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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커뮤니케이션으로 소비되는 시대

준사회적 상호작용 개념의 재고찰

by 미셸 킴

오타쿠 문화 비평가이자 현대 사상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이미 10여 년 전, “지금까지는 콘텐츠로 소비된 것이 어느새 커뮤니케이션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콘텐츠를 감상할 때 내용 자체에 관심을 갖고 시청하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미디어 시청 행위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 때문에 소비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나는 SOLO>를 볼 때 노트북으로는 방송을 켜 놓고, 휴대폰으로는 블라인드 나솔 게시판과 DC 나솔 갤러리를 들락거리며 시청한다. 그곳에는 실시간 방송 후기 뿐 아니라, 역대 ‘광수’ 중 베스트 뽑기, 내가 ‘영숙’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등 방송에서 파생된 다양한 내용이 논의된다. 한국일보에서는 <나는 솔로> 시청자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소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KR20230521039400005_02_i_P4.jpg 각각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화면 갈무리.

네이버는 이렇게 콘텐츠를 둘러싼 수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캐치하고 2023년 6월에 ‘오픈톡’을 출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아예 공식 소통방을 열고 시청자들끼리 실시간으로 시청 후기를 남기도록 장려하거나 본방 유도 이벤트 등 프로모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글을 쓰는 2024년 12월 현재, MBN의 <현역가왕2>는 16만명이 참여 중이고, 그 외에도 <좀비버스> <데블스 플랜> 등 추리 예능이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즈마 히로키가 지적한 미디어를 커뮤니케이션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은 세대를 막론하고 SNS가 발달한 현대의 미디어 소비의 중요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이렇게 사회적 시청이 보편화된 2024년 현재, 1980년대에 고안된 미디어 이론 ‘준사회적 상호작용’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 가능할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수정해야할지 이론적 탐색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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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 PSI)은 Horton과 Wohl이 1956년 처음 고안한 개념으로, “매스미디어 사용자와 배우, 셀럽 등 미디어 인물 간의 상호작용이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개인이 친구나 연인 등 실제 인물과 면대면(face-to-face)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과 달리, 미디어 인물과 마치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느낌을 다루었기 때문에 ‘준’ 혹은 ‘의사’ 단어를 붙여 상호작용을 정의했다. (접두어 para는 ‘~옆에’, ‘~근처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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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개념은 1950년대에 처음 고안되었지만, 본격적으로는 발전된 시점은 Rubin과 Perse 등이 준사회적 상호작용과 미디어 시청을 결부하여 연구를 진행했던 1980~90년대이다. 컬러TV가 보편화된 시점인 1960~70년대와 어느 정도 맞물리는 것으로 보아, TV 기술의 발전이 준사회적 상호작용을 촉발한듯 하다. 한편 2000년대 초반 소셜 미디어의 태동 이래, 컴퓨터 매개의 실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지만, 학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발생하는 대화를 ‘의사 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 “실존 인물과 메시지를 주고 받더라도 익명성이 유지된 채 발생하는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화여대 최윤정 교수는 가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TV 시청 경험을 공유하는 이른바 ‘사회적 시청’ 개념을 제시하며 TV 시청 동기에 대한 선행 연구를 정리했는데, Null은 이미 198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TV와 같은 매스미디어에는 함께 시청하는 가족 간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학습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관계적 이용 동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즉 준사회적 상호작용 개념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1980년대부터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TV 시청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연구되었지만, 그동안의 준사회적 상호작용은 미디어 인물과 수용자 간의 관계성에 주로 집중하여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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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디어 인물과 수용자 간의 관계성에만 집중한 전통적인 준사회적 상호작용 이론은, 위에서 언급한 <나는 SOLO> 오픈 채팅방이나 DC 갤러리, 네이버 오픈톡 등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 현업 전문가들은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연속성 있는 대화거리’라며 드라마 뿐 아니라 예능에도 팬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느끼기로도, 블라인드 게시글을 눈팅하다보면 <나는 SOLO>는 오히려 대화 소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콘텐츠 자체는 소홀히 하고 메타 콘텐츠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상” 현대 사회에 보편적으로 관찰된다고도 했을 정도다.


https://www.banronbodo.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59


콘텐츠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존재하는 지금 이 시대, 준사회적 상호작용 이론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필자는 준사회적 상호작용 이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대신, 수용자와 미디어 인물 간 관계성만 다루었던 기존 구조에서 ‘또 다른 수용자’를 추가하여 보다 다층적으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먼저 미디어 인물과 수용자의 1:1 관계만을 연구했던 기존 개념을 확장, 미디어 인물과 수용자, 그리고 또다른 수용자 간 다층적 관계를 포괄하는 상호작용을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두번째로 미디어 인물과 수용자의 의사적 관계 뿐 아니라, 수용자와 다른 수용자 간의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이 공존하는 형태의 상호작용을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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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와 관련해 Short, Williams와 Christie는 가상 공간을 통한 상호작용에서 상대방의 실재감, 현존감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사회적 실재감’ 개념을 주장했는데, 최근 연구들은 온라인 대화의 사회적 실재감이 오프라인과 못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또한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인 네트워크나 신뢰, 유대를 가진 개인들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사람과의 결속적 관계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느슨한 교량적 관계로 나뉜다. 소셜미디어는 그동안 교량적 관계로 규정되었지만, 최근 연구들은 온라인 참여자들도 취미 등 동일한 관심사나 동질한 문화를 기반으로 결속적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정리하자면, 미디어를 매개로 벌어지는 수용자들 사이의 사회적 시청 및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실재감을 매개로 사회적 자본의 결속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별로 친하지 않은 실친과의 오프라인 대화보다, 어쩌면 같은 주제를 기반으로 한 공감대가 있는 트친/인친/스친과의 대화가 오히려 훨씬 밀도가 높고 퀄리티가 높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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