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비장애중심에서 잘 아플 권리 외치기 소란스럽고 유쾌하게

[인터뷰] 《소란스러운 동거》박은영 작가

by 고유 Sep 05. 2022
아래로

<소란스러운 동거>(IVP) 저자 박은영 작가. ⓒ 문슬아 기자


살면서 큰 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 다만 순간순간 ‘너는 여기까지’라며 한계선을 긋는 사람들에게 내뱉지 못한 이의들이 쌓여 글을 이루게 되었다. (16쪽)


지난 4월 18일 박은영 작가의 《소란스러운 동거》(IVP)가 출간됐다. 태어날 때 뇌성마비를 얻은 저자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몸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차별적인 시선과 부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짜여진 세상 속에서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살아온 한 장애여성의 일대기다. 저자는 “장애는 몸에 고정된 어떤 실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드는 관계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제목 '소란스러운 동거'는 ‘비정상인’만 ‘정상인’들의 사회에 조용히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두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공동체를 꿈꾸며 지은 이름이다. 책 출간을 기념해 저자 박은영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소란스러운 동거’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주위에 비장애인들 틈에서 저의 이야기는 좀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여러 가지 어려움들도 경험했고요. 어릴 때는 그 어려움들을 모두 혼자 해결해나가야 했었던 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보호와 지원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장애여성모임을 만나고 장애학을 조금씩 공부하면서부터에요. 내 이야기도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어린시절 일반학교에 다니면서 남들과는 다른 몸으로 친구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어른들이 개입해 주었어야 할 부분도 있었다고 쓰셨는데요.


제가 아는 장애인 한 분이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무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부모들이 잘 대처를 하지 못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어릴 때 남자아이들이 괴롭힐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 적절하게 개입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스스로 맺어가는 관계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은 안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우선은 서로 다른 몸을 가질 수 있고, 이것이 어떤 놀림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이 잘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교육과정 안에 이런 부분이 잘 담겼으면 좋겠어요. 나와 다른 몸에 호기심은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무례하게 표출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죠.


요즘은 이런 주제의 동화나 그림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주제와 관련한 양질의 컨텐츠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관계라는 집을 잘 짓기 위한 섬세한 기술도 안전모도 없이 서로에게 던져졌다. 그중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안전장치 하나를 덜 달고 있는 셈이었던 내게, 학교라는 공간에서 마주치는 상황들은 공식도 없는 어려운 수학 문제 같을 때가 너무 많았다
 ···
서툰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공간인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오해가 벌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저항하는 법과 관계를 회복하는 법은 서로를 지키는데 꼭 필요한 호신술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보기에 나는 겁이 많거나 자존심이 강했고, 필수적인 관계의 기술을 미리 가르쳐 줄 준비가 된 어른도 없었다. (50-51쪽)

<소란스러운 동거>(IVP) 저자 박은영 작가. ⓒ 고유<소란스러운 동거>(IVP) 저자 박은영 작가. ⓒ 고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것은 결국 잦은 만남이다”라고 하셨죠. 저도 돌아보면 장애인 분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장애인을 만나게 되는 공간은 거의 늘 ‘시설’이었죠. 가끔 어떤 행사나, 자원 활동을 통한 만남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부자연스러운게 당연해요. 보통 인구의 십분의 일 정도가 장애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10명 중 한 명은 어떤 형태로든 장애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왜 우리 주변에는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가, 그 이유를 되물어야 해요.


왜 장애인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고, 왜 직장을 같이 다니지 못하는지. 왜 밖에 나오지 못하지. 그건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장애인을 초대해서 시혜적인 행사를 여는 건 너무 구시대적 발상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내가 있는 공간에 왜 장애인이 있을 수 없는지 고민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학자들과 장애 운동가들은 오랫동안 ‘장애를 만드는 것은 사회’라고 외쳐 왔다. 교정되어야 할 것은 비장애인만을 기준으로 구성된 사회와 각종 제도와 공간과 관계이지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157쪽)


소수자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 우리 사회와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다시 읽는 작업이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요.


