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Essais(수상록)에 기대어
에세이(Essay)라는 장르를 좋아했던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긴장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장르소설이나 추리소설이 저의 주식이었다면, 심리묘사가 탁월한 순수문학과 단어를 갈고 벼려서 날카로운 맛을 내는 시는 저의 별식이었지요. 어려서 억지로 써야 했던 일기, 글짓기 숙제의 악영향일까요? 그저 개인의 잡다한 일상사를 그려내는 에세이를 굳이 시간 내서 읽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직접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사실 저는 기록에 굉장히 인색한 삶을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그 흔한 다이어리, 스터디 플래너 하나 쓰지 않았고, 기억력을 훈련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간단한 일정과 숙제를 적는 메모마저 하지 않는 학생이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자, 내 인생의 기록이 너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나마 기억력도 나빠지기 시작하니, 조금 조바심이 났어요. 이러다가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세이는 가장 수월한 장르같이 여겨졌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삶을 버무려 적당히 괜찮은(?) 글을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붓이 가는 대로 적는 글이라, "수필(隨筆)"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실상은 붓 가는 대로 써지기는커녕, 첫 문장부터 요지부동 제자리에서 깜빡이는 커서와 눈싸움만 하는 형국이었죠. 미동도 없는 커서를 아무리 노려보아도 감이 오지 않을 때에 이르러서야, "에세이(Essay)"라는 장르에 대한 저의 경험이 일천(日淺)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몇 편의 수필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에세이라는 장르를 읽어본 적이 없으니, 글감만 가지고 앉으면 어떻게든 써지겠지 했던 제 안이한 생각이 얼마나 뻔뻔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죠.
도대체 이 에세이라고 불리는 글은 어떤 글인가 알아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Essay"라는 문학장르는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가 쓴 "Essais"라는 책에서 기원했더군요. 전 3권 107장의 짧고 긴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우리말로는 "수상록(隨想錄)" 즉 "생각을 따라 적은 기록"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전형을 제시한 글이자, 이후 베이컨(Bacon)이나 로크(Locke)의 에세이에도 영향을 미친 글이기도 하지요.
평소에도 "essayer(= to try)"라는 불어 동사를 자주 사용했다는 몽테뉴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자신을 탐구하는 시도"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자신의 유일한 저서의 제목으로 붙였습니다. 고대 프랑스어로 "시험, 실험, 시도"의 뜻을 가진 "essai"는 라틴어 "exagi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울질, 무게달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exige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exigere"는 "밖"을 뜻하는 "ex"라는 접두어에 "몰다, 이끌다"를 뜻하는 "agere"가 합쳐져서 "무게를 달다, 평가하다,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가 된 것이지요.
"exigere"에서 파생된 다른 영어 단어들로는 "examine(조사하다, 어떤 것을 신중히 평가하다)" "exact(정확한, 엄격한)" "exigent(긴급한, 절박한)" "execute(실행하다, 처형하다)" 등이 있으며, 모두 무언가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몽테뉴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무엇의 무게를 재고, 평가한 것일까요?
몽테뉴는 저서 "Les Essais"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오로지 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그들의 곁을 떠났을 때,
이 글을 보면서 제 사상과 성격의 흔적들을 더듬어본 그들이
저에 대한 기억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그도 기록에 인색했던 사람이었을까요? 인생의 말년을 맞이하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생의 무게를 재고, 평가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남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가 에세이를 통해 성취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Les Essais"를 읽어보면 그의 기준은 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라고 까지 말한 그에게 에세이라는 장르는 정말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책이라고는 달랑 "Les Essais" 밖에 남기지 않은, 기록에 야박했던 이 16세기 사상가에게, 또 그가 글을 쓰게 된 이 다분히 사적인 동기에, 이상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제가 좀 불경한 것일지요.
이제야 왜 에세이가 저에게 쉽지 않은 글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에세이는 자신을 드러내는 용감한 장르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을 저울에 올려놓고 재고 평가하여 그 속내를 드러내어야 훌륭한 에세이가 탄생하는 것일 테니까요. 내 생활의 익명성을 위해서 X도,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 저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장르일 수밖에 없지요.
So, reader, I am myself the substance of my book,
and there is no reason
why you should waste your leisure
on so frivolous and unrewarding a subject.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니,
당신이 당신의 여유시간을
이렇게 경박하고 의미 없는 주제에 낭비할 필요는 없다.
- Michell de Montaigne, Essays의 서문에서
심지어 그 몽테뉴조차 자신의 독자들에게 경고의 문구를 날릴 정도로 본인의 생각을 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을진대, 제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내 글을 읽어달라 요구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저 자신을 위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한 소소한 고백... 그렇다면 어쩌면 저도 몇 자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용기를 내서 이 두려운 장르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몽테뉴의 "Essais"에 기대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