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식스펜스 ,
멈춤의 얼굴에 대하여.

by 윙크살짝

다시 『달과 6펜스』를 펼쳤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멈춤’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서머싯 몸이 1919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가족과 사회적 지위를

아무 설명 없이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그의 삶은 점점 단순해진다.

파리의 빈곤, 인간관계의 파괴,

그리고 끝내 도착하는 타히티의 고립.

그는 끝까지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후회도 없고, 설득도 없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림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는

가난을 선택해서도, 가족을 떠나서도 아니다.

그는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의 선택을 이해받으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꿈을 좇는 사람의 서사가 아니다.

꿈을 이유로

모든 관계를 소거한 인간의 기록에 가깝다.

이 책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은 단순하다.

달은 이상이고, 소명이며, 절대적 욕망이다.

6펜스는 생계이고, 관습이며, 안전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선택한 이후 우리는 어떤 얼굴이 되는가에 있다.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을 택한 사람도,

6펜스를 끝까지 붙잡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

어느 날 예고 없이

사회가 나를 부르지 않게 된 상태,

그 공백 한가운데 서 있었을 뿐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스스로 멈춘 사람이 아니라

다시 걷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모든 삶이 달을 향해

뛰어오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삶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발을 딛는 것 자체

하나의 서사가 된다는 것을.


『달과 6펜스』는

내 삶을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조용히 비추어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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