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Thinking vs. Feeling
MBTI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이름, 나이 다음으로 상대의 MBTI가 뭔지 묻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던 즈음이었습니다. 제가 우스개 소리로 하던 말이 있었지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가장 살아남기 어려운 MBTI 유형은 ENFP라구요. 네 개의 글자 중 단 하나도 이 유형의 사람들을 차분히 눌러주는 글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인 그들을 수용하기에 우리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마치 정육면체인 상자에 몸을 오그린 채 들어가 있는 무정형의 생명체처럼 ENFP들은 어색해 보이곤 했습니다.
사람은 ENFP로 태어나서 세상사에 적응하며 ISTJ로 변화해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ENFP들은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상태인 것이겠지요. ENTP인 저는 사실 이 태초의 상태에서 다른 것들은 그대로 있고, 의사결정의 기준을 나타내는 세 번째 글자만 바뀐 상태인데요. 사실, 이 한 끗 차이가 생각보다 굉장히 크더라고요. 많은 "T"들이 이 성격 탓에 "너 때문에 서운하다" 혹은 "너는 냉정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MBTI의 세 번째 글자인 "T"와 "F"는 아시다시피 "Thinking vs. Feeling"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어떤 면을 더 중요시하는지를 알려준다고 하지요. 즉,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에 근거를 둔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T"로,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의사결정의 주요 요인으로 반영하는 사람들을 "F"로 분류하는 것이죠.
"think"라는 동사는 고대 영어 þencan, 그리고 게르만어계 thankjaną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 의미는 "기억하다, 생각하다, 고려하다"에 가깝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thank(고마워하다)"도 파생되었는데, 이는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함'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think" 또는 "thank"에서 파생된 단어들은 대부분 "사고" 또는 "감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thought(사고)" "thankful(고마워하는)" "thinker(사상가)" 등이 이에 해당하지요.
"feel"이라는 동사는 고대 영어 fēlan, 그리고 인도유럽어 뿌리 pal-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원래 의미는 "만지다, 접촉하다, 감각하다"로, 물리적인 감각에 관련된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의미는 점차 내면의 감정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에는 단순히 ‘감정을 느끼다’는 뜻으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지문에 "사고"와 "감정"에 대한 정말 많은 연구 사례들이 나옵니다. 작년, 2025학년도 수능 영어의 지문을 예로 들어볼까요? 22번 요지를 묻는 질문에는 "감정이해 능력은 집단 내 원활한 이해와 의사소통을 촉진한다"라는 요지의 지문이 출제되었지요. 명백히,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감정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문이었어요. 반면, 같은 시험 32번의 빈칸을 채우는 문제에서는 "교육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비판적 사고를 통한 정신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출제되었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감정과 사고를 양팔 저울에 올리고는 어떤 쪽이 더 우위여야 하는가에 대한 저마다의 해답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연구자 본인의 성향과 연구 결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듯싶어요. 왠지 "T"들은 "사고"를, "F"들은 "감정"을 옹호하고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거든요~^^)
이렇듯 "사고"와 "감정"을 우리 판단 기준의 상반되는 측면으로 놓는 패러다임은 사실 MBTI의 유행과 함께 더 힘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결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다루는 뇌 영역과 인지, 학습을 다루는 영역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감정과 사고는 분리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감정의 힘이 학습과 몰입으로 이끈다거나, 비판적 사고 능력과 감정지능은 서로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있어요.
한 마디로, 이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이야기이지요. "F"들은 성가시다고 말하는 "T"들도, "T"들은 서운하다고 말하는 "F"들도 사실 뇌 속에 이 두 개의 과정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모순이 없는 진실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사고형의 사람들과 감정형의 사람들. 사실은 그들의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좀 더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과정은 여럿이 모인 곳에서 벌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새도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 우리에겐 사고와 감정 둘 다 필요한 것일 것입니다.
You cannot fly with only one wing.
한쪽 날개 만으로는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