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취선 시간속에서 다시읽은 자유론

자유론 3장 '개별성'에 대한 독서 기록

by 윙크살짝

오랜만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제목이 ‘자유론’이라서였을까.
최근의 내 상황,

비자발적 멈춤 이후

주어진 자유 속에서
어떤 삶의 활로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읽다 보니

제3장, 개별성: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책을 덮고 오래 머물게 되었다.
이 장을 요약하고,

지금의 내 심정을 겹쳐
오래간만에 독후감을 써보고 싶어졌다.

이 장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왜 점점 비슷해지는가?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관습과 여론,
사회가 허용하는 평균값 안에서 살아간다.


밀은 단호하게 말한다.


개별성은 사치가 아니라,

행복의 조건이라고.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시험하고

표현할 자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두에게 맞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삶의 실험이 사회를 발전시킨다.
누군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한다면 사회 전체의 자산이 된다.

셋째, 획일성은 안정이 아니라 정체를 낳는다.
갈등은 줄어들 수 있지만
창조성, 에너지, 도덕적 활력은 서서히 사라진다.


결국 밀의 말은 이렇다.

행복이란 남들과 잘 맞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시험해 본 삶에서 나온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현대 조직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성과지표, 평가체계, 직급 중심의 커리어.
문제없이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
가장 ‘최적의 인재’로 간주되던 구조.

나 역시 그 안에서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나 비자발적 멈춤 이후,
조직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드러난 공백 앞에서
잠시 어지러웠던 시간이 있었다.

“잘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막막한가.”

그때 처음으로 의심이 들었다.
나는 선택하며 살아왔던 걸까,
아니면 따라 살았던 걸까.


조직 안에서의 삶은 늘 분주했지만
선택의 주체는 대부분
‘나’가 아니라 ‘조직의 기준’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다.


글을 쓰고,
못다 한 공부를 틈틈이 이어가며
작은 시도들을 반복하고 있다.

이 시간을 나는 ‘방황’이라 부르지 않고
‘삶의 실험’이라 부르고 싶다.


실패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조직 안에서의 획일적 성공이 아니라
나만의 삶을 직접 설계해 보는 과정이니까.

이제 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내 삶을 살아보기 위해
다시 선택을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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