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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킥 Mar 22. 2017

화덕피자 전수생과의 나폴리 밤거리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

룸메이트와 나폴리 피자집으로

 나폴리의 숙소 라 콘트로라(La controra)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이 숙소는 폐허가 된 붉은 성당 옆에 있어 저녁에 본 첫 인상은 조금은 으스스 했다. 1박 15유로짜리 6인실 숙소에 들어오니 한 20대 인도 출신 남자가 누워있었다.

 

“Hello.”

 인사를 건넸지만 받아주지 않아 멋쩍게 짐 정리에 들어갔다.


 “Hey."

 거의 짐을 다 쌀 즈음에 인도 출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름은 재스, 자기는 토리노에서 휴가를 왔는데 오늘이 3일째라고 한다. 서로 간단한 호구 조사를 해보니, 첫 인상과 달리 친절한 친구였다. 저녁을 먹으러 갈 거라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나폴리의 골목. 건물이 낡고 가로등이 적어 첫인상으로는 '범죄' 느낌이 들 수 있다.

 나폴리의 골목은 언뜻 범죄가 연상된다. 언덕 구석구석 난 좁은 골목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어둡고, 건물들은 낡았다.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이 친구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친구가 간다는 피자집을 구글 지도로 찾아놓고 일부러 이 친구가 가자는 길과 다른 길로 가자고 했다.


 조금 밝은 거리에 있는 피자집 스따리따(STARITA)에 도착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면서, 이 친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숙소에서도 추천한 스따리따는 1901년부터 운영됐다고 하는데, 벽면 가득히 이 식당에 대한 기사들이 붙여져 있었다. 2000년 10월 25일에 이 피자집에서 교황에게 피자를 바친 모양인지, 관련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피자집 스따리따 조리공간. 내가 가본 나폴리 유명 피자집들은 모두 내부는 소박한 편이었다.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이 식당은 서민적인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격도 피자 한판이 5~7유로 정도고, 마르게리따는 4.5유로였다. 낮에 폼페이에서 마르게리따를 먹었던 터라 다른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호두와 꽃이 들어간 피자(Noci e Fiorilli)였는데, 꽃이 들어간 하얀색 피자는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재스가 시킨 후식 안졸레띠(Angioletti)는 꽤 맛있었다. 밀가루 튀김에 녹인 초콜릿얹은 간식이다.

스따리따에서 후식으로 먹은 안졸레띠. 밀가루 튀김 위에 초콜릿이 올라가 달콤하고 고소하다.


'나폴리의 홍대'에 가다

 저녁을 먹은 후 재스는 피곤하다고 먼저 쉬겠다고 들어가고, 나는 맥주 한잔을 더 하러 가기로 했다. 유럽여행 커뮤니티 '유랑'에서 연락하게 된 35세 최씨형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근처에 술 마실데가 많다는 지하철 단테역 앞에서 보기로 했다. 숙소 직원도 단테역과 나폴리대성당 사이의 산타마리아 디 콘스탄티노폴리 거리(Via Santa Maria di Costantinopoli)가 바와 식당이 많아 이곳 젊은이들이 모이는 지역이라고 했다.


 최씨형님은 체구도 좋으시고 턱수염이 멋진 분이셨다. 형님과 이곳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힙합 음악이 시끄러울 정도로 울리고 곳곳에 바도 많은 흥겨운 곳이었다. 셀카봉을 들고 다니니 곳곳에서 인사를 해왔다.

젊은이들로 붐비는 벨리니 광장. 딱 홍대 앞 놀이터 격이다.  

 “여기가 음악 학교가 있어서 낮에는 악기상하고 카페가 영업을 한 대요.”

 이곳은 ‘나폴리의 홍대’라 할 수 있었다. 벨리니 광장(Piazza Vincenzo Bellini)은 홍대 앞 놀이터격이었다. 19세기 초에 활약한 나폴리 출신 음악가 빈센초 벨리니 동상이 놓인 이 작은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맥주캔을 들고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로마에서도 지하철 피라미드역 근처에 있는 클럽 거리에 간 적이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로마 피라미드역 인근은 약간 교외 지역이라서 서울로 치면 청계산 입구 같은 분위기였다. 한국이라면  등산복 매장과 도토리묵·막걸리를 파는 식당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 20여개의 클럽이 줄지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나폴리의 벨리니 광장 일대 거리가 더 신났다.

로마 피라미드역 인근 클럽 거리. 사진은 번화가처럼 나오지만 대부분 교외 느낌이 강했다.

 

화덕피자 전수생의 고군분

 최씨형님과 이곳을 한바퀴 쭉 돌아본 다음 벨리니 광장 앞 맥주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최씨형님은 나폴리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 피자집에서 한달가량 일을 해오는 중이라고 했다. 원래 한국에서 일식집 3곳을 운영했는데 나폴리 화덕 피자로 종목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사업을 정리하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나폴리 화덕피자를 배우러 온 최씨형님과의 셀카

 “무작정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피자집에 찾아가 ‘돈을 낼테니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처음엔 구경만 하게 해줬는데, 제가 이곳 애들보다 칼질을 잘하니까 하나씩 일을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피자 만드는 방법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됐어요”


 최씨형님은 서울로 돌아가면 이곳에서 배운 방법대로 화덕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피자 화덕은 두 겹으로 돼 있어서 자연스레 열 순환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다수 피자 화덕은 한 겹으로 만들고 굴뚝에 환풍기를 달아 강제적으로 열을 빼낸다고 한다. 피자 맛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

스따리따에서 먹은 꽃피자. 호스텔 룸메이트 재스가 먹은 마르게리따가 무난한 것 같다.

 “이탈리아 현지 화덕 공장에 주문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하면 비싸기만 할 뿐이예요. 사실 화덕에 들어가는 벽돌이나 아궁이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더 뛰어나요. 여기서 익힌 화덕 구조를 이용해 우리나라 기술자들을 이용해 나폴리 전통 화덕을 구현할 거예요”


 형님은 화덕 얘기를 할 때 매우 진지다. 열정적인 형님이 참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 번화가로 들어가는 아치 관문

 형님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더 이상 '범죄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좁은 언덕길 이따금 청년들이 스쿠터를 타고 쌩쌩 지나갔다. 한 스쿠터에는 10대 여자애 둘이 타고 있었다. 왠지 그 애들도 멋져 보였다.

 나폴리의 밤이 깊어갈수록 아드레날린은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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