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움베르트에코)의 독서기록
이 책은 움베르트 에코가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짧은 칼럼과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세상의 사건들, 그리고 지식인의 오만을 비틀며
그는 늘 웃는 얼굴로 화를 낸다.
에코의 글은 친절하지 않다.
답을 주지 않고, 대신 질문을 남긴다.
예를 들어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있다.
한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 뒤
시체를 운반하며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는 일부러 프리미엄 좌석을 끊고,
돈 많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 결과, 승무원들의 제지도 받지 않고
오히려 정중한 대접을 받으며
목적지까지 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평범한 이등칸이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많은 절차와 질문,
까다로운 규칙 속에 갇힌다.
그 글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저 프리미엄 좌석에
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임원이라는 직함이 있던 시절,
나는 더 비싼 것을
더 싸게 누렸고,
정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익숙했다.
지금은 정가를 내고도
그때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에코는 또 다른 글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어릴 때 어른들은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두 개를 먹는 건 과해 보인다고.
하지만 자라서 보니,
어른들의 세계는
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나 더 얹어드립니다.”
“오래 계약하시면 덤이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더 많이 드리죠.”
나는 그때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절제를 배운 걸까,
아니면 모순된 규칙에 길들여진 걸까.
아이에게는 충분함을 가르치면서
어른에게는 과잉을 권하는 이 규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에코는 이 질문에도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묻기보다
무엇을 더 이상 요구받지 않는지를 세고 있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결재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만큼 판단해야 할 일도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배웠지만
어른의 세계는 늘 더 많은 것을 약속했다.
지금의 나는,
그 규칙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보다
더 이상 나에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화내는 대신 웃는 법을 배웠다.
그 웃음은 체념이 아니라, 거리였다.
세상에는 여전히 바보가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보를 양산하는 구조가 있다.
나는 그 구조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