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냈다가, 끓여줬다가
중학생 때, 나는 아빠에게 용서하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우리 엄마는 조금 아프신 분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항상 대화가 안 통했다.
나는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냥 벽이라 생각하고 체념하며 살았다.
그동안 쌓인 감정과 분노는 두려움을 이겼고, 결국 외부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빠는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
그날, 세상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내 분노는 충분히 정당했는데, 아빠는 그저 하극상으로 여겼다.
이건 그냥 상처가 아니었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키 185에 마동석 같은 덩치의 아빠는 나에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아파트 계단에 앉아,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봐 울음이 터지지 않게 숨을 참았다.
감정을 꾹꾹 눌러 삼키며, 조용히 다짐했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면, 가만 안 둔다고.
복수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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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싫었던 아빠를, 고등학생 때 문득 용서하게 됐다.
“라면 끓일 건데, 먹을래?”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물었다.
“아니, 안 먹을 거야. 제발 매번 묻지 좀 마. 짜증 나니까.”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러자 아빠가 다시, 사투리를 써가며 물었다.
“진짜 안 먹을 끼가? 니 진~짜 안 먹을 거제?”
“어어, 안 먹는다니까!”
상처 위에 얹힌 배려는, 오히려 더 얄밉고 짜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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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면 냄새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부끄럽게도 침이 고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자존심을 꺾고, 멋쩍게 물었다.
“... 아빠, 나 한 입만 주면 안 돼?”
그러자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막 끓인 냄비를 통째로 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 내가 먹는 동안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게 살짝 잡아주셨고,
설거지 많이 나오면 엄마가 힘들다시며,
내가 먹던 냄비에 새로 라면을 끓여 드셨다.
그 순간, 참 미안했다.
나는 아빠한테 저렇게 못 해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그랬다.
먹는 것 앞에선 항상 엄마 먼저, 우리 삼 남매 먼저.
본인은 늘 뒷전이었다.
우리가 먹다 남은 걸로 소주 반 병 곁들이며,
그게 하루의 마무리인 사람.
그제야, 아빠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제야, 아빠를 사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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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지금 환갑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키가 크게 줄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 복수는 평생 못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