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콩나물이다
친구들과 사주카페에 간 적이 있다. 사주를 보던 분은 나에게 먹을 복이 두 개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지 20여 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듣기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을 떠올릴 상황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간식을 주는 동료들이 많았다. 덕분에 살이 잘도 쪘다. 독립을 해서도 엄마가 반찬에 국까지 싸다 주시는 일이 잦아서 원룸의 작은 오피스텔에 살 때도 꼬박꼬박 밥을 해 먹었다.
결혼을 해서는 엄마에 더해 시누이들도 음식을 보내주었다.
이번 생신을 맞아 엄마에게 갔을 때 엄마가 나에게 내어 준 건 콩나물시루였다. 엄마의 것에 비하면 한참 작은 것이지만 일주일은 먹을 만한 작은 콩나물이 시루에 옮겨졌다.
콩나물을 싫어하지는 않고 평소에 잘 사 먹는 까닭에 거절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 며칠 연거푸 콩나물을 사 먹어서 물릴만한 시기였다. 겨울이라 다른 채소 값은 많이 오른 데 비해 콩나물은 정가여서 자주 사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공짜로 주는 데 왜 가져가지 않느냐며 화를 내기 때문에 곱게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이럴 때는 엄마 곁에 붙어서 “그만, 그만.”을 외치며 최대한 적게 덜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집에 가는 동안 마르지 않게 물을 주어 온 콩나물은 차에서 질질 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에 가져온 이상 어찌어찌 기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엄마의 콩나물시루를 흉내 내어 집에서 제일 큰 함박을 꺼내고 안 쓰는 도자기 컵을 꺼내어 엎었다. 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얹으니 제법 모양이 났다. 빛을 보지 않게 검은 천을 덮어야 하는데 마땅한 천이 없다. 남편의 낡은 티셔츠를 잘라 덮개를 만들어 덮었다. 콩나물시루 자리는 집에서 제일 어두운 북쪽이다. 빛을 보면 잔뿌리가 나고 머리가 파랗게 되면서 싹이 난다.
그런데 물을 얼마나 주어야 하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자주자주 줘.”
더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을 줄수록 빨리 자라니 생각날 때마다 주어야 한단다. 어릴 적 콩나물시루에서 자라는 콩나물을 떠올려 보았다. 자라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콩나물이 생긴다. 너무 빨리 자라도 처치 곤란인데... 그래도 물을 안 주면 죽을까 봐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었다. 너덧 시간마다 준 것 같다. 가지고 올 때는 손가락만 했던 것이 조금씩 자라는 게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보니 덮개가 봉긋 올라왔다.
어차피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으니 조금 꺼내서 먹어보려고 그릇을 가져왔다. 한 움큼만 뽑았는데 뿌리가 난 것을 옮겨 담은지라 뿌리가 엉켜서 두 움큼이 딸려왔다. 잔뿌리도 많이 나 있었다. 초보 티가 나는 콩나물이다.
집에서 기른 콩나물은 뿌리가 통통하지도 않고 질기다. 못생겼지만 더 고소하긴 하다. 국도 끓여먹고 무쳐서도 먹었다.
다음 날 시루를 보니 더 두면 안 될 정도로 많이 자라 있었다. 두 봉지는 될 것 같은 콩나물이지만 다 뽑아서 씻었다. 많은 양이지만 어찌어찌 다 먹었다.
요즘 파 값이 금값이다. 미리 알았다면 쌀 때 사다가 냉동실에 쟁여 두든지 길러 볼 생각을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에게 앞을 보는 능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