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지나고 날이 포근해졌다. 미세먼지도 보통. 이런 날은 산책을 해야 한다. 게으름을 부리다가 해를 서쪽으로 많이 넘겼지만 낮이 길어져서 아직 깜깜해지려면 시간이 있었다.
기온에 맞게 옷을 차려입고 혼자서 산책을 나선다. 오늘의 산책 코스는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다.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지금은 비어 있는 건물들뿐, 학생들은 없다. 오래된 학교라 수령이 제법 되는 나무가 많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차량의 소음과 먼지 걱정을 하지 않고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니 나처럼 산책 나온 이들이 보였다. 한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개를 두고 마주 앉은 커플이 보였다. 잠깐 앉아 쉬나 보다 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개털을 빗고 있었다. 털이 날리니 야외에서 하는 모양인데, 그러면 그 털이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 않을까. 멀찍이 비켜 지나갔다.
학교 중앙을 통과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왼쪽으로는 언덕 위에 건물이 있었는데 비탈길에서 누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올라와. ○○아, 올라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깜짝 놀랐다. 커다랗고 검은 개가, 목줄이 매이지 않은 채로 비탈에 서 있었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려는지 몸의 절반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주인은 비탈 위에서 개를 부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목줄이 매인 똑같이 생긴 개가 서 있었다. 잠깐 보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개인인지 모르겠지만 맨체스터 테리어 같기도 하고 도베르만 같기도 했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행여 개와 눈이 마주쳐서 나를 향해 달려올까 봐 무서웠다.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 사냥 본능을 일으킬까 봐 같은 속도로 걸었다. 주인이 계속 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잡으려고 하면 개가 뛰어갈까 봐 그런 것인지 계속 개를 부르기만 했다.
산책길에서 공포를 느낄 줄이야. 그런데 언덕을 내려가 도로를 걷다가 또 개와 마주쳤다. 커다란 비숑처럼 보이는 개인데 이 개도 목줄을 매지 않았다. 주인인 듯 보이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뒷짐을 진 채 길을 오르고 있었다. 도로 옆 차로는 대형 덤프트럭이 자주 다니는 곳이다. 개들이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도로로 나가면 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개 주인들은 산책 시 주의사항을 잘 지킨다. 좁은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한쪽으로 비켜서게 하거나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개에게 자유를 준다고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시키는 견주들이 있다. 심지어 똥도 치우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다. 30여 년 전이라서 지금 같은 애완동물 개념은 없었고 집집마다 키우는 개는 집을 지키거나 잔반을 처리하기 위한 용도였다. 마당에서 키우는 개는 목줄을 매고 있었다. 어느 날 언니와 내가 꽤 멀리 있는 밭으로 갈 때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강아지가 우리를 졸졸 따라왔다. 몇 개월 안 된 강아지라 목줄을 매지 않고 키운 개였다. 집으로 쫓아도 따라와서 우리는 그냥 따라오게 두었다.
신작로(차들이 다니는 새로 낸 도로를 예전에는 신작로라고 불렀다.)를 건너서 뒤를 보니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덤프트럭에 깔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 작은 생명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자식과 같은 애완견에게 공원에서만이라도 자유를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사고의 위험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개들은 언제든지 공원 밖을 나가 차도로 갈 수 있다. 짖어대는 작은 개가 무서워 발길질을 하던 사람이 개를 찰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 왕왕 짖는 작은 개를 보면 나에게 쫓아와 내 발을 무는 상상을 한다. 그 뒤에는 꼭 내가 그 작은 개를 차 버리는 상상이 쫓아온다. 그래서 개를 보면 될 수 있으면 멀리 피해 간다. 오히려 큰 개는 잘 짖지 않아서 얌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마주친 검은 개를 보니 목줄이 매어 있지 않은 개와 마주치면 산책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꼬리를 물어 이런 망상까지 하게 되었다. 앞으로 산책을 갈 때는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