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켜질 때-
밤의 산책을 나섰다.
어둠이 몰려오는 시간,
갑자기 도로의 모든 가로등이 일제히 환하게 켜졌다.
아직 어둡다는 생각도 하기 전이었는데.
환하게 켜지니 밝아서 좋긴 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 문득,
옛날 가로등이 생각났다.
깜빡깜빡,
서서히 불을 밝혀가던 그 주황빛 등불.
어스름과 함께 조금씩 자기 빛을 찾아가던 가로등.
현재의 가로등은 다르다.
일제히, 단숨에, 환하게.
어둠을 몰아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게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1막.
내가 모르게 나를 비춰주던
많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있었다.
그 환한 빛 속에서 나는 착각했다.
이게 내 진짜 모습인 줄 알았다.
이 밝음이 원래 내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려진 지금,
알게 됐다.
약간의 슬픔이 밀려왔다.
만약 내가 옛 가로등 같은 존재였다면 어땠을까.
급하게 모든 걸 환하게 밝히려 하지 않고,
어스름과 함께 서서히 내 빛을 찾아가는 사람.
일시에 켜지는 지금의 가로등은 편리하다.
어둠을 단숨에 몰아낸다.
하지만 그 환함이 꺼졌을 때,
우리는 더 깊은 어둠을 느낀다.
익숙했던 빛이 사라진 자리의 공허함을.
지금 나는 어둠 속을 걷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 걸음 한 걸음,
바로 앞만 보며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조금 느릴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속도로,
내 빛으로 걸어가는 이 길도 나쁘지 않다.
어스름함에 적응하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온 신경을 집중해서 걸어간다.
환한 가로등 아래를 당연하게 걷는 것과는 다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더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흘리는 땀의 축축한 안도감속에 느껴지는 희열.
그건 환함 속을 걸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멋질 것 같다.
밤의 산책길,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는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