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알게 된 관계의 진짜 얼굴
퇴직이란 말이 아직 낯설던 시절,
나는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꽤 단단하다고 믿었다.
연락처에 저장된 번호만 약 2천 여개 되었고,
회사를 중심으로 매일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았다.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했고,
누군가는 결정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조율을 부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회사를 나와도, 연락은 계속 오겠지.”
지금 돌아보면
그 믿음은 자신감이라기보다
관성에 가까운 착각이었다.
퇴직 후 며칠 동안은
여전히 전화기가 울렸다.
인수인계, 감사 인사,
정리되지 않은 일들,
그리고 정말 가까운 몇 사람의 안부 전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삶이 조금 느려졌을 뿐,
관계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자
휴대전화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다.
알림이 울릴 때면
메시지가 아니라 광고였다.
그 “띠링” 소리가
왠지 모르게 반가울 정도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9)에 따르면
퇴직 후 1년 이내
지인과의 관계 빈도가 줄었다고 느낀 비율은 55.3%,
사회적 관계 약화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62.2%에 이른다.
이 수치는
통계이기 이전에
퇴직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하나의 감정 풍경에 가깝다.
나 역시 그 숫자가
곧 내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걸
아주 느린 속도로 받아들였다.
특히 가장 먼저 사라진 관계는
이상하리만큼
‘확신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연락하겠지.”
“말은 안 해도, 뭔가 같이 하자고 했잖아.”
어느 술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나오면…
나랑 뭔가 같이 할 거 있다고 했잖아.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돌아온 대답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아휴, 형님.
일단 좀 쉬세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말은 친절했지만
그 말 끝에 남아 있던 공기는
예전과 분명히 달랐다.
역할이 있었고,
직함이 있었고,
그에 따라 연락의 이유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 기반이 사라지자
관계의 상당수는
아무 소리 없이 흩어졌다.
그건 배신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변심도 아니었다.
그냥 구조의 문제였다.
어느 밤,
나는 술잔을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연락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이 느렸지만
20명쯤 지나자
오히려 빨라졌다.
서운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 일상을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에 가까웠다.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나야!"
"..."
(잠깐동안의 어색한 침묵)
“이 사람아,
나 누군지 모르나?
내 번호 없는 거야?”
"아... 그게 아니고...."
그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알았다.
회사에 있을 때
나는 많은 사람 속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 속에 있었던 게 아니라
역할 속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역할이 빠져나가자
관계는 조용히 기능을 멈췄다.
그리고 그 침묵 덕분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순간
나는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그걸 이해하자
마음속에서
오래 붙잡고 있던 무엇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마치
오래 당겨진 고무줄을
놓아버린 것처럼.
퇴직 후의 침묵은
나를 외롭게 하려는 시간이 아니었다.
누구와 함께할지,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이제는
다시 선택하라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지나고 나니 알겠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