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6화
2022년 2월
결혼 전까지 나는 호구로 살아왔다. 타인의 무리한 부탁에도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 회사생활에 있어서도 너무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연극판, 사회부 기자, 인권활동가로 이어진 내 직업적 특성과 조직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나의 권리와 존엄을 희생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했다.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도 그게 당연한 것이라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뼈빠지게 남을 위해 살았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일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더이상 일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내 몸과 정신은 이미 피폐해져 있었다. 20대의 내 모습은 그랬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나는 서서히 변했다. 남편은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그걸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주변 어른들이 큰 소리를 낼 때마다 깜짝 놀래며 겁먹었던 순간들이 많았던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겼을 때 그가 당연히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낼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더랬다. 하지만 그는 내가 침착하게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자신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할 때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난 처음으로 관계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그 안전함 덕분에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유로이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하면서 내가 온전히 나로 있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타인의 기분에 맞춰주느라 나의 존엄을 뒤로하는 일을 멈출 용기도 생겼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으로 긴 시간을 살다보니 자신감이 바닥을 치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더이상 호구가 되지는 않았다. 수습기간 4대보험 문제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었고, 취재갈 때 택시를 탔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 대표에게 취재에 대한 여러가지 지원책을 구체적이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육아기 단축근로도 사용할 수 있었고, 취재와 관련해서 말도안되는 요청사항으로 부딪힐 때에도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만큼 대표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고, 이런 나를 대표가 뻔뻔하게 여길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유일하게 대표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자연스레 내 동료의 존엄을 지키는 일과도 연결되었다. 편집장으로서 주변 동료들의 회사생활의 고충에 대해서 시스템이 개선되도록 말문을 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의 존엄을 위해서 했던 일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이익을 주면서 회사 내에서 취재팀은 독립적인 기구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취재와 관련한 일을 모두 내게 일임하고 따로 결재를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부담도 컸다. 나는 리더형 인간이 아니지만 어쩌다 리더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어깨에 지는 짐들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전처럼 호구의 짐이 아니라, 성장의 발판이 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신생 매거진으로서 어려움이 많은 회사였지만, 내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 매체도 점점 성장하는 것 같아서 성취감이 있었다.
성취감은 내 자신감을 높여주기도 했지만, 기사 완성도에 대한 기준을 점점 높여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승전 워커홀릭....