저는 살아오면서 비장애인들이 하지 않았을만한 경험과 감정들을 많이 겪어왔어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이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아 내가 경험한 게 이런거였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고 성소수자의 경험에서도 내가 느꼈던 감정이 적절하게 언어화되는 것을 경험했죠. ‘아!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런거였구나’ 알게 되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내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다른 시선으로 내 삶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다면 내 존재에 대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난 이런 사람이야.’ ‘이런 사회에 살고 있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죠.


‘독립’과 ‘의존’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독립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가 인상깊었어요.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고 점점 자라면서 처음에 숟가락질을 하고, 스스로 옷을 입고, 혼자 학교를 가는 과정을 통해 ‘커가는 구나’를 느껴요.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걸 독립성이라고 생각하죠.


비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신체기능의 차이도 있지만, 사회가 비장애인에게 편안하게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 가구의 배치, 학교 시설 등 모두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죠.


저는 비장애인들도 많은 것들을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의존해서 출퇴근을 할 수 있고, 계단을 의존해서 어떤 공간에 진입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장애인들은 그것에 의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대체할 수 있는 시설도 부족하구요.


저도 오늘 KTX를 의존하지 않았으면 작가님을 뵐 수 없었을 거에요. 우리 모두 어딘가에 의존하고 있는데 신체 기능에 따라 필요한 대상이 다를 뿐이죠. 그게 너무 비장애인에게만 맞춰져서 배치되어 있는 사회가 도리어 결함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특히 성인이 되면 자기 밥은 자기가 벌어 먹는 것을 독립으로 여기는데요. 제가 처음 취업을 했을 때에는 밥벌이는 제가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피곤할 때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엄마가 빨아주는 옷 입고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엄마를 의존하는 모습은 제가 학교다닐 때도 비슷했거든요. 삶의 모습은 비슷한데 단지 돈을 번다는 이유로 독립이라면, 독립의 의미가 너무 협소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독립’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자기 고유의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없다고 해도 성인으로서 누려야할 ‘자기결정권’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해요. 자기결정권은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데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죠.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무례한 말을 듣거나 미숙한 존재로 여겨지면 안되겠죠. 장애인이 신체적 특성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함이에요. 자신의 삶, 자신의 취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장애여성공감은 독립을 자기 결정권을 지키는 가운데 잘 의존하는 삶으로 재정의하고 독립과 의존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독립생활 운동’을 전개해 왔다
···
내게 독립은 돌봄 관계의 재편을 의미했다. 돌보아지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을 돌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니 말이다. (176쪽)


혼자 살았던 시간에 장애 1인가구는 지역 공동체가 필수적이라는 걸 느꼈다고 하셨는데요. 시설에서 나와서 임대주택을 마련해 사시는 분들이 생각났어요. 그분들이 현실적으로 작가님과 같은 지역 공동체를 만나는 건 어려운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까요?


장애인 동료분의 임대주택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그 분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갔는데요. 단지 안에 그 분이 사는 동만 안내 표시가 없는거에요. 지나가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한 성인분에게 위치를 다시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저 끝을 가르키시는 거에요. 보아하니 거의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 거리였어요. 단지와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표지판 하나 없었죠. 속으로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노동이나 주거 면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이 참 많아요. 문제는 사람들이 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한다는 사실이에요. 각각의 신체 조건에 따라 집기나 가구 배치 등이 되어있는 장애인 전용 아파트는 당연히 필요해요. 하지만 시도는 하는데 매번 막히는 게 현실이에요. 특수학교도 사람들이 거부하구요. 그럴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과 같이 살 땅 한때기 내놓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장애인이 우리 옆집에 살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그 위에서 제도 개선 등의 논의들을 본격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논의는 모두가 같이하는 게 중요하고요.


