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 직전, 10년 된 우정을 붙잡은 건 한 마디였다.

신뢰는 없지만, 신뢰한다.

by 작은균열

[한 달 전, 10년 된 친구와 절교할 뻔했다.]


나는 중학교 때 본 친구와 지금까지 인연을 잘 이어가고 있다.


현재 내가 25살이니, 거의 10년을 본 셈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이 친구에 대한 판단은 이렇다.


"잘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챙기는 사람."


"앞서가려 하지 않고, 뒤처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려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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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일이다.


체육시간이었던가, 학교 강당에 반친구들 다 같이 모여 앉아 있었다.


앞에서는 선생님의 주도하에, 더 잘한 친구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3명이 앞에 나와 있었고,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손을 들어서 투표하는 게, 우리들의 임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표는 골고루 가져가지지 않았다.


명이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표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볼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앞에서 이미 대부분의 반 친구들이 손을 다 들었던 상황이라, 마지막 차례의 친구 표정이 어두웠던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투표를 끝까지 진행했다.


드디어 마지막 친구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누군가 딱 한 명, 손을 들어주었다.


그게 내 친구 다현이다.



나는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나는 그냥 잘한 친구한테 별생각 없이 손을 들었었는데, 다현이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표를 못 받은 친구한테 손을 들어주는구나...)


만약, 어떤 누군가가, 잘한 친구한테 손을 들어주는 게 더 공정하지 않았겠냐고 내게 반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 같다.


한 명이 감정적으로 다른 표를 던졌다고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면, 그 하나쯤은 망신당할 위기에 있는 친구에게 가는 게 더 값지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중학생 때 그랬던 다현이는, 지금도 여전히 인성이 훌륭하다.


그리고 지금은 내 찐친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 . . 그런데 다현이는 나랑 정말 안 맞는다.


진짜 보면 볼수록 안 맞아서, 신기할 지경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건 기본이고,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사고방식도 정반대다.


MBTI도 하필 상극이다.

나는 ENTP, 다현이는 ISTP인데, 나는 F 같은 T라 정말 상극이다.


성향도 반대 키워드에 놓여있다.


나는 능청스럽고, 낯도 안 가리고, 사람한테 먼저 잘 다가가는 편이라면.


다현이는 소심하고, 융통성 없고, 사고방식도 완전 FM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나오는 대화의 결론은, "서로 대화하지 말자"로 끝난다. ㅋㅋ ㅜㅜ


그럼 대체 왜 만나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 싸우지만,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이다.


그걸 서로가 이미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 같다.


나는 최근에 다현이한테 별명을 붙였다.


꼰대와 다현을 합쳐서 "대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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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대현이가 나한테 물었다.


대현 - "민서, 너는 내가 돈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줄 수 있어?"


나 - "음.. 급하면 금액보고? 왜?"


대현 - "나는 너한테 못 빌려줄 거 같아.

네가 갚을 거라는 기대가 없어"


나 - "...?!? 뭔 소리야 갑자기 ㅡㅡ"


대현 - "ㅎㅎ 그래서 그냥 줄 거 같아."


이게 우리 사이를 잘 표현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서로 신뢰가 없지만, 신뢰한다.


서로 안 맞지만, 아낀다.


자주 싸우지만, 상처주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우리 우정에도 금이 갈 뻔한 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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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생활 이후 성격이 많이 변했다.


오랜만에 본 다른 친구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며 조용히 말했다.


"민서야, 나 걱정돼... 너 동태눈깔로 바뀐 거 알아?"


지금의 나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한동안 사람이 싫었다.


사람을 왜 그렇게 좋게 보냐는 말만 듣던 내가, 어느 순간 180° 변해 있었다.


바뀌게 된 에피소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풀어 보겠다.



현재의 나는 흑화 해버린 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는 주변에 티를 안 낸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티가 나고 있었나 보다.


그 덕에, 대현이와는 여느 때 보다도 더 열심히 싸우게 됐다.



