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질문하고, 저항하기

레이첼 헬드 에반스, 『다시 성경으로』, 바람이불어오는곳, 2020

by 문슬아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내 이십 대의 성경은 늘 나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요 한때 내가 알았다고 생각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었다.


시, 성경으로.


처음에 제목만 듣고는 성경의 권위 운운하는 뻔한 신앙서적이겠거니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시큰둥했다. 이 책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먼저 읽은 독자들이 올린 리뷰와 추천사를 보면서 '어!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른 이야기인가보네?' 생각이 들었다.


삼다 글쓰기공동체를 졸업하는 날, 글 선생님인 총원장님이 이 책에 자필로 편지를 써 선물해주셨다. '거대한 회의의 산을 넘고 흔들리는 마음처럼 물결 이는 호수 위를 걸어 빛바랜 성경을, 다시 집어 들다' 이 책의 부제다. 의심하고 흔들리는 나의 믿음의 여정에, 작은 불빛 하나 얻고 싶은 마음으로 첫 책장을 열었다.



성경에는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도 있고, 당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마음을 쓰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나는 아직도 씨름한다. p. 149.



마음에 걸리는 말씀 본문들이 있다. 작년 가을쯤이었던가. 달란트를 받은 종의 비유를 가지고 교회 말씀 공동해석 시간에 작은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바로 남편과 나의 논쟁.


나는 주인이 곧 하나님이라는 견고한 등식이 이전부터 늘 마음에 걸렸다. 분명 이 본문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해석해도 훌륭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른사람과 나의 능력을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신것을 감사하는 마음이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 등. 하지만, 자꾸 마음에 걸림이 생긴다.


나는 당시 이 말씀을 듣고있던 청중이 제국의 수탈 아래 있던 가난한 민중들이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왜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고 싶었다.


누군가 큰 자금을 운용해 두배의 이익을 냈다는 건, 모세의 법이 금지한 이자 금지법을 정면으로 거스르기도 한다. 이런 근거들을 토대로, 나는 이 본문에 나오는 주인을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지, 어쩌면 예수가 유대 청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자본의 무한축적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 그것에 저항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이 아니었을지 생각을 나누었다.


남편은 나의 해석이 내 불편함을 근거로 너무 억지스럽게 벗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신학자들의 연구에서(크로산 등) 달란트 비유를 다르게 읽는 시도와 근거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있음을 알게되었다. 늦은 밤 교회 친구가 보내준 자료를 남편과 살펴보면서, 남편은 하나의 성경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나타나는 것이 혼란스럽고, 그런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 말씀을 진리로 믿어도 되는 것인가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어렵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놀라움과 도전, 각성과 뉘우침을 주려고 고안된 비유에서 보편적인 도덕을 추출하려고 시도한다거나,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비유에서 한 가지 의미만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비유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 에미미 질 레빈



경 곳곳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도 있고, 상충적인 가치를 제시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구절도 참 많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생기는 긴장과 질문을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주고 받는 대화로의 초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쉽게 오해되고 오용될 수 있는 성경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삼으시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신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낮아지심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라고, 레이첼은 말한다. 다양한 학자와 시인들, 성경을 바라보는 여러 전통과 관습을 통해 성경이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 자신의 여정을 다정하게 안내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대인의 성경 해석법은 "성경 속 수수께끼와 모순에 맞서 싸우지 말고 대범하게 품으라고, 성경은 본질적으로 읽는 이가 씨름하며 의심하고 상상하며 토론하게 만드는 책임"을 가르쳐 준 여정. 해방신학과 페미니즘적 성경 해석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정의의 문제를 상기시킴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혜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정.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이냐시오 명상법 같은 영적 실천으로 "한동안 잊고 있던 성경 묵상의 세계로 나를 다시 인도한" 여정까지.


레이첼은 이 책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여러가지 관점들을 토대로, 그리고 성경 텍스트마다의 장르적 특성을 세심하게 살피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시고자 하는 당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성경을 탄생시킨 특수한 상황과 초기 독자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래된 성경 이야기를 현대의 문맥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시도와 병행되어야 한다. p. 94.


책은 크게 기원, 구원, 전쟁, 지혜, 저항, 복음, 물고기, 교회 이야기의 8파트로 글의 양식(장르적 특성)을 나누어 이야기를 펼쳐간다.


