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사실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재능도 소용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는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이다. 작가 이슬아가 그동안 십대 친구들, 중년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해왔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지런한 사랑, 책을 읽으며 글쓰기가 어떻게 부지런한 사랑의 몸짓인지를, 그동안의 내 글쓰기의 경험들도 떠올려 보며 체감하게 된다. 아이들이 글쓰기 수업에서 무심코 지나쳐온 것들을 주의깊게 여러각도로 관찰하는 모습, 나 아닌 다른 이의 혼잣말도 다시 기억해내면서 "주어를 타인으로 늘려나가며 잠깐씩 확장되고 연결되는 모습", 그리고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꾸준하게' 글을 쓸 체력을 기르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한 존재를 그저 게으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글쓰기의 속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자 우리의 마음이 바빠졌다. 주어를 늘려나갔을 뿐인데.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인데. 그가 있던 자리에 가봤을 뿐인데.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슬프지 않았던 것들이 슬퍼지고 기쁘지 않았던 것이 기뻐졌다. 하루가 두 번씩 흐르는 것 같았다.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글을 쓰고 누우면 평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채로 잠드는 듯했다. - 본문 중에서
나도 재작년 글쓰기 공동체와 함께 했다. 독서작문공동체 '삼다'인데, 다독-다작-다상량의 三多이다.
삼다를 만나기 전 나는, 엄마, 경력단절여성, 주부라는 어떠어떠한 범주로만 내 존재가 설명되고 지워지는 일상을 반복하며 수시로 울컥했다. '여성육아인'이라는 새롭게 조작된 존재 위치에서 당연했던 것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다른 자리에 서게 되니 세상을 대하는 나의 감각이 이전과는 다르고 낯설었다. 그 때,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처음은 모든 주어가 나였다. 그런데 삼다 글벗들과 사계절을 보내며, 매일 읽고, 쓰고, 생각을 주고받다보니 내 글의 주어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글벗들이 매주 써오는 글은 처음엔 그동안 쉽게 들려왔던 목소리가 아닌, 차마 발화되지 못한 채 목울대에서 삼켜진 목소리들의 무질서한 아우성같았다.
서로의 글을 계속 함께 읽고, 합평하고 격려하는 과정을 통해 주어가 확장되고 무질서한 목소리의 모음이 서로에게 가닿는 멋진 울림이 되는 장면들을 목격하며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과, 부지런히 존재를 확장시키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마운 경험들을 안고 이 책을 읽게 되니, 많은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었다.
계속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다잡게 하는그런 책을 만나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