어떤 날이었다.


나 - "다현아 오늘 세탁소 갔다 왔는데, 아저씨가 다짜고짜 반말하더라 무례하게.. 친근하게 하는 반말 말고, 어리게 보고 하는 반말 그 느낌이었어."


다현 - "네가 잘못 생각한 거 아니고?"


나 - "아니야 ㅡㅡ, 내가 어디 갔다 와야 해서, 계산만 먼저 하고, 퇴근시간 전에 옷 가지러 와도 되냐고 하니까, 지금 가지러 왔으면 바로 가져가야지, 그런게 어딨냐고 퉁명스럽게 반말 찍찍 뱉더라"


"그래서 내가 사정을 설명 하니까, 아무 말 못 하더라..."


심지어 저녁에 가지러 갔는데, 개지도 않은 옷들 그냥 냅다 건넸었어.

어떻게 가져가라는 거야?ㅡㅡ


다현 - "원래 세탁소는 종이가방에 안 넣어줘. 나도 정장 맡겼을 때, 그냥 비닐에 씌워서 주더라."


나 - "아니, 정장은 종이가방에 넣으면 구겨지잖아... 근데 정장을 비닐도 안 씌우고, 옷걸이에도 안 걸어서, 그냥 냅다 니 손에 줬다고 생각해 봐! 태도의 문제라고!"


다현 - ".... 네가 눈치가 없어서,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어"


나 - "!?!?!? 너 뭐라 그랬냐? 그렇게 사람 말 믿지도 못할 거면서, 너 나랑 친구 왜 해?"


다현 - "아니야, 난 너 위로해주려고 한 말이야. 네가 잘 못 느낀 걸 수도 있다고. 그 말이야."


나 -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하... 됐다, 말을 말자."


다현 - "민서야.. 네가 매번 그렇게 화낼 때마다, 나 심장이 두근거려..."


나 - "아니, 지금 열받게 한 게 누군데!!"



현이와 나의 대화 패턴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럴 때마다 대현이는 내게 말한다.


"너, 나 공감 잘 못하는 거 알면서, 매번 왜 말해?"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렇게 오래 봤는데, 어떻게 매번 이러는지 화가 나고 속상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둥글게 둥글게 넘기면서 잘 지냈지만, 요즘은 그냥 넘기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그래서 대현이와 나를 같이 알고 있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그 친구의 이름은 실명을 쓰지 않고, '장원'이라고 하겠다.


나, 다현 - "장원아, 우리 지금 절교 직전이니까, 장난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줘."


이렇게 해서 다현이와 장원이가 먼저 1대 1로 전화를 하게 됐다.


그 후 나와 장원이가 전화를 했다.


장원이와의 전화에서 나는, 다현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나 - "나 이제 다현이 안 보려고. 슬슬 그만 볼 때가 됐나 봐. 걔만 보면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아.

어떻게 애가 그렇게 사회성이 없지? ㅡㅡ"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을까, 다현이한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현 - "나 모레 너네 집 가도 돼??"


나 - "아니, 오지 마.지금 너 보면, 막말 쏟을 거 같아. 상처 밖에 더 주겠어?"


다현 - "싸우든, 지지고 볶든, 만나서 대화를 해보자. 말해보면 알겠지."


(아니, 대화가 안 통하는데 뭔 대화를 하자는 거지? 이해가 안 됐지만, 먼저 용기를 내 준 친구에게 선뜻, 매몰차게 굴기도 힘들었다.)


나 - "... 알겠어, 일단 와 봐."


그리고 약속한 당일날, 다현이가 집으로 왔다.


나 - "나 낮에 어디 갔다 온다고 한 끼도 못 먹었어.. 일단 차려 놓은 것 좀 빨리 먹을게. 티비 보면서 기다려줭"


다현 - "엉, 천천히 먹어."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 있다가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속으로 생각했다.