성전+기원 이야기에서는 이 이야기가 21세기 과학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나 하나님과 창조물의 관게처럼 당시 사람들이 초미의 관심을 두었던 문제"에 답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원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세상은 어떤 곳인지 말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어떤 장르인지를 생각하지 않도록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져 있어 이 이야기에 쓰인 시나 신화, 과장법과 상징법 같은 문학 양식과 장치를 철저히 무시한다는 점이다.


피터 엔즈는 "창세기가 근대적 세계관이 요구하는 물음, 예를 들어, 7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비유적으로 봐야 할지, 창조 설화를 현대 과학과 나란히 세워 놓고 단순 비교하는 게 가능한지, 홍수가 지엽적이었는지 아니면 전 지구적이었는지와 같은 물음에 답할 거사로 기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창세기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과연 예배할 만한 신인가 하는 질문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우물+구원 이야기에서는 사라와의 갈등 끝에 광야로 내쫓긴 하갈의 이야기를 온전히 하갈 그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그리고 성경의 여러 구원이야기가 오랜 세월동안 성경의 구원 이야기가 어떻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기득권자들에게는 도전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타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출 20:2)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인지를 알게 한다.



나에게 성경의 전쟁 이야기를 아무런 반감 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은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p. 135



약의 역사서는 늘 마음에 가치 혼란을 준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이런 분이신가.


선택한 민족에게는 복을 주고, 그렇지 않은 민족들에게는 가혹하리만치 모든 폭력을 용인해 주는 야훼의 모습. 그리고 구약시대의 그 무서운 하나님의 모델을 지금 시대로 가져와 하나님 믿으면 축복받는다는 기복신앙과, 누군가를 혐오하고 억압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적용방식에 늘 혼란스럽다.


레이첼은 성벽+전쟁이야기에서 이런 걸림을 가진 이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성경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잠재적 갈등과 의심을 그저 피해 가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불의를 합리화하는 해석에 용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의 저자들이 어떤 시대 배경속에 어떠한 의도로 글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짚어가면서 이스라엘의 전쟁 서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또 서신서를 읽다보면 멈칫하게 되는 가부장적인 지점들과 지금 시대에 차별과 혐오의 근거로 적용되는 구절들을 당시 사회적인 맥락과 저자들과 독자들이 처한 상황, 시대적 한계 등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여러가지 걸림의 지점들 너머 서신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가 교회 안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났는지 놀랍도록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 삶에 도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곱씹게 한다.


복음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이 얼마나 친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는지, 아이들, 여인들, 병자들, 배우지 못한 이들, 가난한 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소재들로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사람들에게 친히 다가가셨는지를 보여주며, 현재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는 예수가 특히 관심을 두었던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아프게 직면하도록 한다.


이 외에도 시편이 어떻게 연약한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지, 인간의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가득한 이 시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마련해 주신 공간인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제국의 압제 아래 살던 나라 잃은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자신들을 강제로 흩어 버리고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민족의 추방과 구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묵시록을 통해 어떻게 그들의 현재를 위로하고 계시며, 틀림없이 정의를 이루실 것임을 선포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반듯하게 정리된 정답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랜 세월 다양한 상황을 거치며 검증된, 영감이 깃든 다양한 문서의 모음집을 주셨다. 그것은 이 문서들을 종합적으로 읽음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오류를 피해 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다. 우리가 지혜롭게 성경을 읽고 분별 있게 해석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열린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 믿고 우리에게 성경을 맡기신 하나님의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가. p. 186


경의 저자는 신이 아닌 인간이다. 저자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가치관과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자의 특성이나 저작의도에 따라서 다양한 상징과 은유, 또는 종교적 '고백'이 담겨있다. 이러한 다양한 메타포를 지닌 것으로 성경을 이해할 때 까마득한 오래전의 이야기가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 숨쉬는 말씀이 될 수 있다.


