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경단녀의 취업, 시작도 전에 퇴사각?

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1화

by 문슬아


2021년 9월


나는 총 세 군데 입사지원을 했다. 두 곳은 김천 소재 대학교의 행정직원이었고, 한 곳은 잡지사 창간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이었다. 감사하게도 세 군데 모두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교 행정직원은 1년 계약직이었지만 급여가 높은 편이었고, 복리후생도 좋아보였다. 만약 스타트업 면접을 가장 먼저 보지 않았다면 나는 안정적으로 행정직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면접일이 공교롭게도 스타트업이 가장 빨랐다.


혁신도시 신축 오피스텔 건물에 꼭꼭 숨어있는 작은 사무실을 깁스한 발로 겨우 찾아갔다. 사무직원 언니가 아직 면접관이 도착하지 않았다며 따뜻한 차 한잔과 3페이지나 되는 면접용 질문지를 주면서 읽어보고 있으라고 했다.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좋은 컨텐츠란 무엇인가?'

'모회사는 건강기능식품 개발 및 제조 업체인데, 논지에 관련없는 광고기사를 써달라는 오더가 내려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타 언론사와 차별화된 기사를 어떻게 쓸 것 인가?'

'포토샵 및 영상툴을 다룰줄 아는가?'

'최저급여에 복지도 별로 좋지 않다. 그래도 괜찮은가?'

'창립멤버로서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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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무실에 다 담을 수 없는 거창한 질문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잡지사와 언론사, 에디터와 취재기자 등 아귀가 딱 맞지 않는 단어들이 혼재하는 종이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밀려왔다. 안그래도 작은 사무실 한켠에 가득 진열되어있는 다양한 일본산 건강기능식품까지. '왠지 여기는 피해야 할 것 같아..'라는 모종의 위험신호가 감지되었지만 일단 면접은 봐야하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여 엉덩이를 붙였다.


총 3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모회사의 공동대표 두 명(한 분은 서울에 있어서 줌으로 참여), 총괄팀장 한 명. 대표는 내 이력서를 보니 김천에는 없는 인재가 와주셔서 질문지는 의미가 없다면서 다른 질문을 하겠다는 뜬금포를 갑자기 날렸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보다 급여가 적을텐데도 정말 일할 의향이 있는건지(이 부분은 미리 알고 간 거라서 괜찮았다), 남편은 무슨일을 하는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돌보는지, 혹시 취재기자 경력자로서 편집장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창립멤버의 노고는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져주겠다는 다짐의 큰소리까지.


그리고 모회사(일본에 있음)에서 개발한 육모제와 키성장영양제,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 얘기와 더불어 노화를 막아준다는 NMN 영양제까지 기능도 패키지도 가지각색인 영양제 설명을 한참을 들었다. '아 여기 약장사 하는덴가, 도망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만드는 매거진 팀에서는 이와 전혀 별개의 업무를 할 것이고, 오직 건강과 의료 관련 취재와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걱정말라고, 나의 글쓰기에 대한 꿈을 이 곳에서 다시 펼쳐보라고, 갑자기 일본 성장 애니 느낌.


면접을 마치니 내 속에서 두 개의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얼른 도망쳐'와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수 있다니, 해볼까'


공단 지역에서 쉽게 찾을래야 찾을 수 없던 직종이었고, 반대로 이 회사에서도 나라는 사람이 간절해보였다. 간절함이 도리어 위험요소처럼 느껴졌지만,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자꾸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과감히 다른 두 곳의 면접일정을 취소하고, 정체모를 이 스타트업(?)과 함께 하기로 했다.

시작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