(아.. 밥이 코로 들어 가는지, 입으로 들어 가는지 모르겠네... 겁나 불편하다...ㅋㅋ;; ㅜㅜ)



밥을 다 먹고 대현이 한테 물었다.


나 - "너 장원이랑 대화해 봤어?"


다현 - "그전에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너 혹시 요즘 힘든 거 있어?"


나 - "... 왜?"


다현 - "내가 너보다 장원이랑 먼저, 한 3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었는데, 장원이가 내 말 하나도 안 믿더라. 자꾸 거짓말, 민서가 그랬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진짜라고, 민서 많이 변했어.. 그러니까, 장원이가 계속 안 믿겨하더라..."


다현 - "그리고 장원이랑 너랑 전화 끝난 이후에, 나한테 다시 전화가 왔었는데, 그제야 믿더라. 다현이 너 말 맞네.. 민서가 화가 많아졌다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걱정된다 그러더라..."



이 말을 듣고, 내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었다.


다현 - "?!? 야 너 왜 울어 ㅠㅠ, 너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 ㅠ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현이한테 속에 있던 얘기들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다현 - "너 왜 나한테 이제 말했어? ㅠㅠㅠ 나는 네가 그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그걸 스스로 눈치챈 게 아니라, 다른 사람 통해서 안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 ㅠㅠㅠ"


나 - "... 나 원래 속얘기 잘 못해 ㅠㅠ"


다현 - "미안해.. 몰랐어 ㅠㅠ 장원이가 그러더라. 다현이 너는 네가 공감이 안 돼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민서 기분이 어땠겠냐고 그러는데, 내가 민서 너였어도 기분 나쁘겠더라 ㅜㅜ 이거는 내가 고칠게..."


나 - "응.. 제발 고쳐 ㅋㅋ ㅠㅠ"


다현 - "그리고.. 기안 84랑 이시언 나오는 태세계 본 적 있어? 나 그거 볼 때마다... 너랑 나 같은 거야 ㅋㅋ ㅠㅠ 이시언이 기안 84 대하는 태도가, 내가 너 대하는 태도랑 비슷하더라고... 근데 제 3자로서 보니까 뭔가 너한테 미안하더라... 자꾸 내가 너 통제하려 들잖아... 미안해... ㅠㅠ"


나 - "아 ㅋㅋㅋ ㅜㅜㅜ"


이렇게 끝으로, 서로 배신하면 죽인다는 말을 남기며 유치하게 화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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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친구들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내가 사회생활 하며 만난 인간들은, 하나같이 남의 약점이 곧 자신의 희열이 되고,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열등감과 우월감을 해소하려 드는 인간들이 많았었는데, 따뜻한 친구들 덕분에 본래의 나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경험 위에 쌓인 중간을 찾은 것 같다.


"진정한 선은 경계할 줄 앎"에서 나온다는 걸 말이다.


아류 논어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 옆에 있으면, 악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닌, 선한 사람이 악해진다"는 말이 있다.


예전의 나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골라 쓰는 거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부정했다.


(악하게만 태어난 사람이 어딨어?? 내면이 약해서 악해진 건데, 그렇게 폄하해 버리면, 낭떠러지 끝에 있는 사람 밀어버리는 거랑 뭐가 달라??)


이렇게 생각하며, 이해를 못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사람은 여전히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본인 스스로 느끼고 원할 것"


그러니 사람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던 내 생각과 시선은 옳지 못했다.


나는 나조차 제대로 지키지를 못했었는데, 어떻게 타인을 위할 수 있겠는가.


흐려진 생각과 판단력을 바로 잡았다.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하다.


이기적인 게 아니다.


그저, 올바른 사리분별의 첫 번째 시작점일 뿐이다.


내가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타인한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다.


항상 타인을 해하려 드는 사람들은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나도 낮은 사람들" 이었다는 걸 명확히 하자.


약한 내면이 타인을 해하는 방향으로 나온다면, (나르시스트) 그건 그냥 자기 연민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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