레이첼과 함께 하는 이 기나긴 여정 끝에, 그동안의 나의 걸림과 질문들에 정말 작은 불빛 하나가 비추고 있음을 느낀다. 그녀가 쓴 성경 이야기, 성경을 쓰고 해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레이첼과 우리들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의심하고 흔들리는 나의 신앙의 여정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위로하는 레이첼의 글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만나기 위해 성경에 의심하고, 질문하고, 저항하는 정직한 씨름을 앞으로도 더 해나가고 싶다. 그렇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까지 알 수 없는 존재와 씨름했던 야곱처럼, 토론하고 논쟁하자. p. 34



반짝이는 구절


내 이십 대의 성경은 늘 나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요 한때 내가 알았다고 생각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었다. p. 25


어느 날 친구처럼 나를 대해주던 목사님이 내가 회의에 빠진 것이 어쩌면 죄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혹시 성적인 죄?"라고 물어왔을 때, 나는 의심의 터널이 지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고독한 여정이 될 것인지 직감했다. p. 26


믿음의 여정이 대개 그렇듯, 나의 여정도 현재 진행형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원고와 같다. p. 27


성경이 오래되고 복잡하며 논란거리가 많고 정리되지 않은 문서임을 인정하려 했고, 또 성경이 특정한 문화와 맥락에서 나왔지만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려고 했다. p. 30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까지 알 수 없는 존재와 씨름했던 야곱처럼, 토론하고 논쟁하자. p. 34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이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서 세상을 돌보라고 보내진 특별한 존재. 아들아, 우리는 노예가 아니란다." p. 43


기원 이야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실과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향수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21세기 과학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성이나 하나님과 창조물의 관게처럼 당시 사람들이 초미의 관심을 두었던 분제에 답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2장과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인류의 기원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착과 불순종, 추방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패턴을 원시적 배경으로 그려 낸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한다. p. 48


구약 성경을 편찬했던 유대 학자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까지 이웃 민족들과 공유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며 유사한 문학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창세기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과연 에배할만한 신인가 하는 질문에 맞춰져 있다. p. 50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어떤 장르인지를 생각하지 않도록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졌다는 데 있다. p. 51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신다는 사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이야기이지 않은가. p. 52


성경의 저자들이 초기에 염두에 둔 독자와 현대를 사는 우리는 비록 다른 문화 속에 살지만 같은 인간성을 공유한다. p. 53


수 세기동안 신학자들은 성경을 조직신학이라는 틀 안에 끼워 맞추려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성경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요컨대 성경은 살아 있는 관계처럼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고결한 독백이라기보다는 정겨운 대화에 가깝다. 우리가 신성시하는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이스라엘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시계추처럼 믿음과 의심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p. 54


기원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세상은 어떤 곳인지 말해준다. p. 59


기원이야기에서 사실과 허구(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실과 거짓)를 구분하고, 해가 되는 이야기를 거절하거나 재해석하는 동시에 우리를 온전케 하는 이야기를 끌어안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 간다. p. 60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생기는 긴장과 질문을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주고 받는 대화로의 초대라고 생각한다. p. 68


기독교인들은 대화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성경을 펼치지만 유대인들은 대화를 시작하려고 성경을 펼치는 것이다. p. 69


상상력을 발휘해 성경을 해석하는 미드라시는 성경 해석이 꼭 제로섬 게임과 같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관계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호 소통할 수 잇는 성경을 주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곧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회복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개닫는다. p. 71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축복과 함께 상처까지 받은 민족으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점은 성경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p. 74.


타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출 20:2)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p. 96


오랜 세월동안 성경의 구원 이야기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기득권자들에게는 도전이 되었다. p. 99


거의 모든 광야 드라마는 '이름 짓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때에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 당신만의 광야에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 한다. p. 108


성경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잠재적 갈등과 의심을 그저 피해 가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불의를 합리화하는 해석에 용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p. 131


나에게 성경의 전쟁 이야기를 아무런 반감 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은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p. 135


마음과 영혼과 이성을 떼어 놓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마음과 영혼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까.


