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된다.

[독서노트] 환타 전명윤의 여행 에세이 『환타지 없는 여행』

by 문슬아
동티벳 여행 중 찍은 사진. ⓒ 고유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큰 맘 먹고 엄마와 둘이서 중국 청도 여행을 다녀왔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며 해외 여행은 꿈도 꿔보지 못한 우리 엄마, 설레는 맘으로 생애 처음 여권을 발급받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앞으로 나랑 여행 자주 다니게 될거라고, 10년짜리로 발급받으라고 했었는데, 예순의 나이에 인생 첫 해외 여행 도장 한 번 찍힌 엄마의 여권이 만료되기 전에 다시 해외를 나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여행은 커녕, 아이 어린이집도 못보내고 오랜 기간을 집콕 생활을 하다보니, 가끔 여행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세월을 보냈다. 대리만족이라도 할겸 편 책이 환타 전명윤의 에세이집이었다. 어차피 여행이라는 환타지가 없으니, 환타지 없는 여행이라는 제목이 끌렸다.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말하는 환타지 없는 세계가 환상처럼 느껴졌다.


여행작가가 지역의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잘 만든 여행책은 그 지역의 시대와 현실을 여행이라는 주제로 기록한 지역서이자 민속지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에겐 맛집을 찾기 위해 뒤적이는 정보 조각의 모음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고민을 담아내고 싶다. p. 8



한국에서 분주한 일상을 살아내다가 가까스로 확보한 2박3일의 휴가. 바쁜 삶에 치이다가 어느날 훌쩍 떠났다 다시 훌쩍 돌아오는 여행만이 가능한 현실에서는 여행을 가기 전에 그 나라의 문자를 공부하고 그 곳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언어를 익히는 여행자를 찾기가 어렵다.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최대한 현실의 삶과 멀리 떨어진 곳, 멀리 떨어진 풍경을 누리고 일상에서는 차마 지를 수 없었던 비용을 지불해가며 경험하고픈 힐링, 혹은 화려함 등. 각자의 욕망에 따른 '다른 삶'을 주어진 짧은 시간안에 몰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필요한 정보만 쏙쏙 담아 놓은 인터넷 리뷰나 가이드북을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 대한 깊은 이해에 할애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여행. 그러다보니 작가의 말처럼 "언제부턴가 여행은 점이 되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여행은 점으로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각 점을 연결하는 선을 불편해하거나 의미없는 군더더기라고 여기는 것 같다. 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단축했는지가 좋은 여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p. 47


이런 현실에서, 여전히 점이 아니라 선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여행의 묘미를 일깨우고,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을 통해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고민을 담아낸 그의 글이 쉽게 얻을 수 없는 환상처럼 여겨진다.


한국이라는, 아니 서울이라는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차별과 혐오로 일그러진 관계와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그가 낯선 땅에서 보내는 공든 관계의 메시지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고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다. p. 28



이 책에는 저자 환타가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 중 인도, 홍콩, 오키나와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실려있다. 단순히 그 나라의 여행을 위한 가이드라기 보다는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현재, 현실적 고민,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 역사적 맥락 등을 풀어놓았다. 그러한 이해를 전제로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때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먼 나라 이웃들의 삶의 양식과 태도, 생각과 행동에도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10년 전, 중국 조중접경지역에서 1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해외 봉사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정말 '봉사'의 마인드로 떠났다. 막상 낯선 땅에서 내가 직면 한 건,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 중국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이방인, 철저하게 그 현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접경지역이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그 곳의 공동체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존재기도 했다. 자존감이 뚝 떨어졌다. 내가 여길 왜 왔지. 난 왜이렇게 여기서 쓸모가 없지. 돌아보니 그 마음의 이면에는 나는 무언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문화와 환경에 있었다는 일종의 우월감, 교만함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만나보지 못한, 매스컴을 통해서만 접했던 이미지로 인한 선입견도 있었고, 한창 선교단체에서 리더도 하고 누군가를 이끌어주는 자리에 나를 너무 위치시켜왔던 것도 있었고. 종교적으로. 그래서 교만함과 우월감같은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 모든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낯선 땅, 낯선 문화권에 당장 떨어지게 되면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 뭘 했건, 뭘 이뤘건, 어떤 스펙을 가졌건 상관없이. 그냥 난 이방인이고, 어느시기 동안은 철저하게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란걸 느끼면서, 이건 낯선 곳에 떨어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다행이도 당시 그 곳 사람들이 아낌없이 환대를 해 주었다. 부담스러운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집도 없었는데 좁은 집에 내가 머물 곳을 마련해주시고, 늘 밥도 챙겨주시고. 중국어 학원도 같이 알아봐주시고. 그 곳에서 만났던 내 또래의 친구들과 지내면서는 막상 만나보니 나와 고민도 비슷하고. 그 나이에 겪는 삶의 모습이 참 비슷했다.


낯선 곳에서 사는 것은, 그만큼 다름의 역사가 잇기 때문에 알아가고 적응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그걸 잘 해내지 못했을 때 욕먹고, 배제당하는 분위기였다면 난 진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경험 덕분에 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계발해갈 수 있었다. 서로 의견의 차이, 또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들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갈 수 있는 기회들을 사실은 그들이 나한테 만들어 줬던 것.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불편하지 않았던 삶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들. 그래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당연했던 환경과 주어진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던 첫 번 째 계기.


1년간의 여행은 나를 둘러싼 당연한 것들에 대해 낯설게 보는 경험들이 첫 번째였고, 공동체의 환대의 힘, 그것이 한 존재를 얼마나 존엄하게 만들어주는지, 환대의 공간 속에서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어떤 갈등이나 문제들이 계속 대화하고 부딪혀가면서 풀 수 있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조율할 수 있다는 가능성들을 배웠던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익숙한 이곳이 낯선 땅인 이들을 생각한다. 여행을 통한 타자로서의 경험이 그들을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 징검다리를 다른 이들에게도 확장시키는 힘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여행 끝에 얻은 것은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이나 환타지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다시 돌아온 내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타자로서의 경험을 평화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힘이거나 일종의 결단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일상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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