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준비된 사람’이라고 믿었다.
24년 동안 한 조직에서 버텨냈고,
성과를 만들었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치열한 시간을 견뎌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나오면, 뭐든 할 수 있겠지.”
“경험도 있고, 인맥도 있고, 아이디어도 있으니까.”
그 믿음은
나를 지탱해 주던 마지막 기둥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둥이 가장 먼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믿었다.
경험치가 쌓이면
다음 챕터도 자연스럽게 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조직 밖으로 나오자
현실은 전혀 달랐다.
조직에서의 경험은
‘정해진 구조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경험’이지,
‘어디서나 그대로 통용되는 경험’은 아니었다.
공고를 하나씩 읽으며
나는 자주 멈칫했다.
요구하는 역량의 문장들을 읽어도
이상할 만큼
자신감이 붙지 않았다.
“이게… 정말 나를 말하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긴 시간 하나의 역할에 몰입한 사람이
그 역할 밖에서도
자신의 역량이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 믿는 경향을
‘역할 기반 자기 효능감의 과대추정’이라고 설명한다.
Nicholson은 경력 전환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한 성과를 낼 것이라 착각한다”라고 지적했다.
(Nicholson, Transitions in Work and Careers, 2013)
나는 그 착시의 전형이었다.
퇴직 전의 나는
수십 명의 보고를 받고,
점심이면 파트너사와 만나고,
이메일과 메신저가
쉴 새 없이 울리는 환경 속에 살았다.
그 모든 시간은
‘준비된 나’의 증거가 아니라
‘습관화된 나’의 산물이었음을
퇴직 후에야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일을 잘했던 것이지,
미래를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투자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안 해본 분야라도
부딪히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선택들이
준비의 결과가 아니라
불안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만,
방향은 흐리게 만든다.
어느 밤,
집 서재에서 스탠드 불빛 아래 홀로 앉아
문득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는…
진짜 뭐가 준비돼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은
가슴을 깊게 눌렀다.
책을 읽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어떤 문이 닫혔다고 해서
곧바로 다음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문을 여는 것은 방향이고,
자신을 세우는 일이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기준은 너무 오래
‘조직이라는 문’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 나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문 앞에 서 있었을 뿐이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게 아니라,
새로운 문에 맞는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독서,
산행,
일상 속 관찰,
새로운 만남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다시 세우는 과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준비란
끝내는 일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음 질문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