"성경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이 말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셨기 때문이다." - 피터 앤즈


성경의 저자들은 다른 작품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쓴다. p. 141


남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쟁을 재개하고 있을 때, 여자들은 멈춰 서서 비극적인 이 사건에 애도를 표했다. 여성에게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쟁 서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인들의 이야기는 폭력과 가부장제의 피해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쓴는 사람들을 격려한다. p. 143


성경에는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도 있고, 당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마음을 쓰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나는 아직도 씨름한다. p. 149


욥기의 문학적 장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p. 173


"욥기는 성경을 가로지르는 단층선과 같다. 신명기 같은 율법책에서 인정하는바 의인은 복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도덕적 세계관의 기반을 흔들어 금이 가게 하는 곳이 바로 욥기다." - 티모시 빌 p. 176


몇 개의 선별된 구절을 나침반 삼아 인생의 항로를 정하려 한다면, 길을 찾기보다는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p. 182


예수님 사후 1세기가 지나도록 유대인들은 여전히 어떤 문서를 성경에 포함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기독교인들 역시 같은 문제를 놓고 종교개혁 시기까지 갑론을박했다. p. 18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반듯하게 정리된 정답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랜 세월 다양한 상황을 거치며 검증된, 영감이 깃든 다양한 문서의 모음집을 주셨다. 그것은 이 문서들을 종합적으로 읽음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오류를 피해 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다. 우리가 지혜롭게 성경을 읽고 분별 있게 해석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열린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 믿고 우리에게 성경을 맡기신 하나님의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가. p. 186


"시편은 분노를 신학적으로 다루거나 건조하게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시편은 그야말로 시이기 때문이다. 시의 역할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서사로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 캐슬린 노리스 p. 192


어떤 의미에서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공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고민하고, 울부짖고, 불평하고, 감사한다. 그리고 창조주 앞에서 자의식이나 두려움 없이 욕을 내뱉기도 한다. 삶에는 인간의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가득하다. 하나님도 성경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모를까? p. 195


성경은 제국의 압제 아래 살던, 신앙적인 한 소수민족에 의해 쓰여졌다. p. 204


자연히 그 책들 속에는 나라 잃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 자신들을 강제로 흩어 버리고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 역사 속에서 민족의 추방과 구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p. 205


저항 문학에 의하면, 최후의 승자는 억압받는 자들의 하나님이다. p. 205


"묵시의 목적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위로를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은 3천년쯤 지나서야 개봉될 하나님의 비밀을 살짝 보여주는 예고편이 아니다. 묵시적인 글은 하나님의 손이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며 틀림없이 정의를 이루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 에이미 질 레빈 p. 214


내가 성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예언자들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용과 짐승이 어슬렁거린다.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승리는 결국 저항하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어둠은 밝아 오는 빛을 막을 수 없다. p. 221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살았던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실존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저자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로마 제국, 아마도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심한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도전하기 위해 계시록을 기록했다. p. 233


성경은 어부와 농부, 임산부, 쉴 새 없이 꼼지락대는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복음을 이야기 한다. p. 254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통치다. p. 258


하늘나라는 권력과 힘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 겸손의 사역을 통해 확장된다. p. 259


예수님은 청중들이 하나님 나라를 쉽게 이해하도록 일상적인 이미지나 친근한 이야기가 담긴 비유를 사용하셨다. p. 267


안타깝게도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이야기가 고대 근동의 수치심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얼마나 도발적이었는지 거의 무감하게 되었다. p. 268


"우리에게 놀라움과 도전, 각성과 뉘우침을 주려고 고안된 비유에서 보편적인 도덕을 추출하려고 시도한다거나,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비유에서 한 가지 의미만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비유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 에이미 질 레빈 p. 270


(나병환자, 혈루증 여인, 야이로의 죽은 딸)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이야기의 방점은 예수님이 이들을 치유하셨다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이 이들을 만지셨다는 사실에 있다. p. 307


예수님의 기적은 고통과 죽음, 낙인, 배척, 혼란이 없는 미래를 예시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p. 308


우리는 "나는 기적을 믿는가?"라고 묻기보다 "나는 기적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p. 310


서신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나 노예 제도, 후견인 제도 등을 문화 규범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제국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소수 종교 집단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p. 332


서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가 교회 안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났는지 놀랍도록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p. 341


"신약 성경은 반드시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복음과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를 앞뒤 다 자르고 '중요한 개념'만 나열한 선언문을 읽듯 읽어서는 안된다." - 톰라이트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 속으로 찾아오신다는 사실이다. 성령님은 삶의 한복판에 임재하신다. p.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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