개 채널에 100개가 올라갔으며, 조회수는 최대가 100만, 그 아래로 4~80만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최소 2~3천만의 누적 조회수가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유튜브 계정에서 올라온 59초 공약짤 시리즈.


 상당히 신선했던 점은, 그 전까지는 가로형 영상을 짧게 편집한 쇼츠 영상이 연예, 정치 분야 무관하게 대다수였다면, 국민의힘에서는 촬영형 쇼츠에 맞게 대본 구성과 촬영 구도, 미술까지 신경 썼다는 점이다. 심지어 숏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명까지 쳤는데, 일부러 출연자들 얼굴에 그늘을 주는 액션/느와르적인 조명 연출로 스피디한 영상에 최소한의 무게감을 주고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디지털 마케터로서 평가해보자면, #59초공약짤 시리즈는 트렌드를 앞서간 고퀄리티의 숏폼 홍보 콘텐츠였다.


그 이후 분기점은 나경원을 들 수밖에 없다. 2023년 말, 존예녀와 존잘남을 길거리에서 인터뷰하는 CAST U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샤대 판사 인스타 공개’와 ‘서울대 법대녀 위글위글’ 영상이 올라왔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나경원으로, 본인의 외모 점수를 10점 만점 중 8점으로 책정하고 본인의 매력을 지성과 외모라고 소개하는 등 상당히 MZ스러운 콘텐츠를 찍었고, 단 2건의 영상으로 누적 조회수 500만을 기록한 이 영상들은 숏폼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뿌려졌고, 숏폼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각종 언론사에서 일제히 보도했다.

나경원의 위글위글 챌린지, 길거리 인터뷰 영상에 달린 댓글들. 과하게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반응은 제외했다.


나경원의 이 숏폼이 정치인 숏폼의 신호탄이 된듯하다. 원래 콘텐츠에서는 첫 타자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첫 영상들을 레퍼런스 삼아 이후의 콘텐츠도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챌린지 같이 무맥락의 MZ스러운 콘텐츠는 정치인이든 보좌관 입장에서는 정책 홍보도 안되고, 잘못 만들면 경박스럽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타자의 영상이 나오고 화제가 되었을 때, 보좌관들과 홍보 담당자들은 조회수와 댓글을 유심히 보며 어떻게 정치인을 설득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나경원의 숏폼 유산(?)을 이어 받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다양한 숏폼 영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다수가 개인적인 알고리즘에 걸려 접하게 된 것들인데, 재밌는 점은 하나 같이 최근 유행하는 챌린지를 정치인들이 능숙하든 어색하든 따라한 형태가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월 현재 정치인 숏폼 챌린지의 선두 그룹   


2024년 2월 현재, 숏폼 챌린지를 본격적으로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은 민주당 2명, 국민의힘 2명 정도가 눈에 띈다. 이 중 3명이 다음 총선 예비후보이며, 1명은 현재의 국회의원이지만 다음 선거에 재도전의 포석을 깔아두려는 듯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숏폼 챌린지 영상을 1건 정도 올리며 참전하는 듯 보이나, 이번 길에서는 논외로 한다.


먼저 가장 주목할 만한 계정은 더불어민주당 유지곤 의원이다. 그는 국회의사당 바로 앞에서 셀카봉에 휴대폰 하나 뻗쳐두고 하이디라오 나루토 춤 챌린지를 찍은 영상 1건으로 조회수 700만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전에 집에서 딸과 함께 연습하는 영상, 나루토 춤의 하우투 영상, 시민의 요청으로 재탕하는 영상 등을 야무지게 찍어가며 일종의 챌린지 서사를 쌓아가고 있다. 나경원 외 정치인 중 숏폼 챌린지가 기사화가 많이 된 사람이기도 한데, 그보다 더 주목할 지점은 그가 이 챌린지를 대하는 태도다.


유지곤 의원의 하이디라오 나루토 춤 챌린지. 조회수는 720만이다.

