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1970년대 중반에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작은 지역이다. 문화적으로 티베트에 속하는 라다크는 흔히 ‘작은 티베트’라고 불린다. 라다크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외부의 영향에서 독립되어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왔다. 그는 라다크의 현지 조사 과정에서 라다크 특유의 온화한 가족공동체와 유대 관계가 그들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된다.
그가 라다크와 서구사회를 오가며 16년간 발견하고 관찰하며 실천해 온 것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책 『오래된 미래』다. 라다크의 전통, 변화, 미래가 구체적인 내용을 이룬다.
라다크는 여름에는 너무 뜨겁고 겨울에는 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비가 내리는 날은 매우 드물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라다크 사람들은 땅과 유대 관계를 맺고, 물길을 섬세하게 관리하며, 각자 혹은 서로 협력하고 공생하는 삶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라다크 사람들은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작은 공동체들이 거의 완전하게 자급자족을 이루며 친밀하게 살아왔다. 저자는 이러한 안정된 공동체가 개인에게 유대감과 안정감을 제공해 성숙하고 균형 잡힌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또한 라다크 사람들은 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파종을 할 때면 흙 속의 벌레들, 개천의 물고기 그리고 땅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를 올린다. 이들에게 자연은 소유 혹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이들은 경작하지 못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1부에서 저자는 라다크에서 미래에 지향해야 할 아주 건강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자연환경의 제약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 서로에게 유순한 삶의 태도, 땅과 분리되지 않은 건강한 공동체는 현재 인류의 삶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안겨준다.
진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대지와 분리되고 이웃들과 분리되고 결국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2부에서는 서구문명과 개발 논리의 압력 아래서 라다크 공동체가 급격하게 붕괴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서구문화의 영향력이 갑작스럽게 유입되면서 라다크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유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겨났다. 그들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돈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친밀감과 배려도 잃어버리게 됐다.
남성들이 일자리를 위해 도시로 몰려가면서 여성들은 홀로 남겨졌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갇혀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산적인’ 존재로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에 남은 농부들은 낙후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농업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공급한다. 하지만 농부의 사회적 지위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종교적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었고, 엄청난 양의 쓰레기 문제로 도시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자연과 가족, 이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던 라다크 사람들은 서로와 땅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고 세계경제의 사다리 제일 아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급속한 서구식 경제개발로 인해 변해버린 라다크의 현실에 저자는 절망이나 냉소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적절치 못한 개발 계획들에 맞서 건전하고 유익한 지역 차원의 유대관계를 재건하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에 나선다. 3부는 그 치열한 과정을 기록했다.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영위해 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개발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관습화된 개발의 방향을 답습해 고유의 것들을 해체해 버리기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기반 위에 새로운 것들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미래에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반개발(counter-development)’이라고 정의한다. 반개발은 자연과 공존하고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의 전통 문화부흥과 재생가능한 에너지 사용 장려를 탄원하는 편지를 써 주정부와 인도의 중앙정부 모두에게 보내기도 하고, 인도 정부와 끊임없이 접촉하는 노력 끝에 1978년 태양 에너지 활용 소규모 실험 프로젝트를 실행해도 좋다는 승인을 얻었다.
그는 “무수한 대화와 심지어 라디오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서양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맞서 라다크를 방어해야 한다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반개발의 개념이 내 마음속에서 결정되고 있었다”고 밝힌다.
라다크와 서구사회를 오가며 계속되어 온 그의 활동은 1980년에 이르러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작은 국제기구로 성장했다. 이후 작은 국제기구협회 ISEC로 재탄생됐다. 설립 취지는 생태 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지 올해로 30주년이 되었다. 첫 출간 이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책은 동명의 영화와 함께 5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현재까지 생태학 관련한 주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여전히 큰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호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는 ‘오래된 미래’가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삶과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생태학적 대안에 대해서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또한 이 책이 라다크의 전통 생활상은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새로운 변화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검은 칠을 많이 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노르베리 호지가 말하는 생태학은 과거 라다크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고유의 환경과 문화적 토대 위에 생태적 가치와 공동체 가치의 실현을 말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위기에 놓여있다.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과 마음에 병을 앓고 살아간다. 자연과 비인간 동물은 철저히 타자화되었고, 밀집사육(공장식 축산)과 학대, 살처분, 대형산불 등으로 뭇 생명들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아닌, 나와 다른 이들 특히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날로 심해져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불경기와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많은 현대인들이 신음하고 있다.
노르베리 호지는 우리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힘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고, 우리 자신과 지구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지속가능한 미래의 대안은 라다크가 보여준 것처럼 사실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생명의 지구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변해가는 라다크의 현실에 냉소하지 않고 치열하게 분투한 삶의 기록, ‘오래된 미래’를 다시 펼치는 이유다.
※ 건강매거진 데이드 (2022년 4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