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올 한 해 당신의 삶에서
가장 미안한 사람과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올 한해는 힘든 일이 너무 많았기에 미안한 사람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 아버지께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갑작스레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아시고서는 꽤나 큰 걱정을 하셨을 테니까요. 물리적인 큰 사고가 나서 몸이 아픈 것과는 또 다르게 정신적인 이유로 힘들어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쓰시는 것 같더라고요. 자식이 안녕하지 못한 것처럼 큰 불효도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휴직을 하고 머리도 비울 겸 고향 집에 내려가 어머니, 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바쁜 일손만 도와드리다가 복직한 아내를 대신해 이준이를 돌봐야하기도 해서 결국 서울로 올라오게 됐지요. 부모님은 내심 조금 더 머물렀으면 하는 눈치셨는데 말입니다.
짧은 기간 고향 집에 머무른 것도 죄송했지만, 더 죄송스러웠던 것은 저 스스로가 ‘이제 내 삶의 터전은 직장과 가족이 있는 서울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옛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내리사랑이 치사랑보다 더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듯합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내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서울로 다시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쉬움까지도 이제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저는 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이번에 아버지께서는 처음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살지 않겠냐’를 물으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서울에서 많이 배워야 된다며 제가 고향에 내려와 살기를 거부하셨던 아버지셨기에 그 제안이 더 마음에 남습니다. 단번에 ‘네-‘를 하지 못한 탓에 또 한 번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손주 귤 먹이라며 귤 상자를 보내고, 아들의 안녕을 누구보다 응원해주시고 계시는 나의 엄마, 아빠.
올해도 여느 때처럼 미안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