나루토 댄스 챌린지는 중국 음원이고, 나루토는 일본 만화다. 특히 이 두 국가의 음원을 잘못 활용했다간 해당 국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지곤은 정면 돌파를 했는데, (1) 나루토 춤은 막상 애니와 관련 없는 한국 초등학생들의 밈이라는 점, (2)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체험해보았다는 기획의도, (3) 국회의사당 앞 공원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열린 공간이라는 것, (4) 마지막으로 본인과 아이들이 독도 명예 주민이며 안중근 의사를 참배하러 하얼빈까지 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까지 못 박았다. 챌린지 하나에 이 구구절절한 설명이라니! 하지만 그가 대응하고자 한 악플들을 생각하면, 정면 돌파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지경이다.  


구구절절한 기획의도 설명! 하지만 악플러들은 어느 정도 잠재운 것 같다.

그 다음은 국민의힘 김기남 의원이다. 그는 나경원이나 유지곤처럼 기사 언급이 많은 것은 아니나, 숏폼의 MZ력(?)으로 보면 단연코 1등이다. 가볍게 뽀삐뽀 챌린지의 변형으로 시작한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연이어 띄어쓰기의 중요성 챌린지를 하며 500만으로 조회수가 뛰었다. 게다가 작년 11월 SNS 세상을 강타한 ‘카이스트 공대생 출신 모델이 푸는 23년도 수학 수능문제 밈’을 패러디하여 ‘고려대 공학 석사가 푸는 24년도 수능 미적 1번 문제’ 영상을 만들었다.


김기남 의원의 인스타그램. 조회수 타율이 너무 좋다!

이 채널에는 감각적인 기획자가 한 명 붙어 있는 것 같은데,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오는 여론조사 전화를 콘텐츠 시리즈로 만들며 챌린지가 아닌 숏폼으로도 콘텐츠를 뽑아낸다. “이 영상에 못 참고 구독함” “콘텐츠 담당자 시급 올려라” 등 댓글이 괜히 달리는게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띄어쓰기 챌린지도 “윤서, 결혼했어?” (=윤석열, 혼냈어?)에서 절묘하게 영상을 끊어서 챌린지를 변형시키는 재주까지. 앞으로의 콘텐츠도 기대된다.


유독 김기남의 채널에는 기획자에 대한 댓글이 많이 달린다.


마지막으로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국민의힘 이창성 의원 등이 띄어쓰기의 중요성 챌린지, 슬릭백 등 영상을 올리며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좌관이 시켜서 한 번 해보기만한 티가 나서, 앞으로 정치인 숏폼계에 이름을 올릴지는 계속 지켜봐야할 듯하다.



정치인 숏폼 챌린지의 필수 체크리스트   


이 글은 정치인들에게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마음을 담아 몇가지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SNS 영상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숏폼 챌린지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보좌관들을 비롯한 홍보 담당자들은 본인이 담당하는 정치인에게 숏폼 챌린지를 권유하기 전, 아래의 5가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다른 정치인이 한 걸 그대로 따라하면 되지 않을까요? NO.   

아무리 챌린지가 너도 나도 같이 동참하는 문화라지만, 유행하는 챌린지는 동시에 여러개인 것이 보통이다. 그 중에서 자기가 홍보하려는 정치인이 잘 소화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획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나경원은 실제로 서울대 판사 출신 엘리트라는 점과 정치인 중 돋보이는 외모 요소가 있었기에 일반 대중이 납득할 수 있었고, 유지곤은 딸과 함께 나루토 춤을 연습한다는 서사가 있었기에 긍정적인 화제가 될 수 있었다. 본인의 정치인이 능청스럽게 대사를 치는 것에 능한 스타일인지, 아니면 쑥스럽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인지 신중하게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조회수 대박나더라도 아무 맥락이 없는데, 뭐라도 홍보해야하지 않을까요? NO.   

