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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하 Jun 26. 2020

만남

바다 위의 코코넛


애초에 이유랄 것도 없이 사랑은 필연적이다

그 존재는 마치 파도와도 같아서

과학의 설명 없이도 감상할 수 있는

밀려오기도 쓸려나가기도 하는

일종의 박자 같은 것이다


야자수 코코넛 하나가 해변에 떨어져

유난히 멀리 들어온 바닷물에 휩쓸린다

흰 거품 사이로 둥둥 떠있는 모습은 마치

작은 거북의 등딱지 같아 위태롭다

그 본질은 실로 부조화이다


이내 밀려온 열매 짠 기만 그득하다

모래에 박힌 꼴로 태양 아래 작열하는 것이었다

먼발치서 얼밋대는 파도는 기약이 없다


썰물 때가 다 되도록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가




첫사랑은 아름다운 비극이라고 합니다.


난생처음으로 써본 자발적 손편지에는 어떤 마음이 담겼을까요? 기억을 더듬다 이내 포기합니다. 서랍 속 어딘가에서 분명 찾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애쓰지 않습니다. 진심을 서술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나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 사랑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시계를 찾다 우연히 발견한 그 종이는 낯선 누군가가 쓴 연애편지에 불과합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문장은 어색하기만 한데,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는 알아야 했습니다. 절대 잊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렷이 기억나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니까요.


그래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은 파도와 같아서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며 수많은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지요. 부산 영도 태종대에 가면 그 단단한 암석에 시간이 남긴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백악기 잔잔한 호수였던 곳에 흙이 쌓이고, 굳어진 땅을 다시 파도가 잠식하여 오늘날의 비경을 만들었습니다. 거대한 바위도 시간에 순응하여 그 모습을 바꾸는데 하찮은 나는 별 수가 없습니다. 물때에 맞춰 이리저리 꺾이며 휩쓸려야 합니다. 무기력한 모습은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바다도 그걸 아는지 하얀 거품을 내며 나를 모래 위로 내쫓습니다.


바닷물은 짜도 너무 짭니다.


소금기 가득한 나는 점점 말라갑니다. 바다 내음이 이제는 숨에서느껴집니다. 햇 아래서 나는 다시 사랑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더위는 모든 생명을 불사를 듯 작열하지만 태양이 뉘엿하는 해 질 녘은 낮과 밤의 중간에서 연신 열기를 불어냅니다. 수평선을 메운 뿌연 노을을 보며 나의 붉은 조각들을 바람에 씻어냅니다. 달궈졌던 모래는 금세 차가워지고 나의 마음도 냉정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해진 밤, 나는 가장 많이 울었습니다. 눈물 앞에서 꾸밈없이 솔직했으며 변명 없는 반성을 게워냈습니다. 밤은 길고 이내 눈물은 말랐습니다. 비 맞은 땅이 굳어지듯, 나의 마음도 활강하는 독수리처럼 의연해집니다. 새벽을 맞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하늘은 쪽빛으로 변하고 별들 먼길 돌아 집을 찾아갑니다. 빗소리에 묻혀 잠시 잊었던 파도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이제 그것은 소음이 아닌 음악입니다. 사랑은 박자이고 나는 그 위의 음표입니다. 언제 밀려오고 쓸려 나갈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습니다. 가끔 실수할 때는 망설임 없이 온쉼표를 찍습니다. 그것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의 노래입니다.


거친 파도에 속은 모두 비어버렸지만 나의 껍데기 아래서 갈매기 떼를 피하던 작은 거북이를 기억합니다.

원래 내가 무엇이었는지 이젠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나는 분명

든든한 바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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