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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9. 2021

Day 27, 낭만적이었던 우리의 첫만남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당신이 지금까지 봐온 장면 중
가장 ‘낭만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쭌쭌이를 처음 만나던 순간이 꽤 낭만적이었습니다. 모든 첫 만남이 서툴고 아련하듯 우리의 처음도 마음을 흔드는 기운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거든요. 기념비적 순간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저는 바디캠을 직접 가슴에 달고 분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쭌쭌이는 이미 세상에 나와 아주 우렁차게 울고 있었죠. 낯선 세상으로 갑자기 나와서 아마 그 갓난아이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예요. 정말 온 힘을 다해 울고 있더라고요. 탯줄을 끊어주었습니다. 이게 끊어지면 이제 이 아가를 생존케 할 수 있는 건 오직 엄마 아빠의 돌봄뿐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영양분과 10개월간의 희생을 잘라냄으로써 그 역할을 아빠인 저도 본격적으로 나눠 짊어지게 되는 느낌이었죠. 저도 같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쭌쭌이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저는 아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까지 아내는 쭌쭌이를 보지 못했거든요. 아이를 낳고도 산모는 다음 날이 돼야 아이를 볼 수밖에 없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실에서 아내가 나오자마자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도 오래 기억될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를 잉태하고 오랜 기간 배 속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그저 자연의 섭리가 정해놓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쭌쭌이와의 첫 만남 때 더 확신하게 됐거든요. 오랜 기간 아이를 기다려왔던 둘이었기에 그렇게 재회한 자리에서 잡은 아내 손의 그 온도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밤새 몇 번이고 찍어온 영상을 돌려보며 쭌쭌이의 ‘처음’을 감상했습니다. 영상 속 쭌쭌이도, 그걸 보고 있는 저희 둘도 모두 울고 있었지만, 우리의 처음은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꽤 낭만적인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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