숏폼 챌린지를 따라하기로 결심했으면, 괜히 본인 생각에 유의미한 정보를 끼워넣을 생각하지 말고, 보는 사람과 소통한다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자. 나도 사실 프로그램 홍보하면서 본방송에 대한 편성 정보를 껴 넣었다가 일단 조회수도 안 나오고, 콘텐츠도 재미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정치인이 참여하는 숏폼 챌린지는 소통에의 진정성을 그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좋고, 조회수가 잘 나오더라도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소탈함을 강조하는 데까지만 가는게 최선이다. 그 이상 가는 순간 반감만 불러일으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보니까 다들 아무데서나 가볍게 찍어서 올리던데, 우리도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YES and NO.  

남들은 집에서 티쪼가리 입고 찍어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출연자가 콘텐츠를 찍는 상황과 맥락을 상상하게 해준다. 반드시 멋있는 공간에서만 찍으라는 뜻이 아니다. 유지곤이 국회의사당에서 찍거나, 김기남이 길거리를 걸으면서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찍는 것에도 다 영상에서 전달하고자하는 상황과 분위기가 명확하다. 유지곤은 길고 긴 댓글까지 달아가며 국회의사당 앞에 공원에서 삼각대를 놓고 찍은 의도를 설명했고, 김기남의 기획자는 그 연출력을 칭찬 받았다.   

진짜 길거리에서 습격한 듯이 연출한 나경원의 길거리 인터뷰와, 아련한 느낌의 배경음악과 결합하기 위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찍은 김기남의 영상.


아무래도 영상이 제일 중요하겠죠? NO.

음원이 중요하다. 흥하는 숏폼 챌린지는 보통 연계된 음원이 항상 있다. 중국이나 일본 노래보다는 한국이나 영어권 노래가 보통은 안전하다. 유지곤처럼 숏폼 챌린지에 대해 명확한 사상이 있지 않은 이상, 가볍게 시도해볼거라면 반드시 유념하는게 좋다. 그리고 위의 정치인 숏폼 챌린지는 모두 영상을 올릴 때 음원을 미리 삽입하지 않고, 인스타그램 자체 플랫폼에서 음원을 설정하여 올린다. 이렇게 하면 영상의 노출 확률을 더 높일 수 있기도 하고, 더 트렌디해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영상을 올릴 때 인스타그램 플랫폼에서 음원을 설정해서 업로드하는 것이 좋다. 역시 잘 하는 채널은 디테일이 다르다.



우리 정치인 채널에다 올려야 분산이 안 되겠죠?

개인적으로는 타 채널과의 콜라보를 추천하고 싶다. 같은 정치인들끼리도 괜찮고, 결이 맞는 크리에이터가 있다면 그것도 좋다. 요즘 MZ들은 어차피 어떻게 콜라보를 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그다지 신경 쓰는 편이 아니며, 콜라보의 결과물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주로 보는 편이다. 옛날에 자이언티가 뜬금없이 한문철TV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웬만한 인터뷰 프로그램 나오는 것보다 훨씬 깊게 뇌리에 박혔다. 본인의 정치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에 부합하는 채널과 뜬금포 콜라보 성사를 추천한다.   

어나더 뜬금포 콜라보였던 이짜나언짜나 (농협은행 챌린지의 주인공들)와 JTBC 김명준의 뉴스파이터의 콜라보. 알고보니 아나운서 이담이 이들 중 한 명의 친누나였다는 썰이 있다.


참고로, 현재의 공직선거법상 선거 광고에 숏폼을 활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 역시 이와 같은 선거법 규정을 따르고 있으나, 광고만 금지되어 있을 뿐 정치인들이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틱톡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정치 광고가 금지돼 있지만 정치인들 역시 다른 이용자들과 같은 기준 하에서 자유롭게 콘텐츠를 업로드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 나경원의 레퍼런스를 시작으로, 더 많은 정치인들이 숏폼 챌린지를 활용한 홍보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의 보도를 다시금 갖고오자면,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한 비례대표 의원실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의 사례를 통해 숏폼이 정치인에게도 최적의 홍보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를 포함해 많은 출마자들이 숏폼 활용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더 많은 정치인들이 숏폼 챌린지에 동참하기 시작할 때 리뷰와 분석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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