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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에 걸린 정신과 의사 아빠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독서노트] 기타 모리오·사이토 유카,『아빠는 즐거운 조울증』

by 문슬아


#책과강연

#백일백장글쓰기


앞으로 아내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내일이라도 당장 죽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다.


주인공 기타 모리오가 서문에서 밝힌 심정은 여러 진단명과 원인 모를 아픔이 가시덤불처럼 얽힌 고통의 당사자들은 아마 잘 알 것이다.


이 책은 조울증에 걸린 아빠가 일으킨 전례 없는 여러 사건을 여든 두 살이 된 아빠와 마흔여섯 살의 딸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대담집이다.


아빠 기타 모리오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3대에 걸쳐 유명한 일본의 정신과 의사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40대가 된 무렵,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온다. 조울증(양극성장애)이다. 언제, 어떻게, 왜 발병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어느 날 불쑥 조증이 찾아왔다!


픽셀 이미지


조증이 오면 별안간 불같이 화내면서 아내와 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한밤중에 창문을 활짝 열고 집에서 곤충 채집을 하는가 하면 현관문에 ‘이 집 주인 현재 발광 중!’이라는 간판을 세워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친구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한다.


의욕이 넘쳐 잠도 자지 않고 글을 쓰고 ‘개복치마부제공화국’을 세워 일본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주석에 취임한다. 조증일 때면 이상하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제작 자금을 만들 작정으로 충동적으로 주식거래를 하다 끝내 파산한다.


그러다 우울증이 오면 땅 밑으로 꺼져들 듯한 무기력함을 보이며 겨울잠 자듯 온종일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잠을 잔다. 여름엔 조증, 겨울엔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별난 아버지, 조울증을 세상에 알리다


픽셀 이미지


그 옛날 60년대에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는 편집자에게 원고 의뢰가 오면 “지금은 우울증이라서 못씁니다”라며 거절했다. 그러면 편집자는 반드시 “우울증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우울증이라는 건 기분이 처져서 기력이 없어지는 병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는 병이었다.


기타 모리오에게 조울증이 발병한 시기는 1960년대다.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에서조차 이 병에 대해서 인식이 거의 없을 때다. 기타 모리오는 “나는 작가로서 대단한 업적은 없지만, 조울증을 세상에 알린 공적은 있다”라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보통은 자신의 병을 숨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그는 오히려 병에 관한 이야기를 원고에 썼다.


딸 사이토 유카는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던 고도 성장기 시절, ‘우울증’을 고백하는 건 문단에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라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렇듯 자신의 병을 드러내는 일이 곧잘 나약함이나 치부로 낙인 찍히는 사회에서, 기타 모리오의 파란만장한 조울증 연대기는 많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가 된다.


함께 조증을 즐기는 딸 그리고 어머니의 관대함


픽사베이 이미지


정신 질환은 인간의 감정과 관계, 학업, 노동, 결혼생활 등 삶에 전반에 갑작스러우면서도 끈질기게 개입해 브레이크를 건다. 아픔이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면 무력과 절망도 제 집인 양 몸 속에 똬리를 틀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아픔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과대망상과 경제적인 파탄에 이르기까지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조울증 환자의 곁을 지키는 이들은 합리적이지 않은 분노와 비난을 받아줘야 하고, 땅 밑으로 꺼져들 듯한 무기력함을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아빠가 조증과 우울증으로 넘나드는 생활을 오래도록 하는 동안 딸은 아버지의 증세를 아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끔은 즐거워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그는 “내가 아버지의 조증을 숨기지 않고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머니의 관대함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기타 모리오 역시 “내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꿋꿋이 가정을 지켜낸 아내가 고맙다”고 마음을 전한다.


책에는 그의 아내가 남편의 조울증 때문에 한 번도 눈물을 흘리거나 울적해하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물론 조증이 오면 시작되는 충동적인 주식거래 때문에 자주 다퉜지만, 가족 사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불쑥 찾아온 병 앞에 가족들은 우울과 비관으로 움츠러들기보다, 가끔은 무심하게 보일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당사자의 곁에서 일상을 지켰다. 부러 희망차게 굴지도 않는다.


기타 모리오는 “만일 우울증으로 기분이 침울할 때는 일단 전문의를 찾아가서 약을 받은 뒤 애쓰지 말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가까운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면 절대로 힘을 내라고 격려해서는 안된다”라고 조언한다.


삶에 괴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이 책은 조울증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다룬 서적이 아니다. 조울증에 걸린 한 개인의 삶과 그 과정을 함께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건져 올려 나열한다. 가끔 서로의 기억이 어긋나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억하는 부분도 있다. 원래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10가지 다른 시각과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씩씩함 뿐 머릿속은 텅 빈 딸과 이런 대담집을 낸 것도 나의 머리가 노쇠하여 망가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딸이 말하기를, 오늘날 일본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딸은 “아빠는 정신과 의사니까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삶에 괴로움을 느끼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의 파란만장한 조울증 체험담을 털어놓았다.”


딸 유카는 아버지의 삶을 회상하면서 그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괴로움, 슬픔, 고됨 그리고 즐거움이 무엇인지 몸소 가르쳐준, 그야말로 정신과 의사였다고 고백한다. 이토록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우울증이 오지 않는 비결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모순덩어리’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적당히 사는 것이 우울증이 오지 않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기타 모리오·사이토 유카 지음, 박소영 옮김, 『아빠는 즐거운 조울증』, 정은문고, 2021.

※ 건강매거진 데이드 (2022년 3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책과강연 백일백장글쓰기 6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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