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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하 Jun 26. 2020

뒷길

가끔 외로우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새들의 소요에 눈을 뜨니

가로수 바람 따라 가지를 뻗고

햇살은 틈을 비집는다


부딪혀 흔들리고

포효하고 짝을 지으며

빛을 내고 물을 머금는


충돌이구나

서로 다른 의지들은 그렇게 상조하는구나


어두운 산등성이의 송전탑은 어찌 우는가

그 메아리는 어디에 있는가

강에서 헤엄하는 법을 잊었으니

내 물장구는 거센 파도가 되리라


너와 나는 고요하구나

죽어가는 별처럼

소생하는 것들을 잠식하는구나


마음만 공연히 소란하다


충돌이구나




나는 뒷길을 좋아합니다. 
사람도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서 조용하지만 또 완전히 적막하지도 않아서 나의 숨소리와 같이 나무 위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히 시끄러운' 골목을 골라 다닙니다.


나의 대학에는 매우 다양한 뒷길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은 건물 뒤편으로 캠퍼스를 동서로 가르는 콘크리트 길입니다. 양방향 차들이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도로임에도 다니는 차나 사람들이 많지 않아 누군가 마주치고 싶지 않을 때 안성맞춤인 길입니다. 길의 옆으로는 산이 펼쳐져 있는데 비가 많이 올 때는 물길을 따라 작은 폭포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홍콩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혼자만의 공간은 화장실로 만족해야 합니다. 한국에 비해 보도의 폭도 좁고 기숙사 환경도 열악하여 시루 안 콩나물처럼 부대끼며 생활합니다. 이따금씩 산에 오르거나 해변에 갈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정적은 정말 영혼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매일의 소음을 소화하다 그 임계치에 다다를 때 몸은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거부하는데 남은 힘을 쏟습니다. 정적에 휩싸여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며 지친 영혼을 달래야 하는데 일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옆 방 친구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지르고 지저분한 창문형 에어컨은 요란하게 돌아갑니다. 룸메이트의 통화소리와 커먼 룸(팬트리 같은 공용 공간)에서 끓고 있는 라면 냄새에 아득해질 무렵, 무심한 교수는 끝없는 제의 나락으로 모두를 밀어 넣습니다.


숨이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느껴질 때 혼자 그 '뒷길'을 걷곤 했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즐기는 나만의 시간은 기대 이상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별은 빛나지만 나는 왜 빛나지 못할까라는 고민에 스스로 답하기도 하면서 '충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주변인들과 가꿔나가는 내 작은 세상에서 나는 그들과 건강하게 부딪히고 있을까? 하루에 나누는 대화는 꽤 많은데 단어의 개수와 소리의 크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고민하다 문득 올려다본 산등성이에는 송전탑이 반짝입니다. 문득 산에게 미안해집니다. 산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가끔 나 자신이 블랙홀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같이 전염성 강한 우울감을 지닌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강한 중력으로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세계관 최강의 천체. 생각해보면 나의 우울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점은 주변의 빛을 동경한다는 정도. 나처럼 어중간한 미물과 비교당하는 블랙홀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겠죠. 뒤틀린 그의 언어는 인간의 것과 많이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시끄러운 것들은 본질적으로 제일 조용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장된 말에는 차가운 공기가 들어있어서 아무리 따뜻한 단어라도 듣는 이에게 한기를 전달합니다. 마음의 움직임 없이 말을 뱉는 건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겠죠. 돌멩이가 아닌 잔잔한 물결로 녹아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세상을 공부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교훈을 찾지 못해 사람들은 해일이 되어 서로 갈등하고 상쇄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결코 답하지 못물음만 쌓여갑니다.


그러므로, 이번 여름에도 그 길을 걷겠습니다.

단순히 스쳐서 지나는 것 말고 그 길에 존재하는 연습을 해보렵니다. 길은 사실 우리의 목적지일 수도 있으므로.

오랜만에 건네는 인사에는 진심이 담뿍 담기기를,

그들에게 나는 무례한 돌멩이가 아니기를,

그리고 모두의 삶에서 크고 작은 울림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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