책 <소란스러운 동거> ⓒ 고유책 <소란스러운 동거> ⓒ 고유



장애아동의 부모를 위한 책과 의사를 위한 책은 있지만 성인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는 대목에서 한동안 멈추게 되더라구요. 모두가 각자의 필요와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 나와 있는 상품들은 사회적으로 ‘표준’이라고 여겨지는 몸과 재정 상황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장애에 대한 생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늘어가는 건 사실인데요. 실질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콘텐츠는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살다보면 필요한 정보도 참 많은데. 건강정보도 육아 건강백과 이런건 많지만 ‘뇌성마비 장애인 건강백과’ 같은 건 왜 없을까요?


그리고 외국의 경우 장애인이 입을 수 있는 옷 쇼핑몰 늘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조금씩 시도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장애인을 위한 쇼핑몰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떨리는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 같은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인구수가 적어서 판매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장애인들도 자신의 몸과 취향에 맞는 옷이나 아이템을 즐기고 싶은 건 당연한건데요. 모두가 각자가 고유의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장애인 동료중에 비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휠체어로 입장할 수 있는 식당은 많이 없어요. 그럴 때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문가들에 의해 다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질병이 ‘살아내야 할 시간’으로 치환되는 연대의 과정이 참 인상깊었어요. 특히 우리도 동료 시민으로서 의료인의 노동조건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지점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저는 주치의보다는 치료사들을 더 많이 만나요. 20대 초반에는 치료사가 바뀌는 일이 잦았어요. 계약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떠나게 된거죠. 그러다보니 저도 치료사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요. 몇 년 전에 치료사들이 파업을 하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하는 치료사들의 인권이 수면위로 올라왔는데, 그 이후로 제도 개선이 실질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 꾸준한 물리치료가 너무 중요해요. 하지만 1차병원의 경우 장애인에게 필요한 형태의 치료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결국 상급병원으로 가야하는데 그 수가 적다보니 치료를 자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죠. 특히 장애 어린이는 지속적인 물리치료가 성인보다 중요해요. 하지만 병원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이 받아야 일주일에 1번이에요. 부모들은 애가 타니까 사설 물리치료실을 찾게 되는데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요.


우리는 아플 때도 여전히 좋은 삶을 누려야 한다. (231쪽)


한편,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의료기사’ 정의를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를 받아’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에서 ‘의뢰 또는 처방’으로 변경하는 의료기사법 개정안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지역사회에서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환경에서 의료기사가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과 노인 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을 두고 의료체계와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입장의 의사단체와 장애인 등의 실질적인 필요를 외면하는 과잉규제라는 입장의 환자단체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장애인의 의료보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가 처방을 내주면 다른 치료실 가서도 동네마다 치료실이 있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러가지 안전문제 때문인지 아직 관련법이 통과되지는 못했어요. 사실 장애인들의 현실과 치료사들의 노동 조건 등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치료사가 있는 병원이 더 늘지는 않아요. 적자운영이 많다고 들었어요. 결국 의사도 환자도 치료사도 모두 고생인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요. 국가가 얼마나 장애인의 의료보장에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아픈 와중에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이 부디 서로의 인간됨을 지켜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소란스러운 동거, 241쪽). ⓒ 고유“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아픈 와중에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이 부디 서로의 인간됨을 지켜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소란스러운 동거, 241쪽). ⓒ 고유


내 이야기고 장애 당사자의 관점을 담은 글이지만, 내 옆에서 항상 나를 지탱해 준 사람들, 곧 장애인 동료들과 나만큼 좌충우돌했을 비장애인 가족과 동료 시민들이 보이는 글이라는 말이 이 글을 굳이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게 했다. (253쪽)


이 책이 다채로운 정채성을 가지고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 시민에게 보내는 가벼운 한 통의 편지라고 하셨는데요. 독자분들이 이 편지에서 꼭 가져갔으면 하는 작가님의 한 문장을 꼽으신다면 어떤 문장일까요?


저도 제 책을 읽은지 오래 되서 갑자기 찾으려니 막막하네요. (웃음) 그래도 한 문장을 꼽아보자면요.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아픈 와중에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이 부디 서로의 인간됨을 지켜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문장을 드리고 싶네요.



※ 건강매거진 데이드 (2022년 5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