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하루의 무게

by 윙크살짝

퇴직 후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이
‘상실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내게 처음 다가온 감정은 조금 달랐다.


무언가를 잃었다기보다,
허공에 매달린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은 시간.
아무도 나를 호출하지 않는 하루의 촉감.

24년 동안 나는 늘 기다림 속에 있었다.
보고가 올라오기를,
결재가 도착하기를,
회의실 문이 열리기를.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기다림이
어느 날 한꺼번에 사라졌다.


가장 먼저 낯설게 다가온 순간은
오전 9시였다.

퇴직 후 열흘쯤 지나던 날,
나는 이유 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 알림도 없는 화면을

괜히 다시 켜보고, 꺼보고.

평소라면
이미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을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전화기

그날의 9시는
텅 빈 방처럼 고요했다.

그때 알았다.
‘불려지는 경험’
얼마나 오랫동안
내 하루의 중심이었는지를.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먼저 기억했다.
12시가 되면 자동으로 시계를 보게 됐다.

“누구랑 밥 먹지?”

그 질문이 습관처럼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제
그 질문에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점심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넘기는 구간이 되었다.


시간은 흐르는데
그 시간을 지탱하던 역할이 사라진 상태.
그 낙차는
하루 곳곳에서 반복되었다.


퇴직 후 한동안
나는 주 단위로 사람을 기다렸다.

이번 주에는 누가 연락할지,
그래도 한두 번은 무언가 있지 않을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대는 조용히 사라졌다.

보고를 기다리는 팀도,
결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내 부재로 곤란해지는 일도 더는 없었다.

이 사실은
처음엔 어색했고,
그다음엔 씁쓸했고,
나중에는 깊은 정적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필요로 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일이 사라지고
기다림이 사라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쓸모가 있을까?”

이 질문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나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하루는
분명 공허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허함은
묘한 해방감을 품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는 시간,
누구의 반응도 요구되지 않는 하루.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방식을
조금씩 다시 선택할 수 있었다.


기다림이 사라진 시간
나를 잃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하루가
두 번째 인생의
가장 정직한 출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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