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tagonist, Ownership
우리 한국인들에겐 두 번의 새해가 있습니다. 양력 새해와 음력 설날. 따라서 1월 1일에 했던 새해 결심이 이맘때쯤 아작이 나 있더라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이지요.
올해 저의 목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신경 쓰고 나에게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갱년기가 되어서인지 자꾸 걱정공장이 가동되고, 쓸데없는데 신경 쓰느라 정작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서요. 상당히 외향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거든요. 올해는 이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불가의 말 중에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임제 선사가 하신 말씀인 이 법어는,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지금 서 있는 곳이 곧 진리의 자리"라는 뜻으로, 어떤 상황과 어떤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자신의 인생의 주인 됨을 지키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불교방송의 영상클립에서 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수처작주"라는 말은 모든 곳에서 주인공이 되라는 뜻이 아니고, 주인 정신을 가지라는 뜻이라고요. 자리에서 늘 돋보여야 한다는 뜻이 아닌 것이죠.
영어에서 "주인공"을 뜻하는 단어인 "protagonist"는 그리스어에서 주역배우를 뜻하는 "protagonistes"에서 유래된 말로, "처음"을 뜻하는 "protos"라는 접두어에 "경쟁, 시합" 등을 뜻하는 "agon"이라는 어근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어떤 투쟁이나 경쟁에서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관련된 단어들도 투쟁과 경쟁의 상황에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에서의 상대역" 즉 "적대자"를 뜻하는 "antagonist" "극도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뜻하는 "agony" "고뇌하다"를 뜻하는 "agonize" "적대감을 일으키다"를 뜻하는 "antagonize" "경쟁적인, 투쟁적인"을 뜻하는 "agonistic"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영어에서 "주인정신"을 뜻하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실 영어에서 "주인정신"을 뜻하는 단어를 콕 집어 말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ownership, sense of mastery, sense of responsibility, accountability, self-reliance, autonomy 등의 단어들이 일단 떠오르는데요. 제 느낌으로는 "ownership" 혹은 "ownership mentality"라는 표현이 그나마 가장 "주인정신"의 뜻에 근접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ownership"이라는 단어가 우리말의 "주인정신"에 딱 맞는 느낌이 아닌 이유는, 이 단어가 원래 "어떤 것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원을 보아도 애초에 "소유하다"를 뜻하는 고대영어인 "agnere"에 근원을 두고 있는 단어로 "소유자"라는 뜻의 "owner"에 "정신, 상태, "~ship"이 합쳐져서 된 말이지요. 그래서, 사전에서 "ownership"을 찾아보면, " the state, relation, or fact of being an owner(소유주가 된 상태, 관계 혹은 사실)"라는 뜻이 먼저 나오고,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accountable(책임을 지는 상태 혹은 책임감 있는 성정)"의 뜻이 나중에 나오게 되지요.
그럼에도 "수처작주"라는 말은 "take ownership of your life"라는 말로 상당히 잘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처한 모든 곳에서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문제나 상황에 책임을 지는 것에 앞서 그 상황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할 테니까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주변 환경의 산물로 생각하고, 내 인생을 만들어내는 사람, 온전한 소유자가 "나"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주인이 된다"라는 표현에 "되다"를 뜻하는 한자가 아닌 "만들다, 짓다"를 뜻하는 한자인 "작(作)" 자를 사용했다는 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주인"이 되려면 "주인 됨"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어떤 상황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 즉 "주인공(protagonist)"이 아닌 "그 상황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作主) " 그 사람이 바로 "주인(owner)"일 테니까요.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You have power over your mind—not outside events. Realize this, and you will find strength.(너는 너의 정신만을 통제할 수 있다, 외부의 사건들이 아니라. 이것을 깨달으면 너는 강해질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주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나 자신 - 그 안에서라도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면서 살 수 있겠지요. 그것이 저의 새해 결심의 시작이자 종착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